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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0 조회수1,389 추천수0 반대(0) 신고

 

 

다니엘서 13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수산나 여인의 억울함을 다니엘이라는 젊은 청년을 이용해서 해결해 주는 내용입니다. 

 

저는 13장 내용 중에서 오늘 특히 9절과 34절을 가지고 나름 묵상을 해봤습니다. 두 재판관인 원로가 수산나 여인에 대해 음욕을 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게 되지 않자 비겁하게 수산나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음욕은 품고 나쁜짓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나쁜짓을 하기 전에 가졌던 심리 상태가 9절 이하에 나옵니다. 먼저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돌린 채, 의로운 판결조차 생각하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수산나 여인도 억울함을 당해 앞이 막막한 상황에서 34절에 보면 수산나는 눈물이 가득한 채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는 하늘에 주목해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성경 지식이 없어서 저만의 생각으로 묵상을 해 봅니다. 여기서 하늘을 저는 우주에 있는 하늘도 상징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존재라는 측면으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들은 여인에게 음욕을 품기 위해 양심을 억눌렀습니다. 양심이 있는 상태에서는 음욕을 품을 수가 없었을 테니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고 합니다. 

 

바로 하느님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것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죄를 많이 짓기 때문에 이건 분명히 맞을 겁니다. 

 

하느님을 의식하고는 있어도 죄라는 유혹 앞에는 그만 하느님을 의식하려고 하는 눈길을 애써 외면해야만이 죄를 지을 수가 있기 때문에 두 재판관은 그래서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했을 겁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11절에 보면 서로가 음욕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그들 마음속에도 양심은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여인에게 흑심을 품었지만 말입니다. 그 양심의 힘이 정말 셌더라면 음욕을 품지 못 했을 텐데 자신이 가진 양심을 억제를 하지 못 했던 겁니다. 

 

양심도 바로 인간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영을 상징하는 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처음부터 자신 속에 있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나서 음욕이 생겼더라면 양심의 거울로 억제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사람들은 이미 음욕을 품고 난 후에 양심을 억눌렀고 또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렸다고 나오는 걸로 봐서 이미 죄를 짓겠다는 마음을 작정한 거나 마찬가지였지 않았을요? 

 

저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여기에서 성경이 무슨 뜻을 전하려고 하는지 말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양심의 눈으로 하늘인 하느님을 보게 되면은 음욕과 같은 죄가 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억울함을 당한 수산나 여인도 하늘을 봤습니다. 34절입니다. 여기서는 그냥 바라본 게 아니고 우러러보았다고 합니다. 이건 마음으로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같은 하늘인데도 하늘의 속성이 다릅니다. 죄인에게는 하늘을 보면 죄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쳐다보지 않했고 믿음으로 산 여인은 눈물로 자신의 억울함을 하느님께 절대적인 신뢰로 돌봐주실 것을 믿었다는 걸 우회적으로 성경은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죄인에게는 하늘 즉 하느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선인에게는 하느님께서 정의와 공의로움으로 돌봐주실 하느님이라고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이시지 않을까 하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방금 전에도 표현을 했지만 자신 안에 양심의 하느님의 크기를 키워서 그 양심을 아무리 죄를 짓고 싶은 유혹의 힘이 누르고 싶어도 누를 수 없을 만큼 강하게 키운다면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묵상도 해봤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마음에 얼마나 하느님의 양심으로 똘똘 뭉쳐서 바위처럼 단단하게 채워넣는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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