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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부활] 나에게 돌아오너라: 기도, 자선, 단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2-15 조회수7,547 추천수0

[전례 생활] 나에게 돌아오너라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가 곧 시작된다. 어떤 마음으로 이 은총의 시기를 맞이하고 보내야 할까? 사순 시기를 여는 재의 수요일,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2,12-13). 우리의 ‘마음을 찢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 곧 되찾은 아들의 비유처럼 참된 회개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사순 시기를 지내는 목적이다. 따라서 이 회개의 여정은 하느님께로 가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사순 시기의 실천

 

참된 회개로 부활하신 주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위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사순 시기의 세 가지 실천은 기도와 자선, 단식이다. 그중에서 사순 시기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실천을 꼽으라면 ‘단식’이다. 우리가 옛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순 시기가 뭐하는 날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단식하는 날입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실질적으로 사십 일 동안 단식을 준수하는 것이 사순 시기의 기간을 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실례로 4세기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총 여덟 주간의 사순시기(56일)를 보냈다. 토요일과 주일에는 단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주일에는 단식하지 않았던 로마 교회에서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총 여섯 주간의 사순 시기를 지내게 된 배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도와 자선은 사도 2,42-45에서 잘 나타나듯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정체성과 삶의 모습을 드러내는 핵심 요소였다. 다시 말해 기도와 자선은 믿는 이라면 누구나 사순 시기가 아니더라도 늘 실천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이나, 나눔과 자선에 인색한 그리스도인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단식은 사순 시기에 더욱 강조된 특별한 실천이었다. 오늘날 기도와 자선은 나름대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단식의 실천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온갖 먹을 것으로 넘쳐 나는 이 시대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단식 그 자체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의 삶에서 사순 시기의 단식이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에는 자신의 주장이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이유로, 또는 건강과 미용의 차원에서 단식을 한다. 하지만 사순 시기의 단식은 분명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거나 금하는 것 자체가 신앙적으로 큰 가치를 갖는 것도 아니다. 사순 시기의 단식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선사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려는 우리의 특별한 지향과 내적 자세가 동반될 때 비로소 탁월한 표지가 될 수 있다.

 

단식의 의미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성찰해 볼 수 있다.

 

 

성금요일, 파스카 단식의 시작

 

그리스도교 단식의 시작은 무엇보다 복음적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교회의 초기 전례에서 단식은 금욕적인 성격보다는 구원의 내용을 상기시켜 주는 예식처럼 여겨졌다. 그것은 단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기도 했다.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이 세리, 죄인들과 음식을 나누고 단식을 잘 지키지도 않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몰려와 따져 묻는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마태 9,14)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을 할 것이다”(마태 9,15).

 

그래서 일찍이 교회는 신랑을 빼앗긴 날,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슬픔에 빠진 신부의 마음으로 파스카 단식을 실천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는 여러 방식으로 그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표현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음식을 들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에서 비롯된 행위도 아니요, 어떤 금욕적인 행위도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잇는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이다.

 

따라서 성금요일의 단식 실천은 어떤 의무나 관념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다. 교회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성토요일을 지내고 파스카 성야 예식 전까지 이어지는 이 단식을 가리켜 ‘파스카 단식’이라고 부른다.

 

전례주년의 중심인 파스카 성삼일의 거행과 결합된 이 단식의 실천은 주님의 부활과 함께 단일한 파스카 신비에 속하는 주님의 죽으심(성금요일)과 묻히심(성토요일)에 참여하려는 탁월한 수단이다. 또한 우리가 충만한 기쁨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에 이르게 해 줄 사랑의 표현이다.

 

 

하느님 말씀의 중심성을 드러내는 표지

 

4세기에 이르러 사순 시기가 점차 그 틀을 갖추었을 때, 성경에서 사십이란 숫자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단식의 실천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 일간 밤낮으로 단식하시고 기도하시면서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교회도 사십 일 동안 단식을 준수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정점에 있는 파스카 신비의 거행을 준비해 왔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악마가 던진 빵의 유혹에 맞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3). 그렇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다. ‘빵’으로 상징되는 온갖 세속적 욕망과 물질적 유혹으로부터 과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가? 내 육신은 많은 음식으로 채웠지만 영적으로는 영양실조가 아닌가?

 

바쁜 일상 안에서 잠시 잊고 지냈지만 단식을 통해 정작 돌아가야 할 본연의 자리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단식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탁월한 표지가 된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것에서 잠시 거리를 두는 행위로 연장될 수 있다. 이러한 영적 단식의 실천은 사순 시기 동안 하느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무실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가 된다.

 

 

참회, 보속, 사랑의 표지

 

가슴의 소리에 귀를 막고 자기만족에 겨워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단식은 회개하는 죄인의 참회와 보속의 표지이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언제나 새로 태어나고자 가난한 존재로서 단식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우리에게 단식을 통한 ‘배고픔’의 경험은 익숙지 않은 불편함이거나 고통스러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온갖 형태의 비참한 가난으로 ‘배고픈’ 현실을 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불쌍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음을 바라보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때 단식은 타인의 고통에 함께 울어 줄 능력을 잃어버린 우리의 무감각한 마음을 깨우는 작은 울림이 된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며 연대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랑의 표지가 된다.

 

사순 시기에 권고되는 자선은 단식의 열매로서 이루어질 때 의미가 있다. 절제 없이 먹고 마시면서 자선을 위해 넉넉한 지갑에서 얼마 기부하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형식적인 실천이다. 사순 시기에 강조하는 기도 또한 하느님 말씀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게 하는 단식의 본질적 의미와 뜻을 같이한다.

 

결론적으로 사순 시기에 실천하는 기도, 자선, 단식은 모두 하나의 목적, 곧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는 성화의 도구이자 탁월한 길이다. 이 길을 따라서 우리 모두가 드높고 열린 마음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2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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