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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5,099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봉헌’이라는 주제를 묵상하다 예루살렘에 잠시 머물렀던 동기 신부가 떠올랐다. 그는 안식년에 성서고고학 단기 과정인 ‘에체 호모(Ecce Homo)’를 하면서 베들레헴의 ‘목자들의 들판’ 성당(그리스 정교회)에서 동료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때 그는 미사를 주례하며 “우리는 예수님께 무슨 선물을 가져왔습니까? 하느님께 받은 것이 많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부족한 우리 자신밖에 없습니다”라고 강론했는데, 참석자 모두 공감하여 한마음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한 권고,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를 떠올리게 한 강론이었다.

 

보편 지향 기도로 말씀 전례가 끝나고 예물 봉헌으로 성찬 전례가 시작된다. 초세기에는 미사 전에 교우들이 가져온 예물을 제대에 미리 놓아두었다가 말씀 전례가 끝나면 사제가 그 예물을 들고 성찬 기도를 바쳤다. 세월이 흐르면서 신자 수가 늘고 예물 운반 행렬이 길어짐에 따라 그에 맞는 예식이 하나둘 생겨났다. 4세기 말경부터 북아프리카에서 행렬을 돕는 성가가 등장했고, 그것은 다른 지역에도 퍼져 나갔다. 성가의 내용은 예물 운반과 별 상관이 없는 시편이 주종을 이루었고, 비슷한 시기에 입당 성가와 영성체 성가도 행렬 동반 노래로 생겨났다.

 

11세기경부터는 화폐 제도의 발달로 교우들의 예물이 현물에서 금전으로 바뀌었다. 그 영향으로 예물이 줄어들자, 중세 후기에는 4대 축일에만 예물 행렬을 했다. 그러다 트렌트 공의회(1545-63년) 이후에 예물 봉헌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행렬 동반 성가는 시편 없는 대송인 ‘봉헌송(offertorium)’ 또는 ‘봉헌대송(antiphona ad offertorium)’만 존속하였다. 교우들이 예물을 제대 앞으로 가져오는 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와 교황 바오로 6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완전히 복구되었다. 교우들은 예물을 봉헌함으로써 공동 사제직을 직접 수행하고, 참 사제이며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도 봉헌한다는 뜻을 표현한다.

 

예물 봉헌에는 성찬 전례에 사용할 빵과 포도주의 운반과 가난한 이들과 교회 운영을 위한 헌금이 있다. 순교자 성 유스티노는 152년에 저술한 <제1호교론>에서 봉헌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부자들과 그 외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원하는 만큼 봉헌합니다. 이 봉헌물은 모아서 주례자에게 맡깁니다. 그는 그것으로 고아와 과부, 질병과 어떤 이유로 궁핍한 이들, 또한 갇힌 이들과 여행하는 이들을 도와줍니다. 한마디로 주례자는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돌보아줍니다.” 이는 자신이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명하신 사랑의 계명을 이행하기 위해 봉헌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려 준다.

 

이러한 예물 봉헌은 기도를 동반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실행된 전례 개혁으로 유다인들의 음식 축복 기도에 성찬의 의미를 가미하여 만든 빵과 포도주의 축복 기도인 ‘예물 준비 기도’의 내용은 이러하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이 기도는 빵이 하느님의 선물이고 땅의 열매이며 인간 노동의 결실임을 표현한다. 그러한 빵을 주님께 되돌려 드리면서 생명의 빵인 주님의 몸이 되게 해 달라고 비는 내용이다. 사제가 아버지 하느님을 향해 빵을 들어 올리며 이 기도를 바칠 때,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신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떠올리게 된다.

 

온 세상에 구원을 주러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당신을 봉헌하셨다. 그리고 오늘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교회를 통해 그 봉헌을 계속하신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의 봉헌에 담긴 구원 효과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 외에는 모든 것이 “쓰레기”(필리 3,8)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콜로 3,11)이라고 고백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고백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이라는 믿음의 다른 표현이라 하겠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가 하느님 창조물의 청지기로서 살아가도록 불리었다는 사실을 믿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다. 청지기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하느님의 선물을 책임있게 돌보고, 각자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자애롭게 나누도록 도와주는 데에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봉헌 생활자들과 사목 일꾼들의 태도 가운데 ‘개인의 자유와 휴식에 지나치게 관심을 두는 것’이 ‘새 복음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다(<복음의 기쁨> 78항 참조). 사목 활동이나 복음화 노력을 그저 자기 삶의 부속물로 간주하며 자기 정체성,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의 자신과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구분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제대로 투신하지 못하며 주저하는 삶의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에 온전히 투신하지 못하는 내게 예수님께서는 “너도 나를 본받아 자신을 바치고, 가진 바를 나누어라. 비록 작은 것이라도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한 아이가 내놓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 기적의 실마리가 되었다(요한 6,9-13 참조)는 것을 기억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9월호(통권 462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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