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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0 조회수1,25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복음 이야기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개신교 때부터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복음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예전에 개신교 때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설교시간에 맨날 졸다가는 사람도 아는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면요 뻔한 내용은 식상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관점에서 이 말씀을 한번 묵상하고자 합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요?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용서하고 또 다시는 그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 교훈을 주시는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점이 죄를 지은 여인에 맞추고 있습니다. 저는 초점을 이 여인에게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을 향해 봤으면 합니다. 복음 묵상할 때 육적인 간음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영적인 간음에 초점을 두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소제는 간음한 여인을 향한 용서이지만 이 복음의 메시지는 누구든지 남을 단죄할 권한이 없다는 걸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걸 여실히 적나라하게 우리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시험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 왔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런 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세금 바치는 내용의 복음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을 코너에 몰아넣으려는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슬기롭게 대처를 하십니다.

 

아무리 당시 율법을 어겨서 돌에 맞아 죽을 위험에 처할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수가 바로 이 여인도 살리고 또 그때 그 여인을 고발한 사람들도 이 여인을 단죄할 만큼 의인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수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통쾌한 수입니다.

 

예수님의 통쾌한 말씀 하나에 그냥 그들을 단칼에 날려버린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고 나옵니다. 이 이야기도 수많은 묵상거리가 되는 걸 봤습니다.

 

몇 년 전에 보좌신부님이 이 내용을 강론 때 언급하시는데 우스갯소리인지는 몰라도 땅에 쓰신 내용이 낙서라는 둥 아니면 그 당시 모여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는 둥 이런 말씀을 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저도 나름 이 상황을 나름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냥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보시면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상황에서 그들을 보게 되면 그들도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자기들이 죄인이라는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을 회피하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 속에 있는 양심을 볼 수가 있을 거라고 예수님께서는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들의 양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만약 계속 마주하는 상황에서 그랬더라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할 위험도 있었을 겁니다. 결국 그들도 하나씩 하나씩 떠나갑니다. 자기들도 죄인이라는 사실에 승복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알고 나름 계명을 잘 지키고 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들어가면 어느 누구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운 면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나씩 하나씩 자리를 떠는 면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자리를 떠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신의 모습을 봤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죄인이라고 하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떠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면 예수님은 땅을 보시면서도 이 사람들의 다리를 지켜보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자리를 떠는지 말입니다. 다 떠났다는 걸 보시고 그제야 몸을 일으키십니다. 여인에게 자기를 단죄한 사람이 있는지 물으시고 단죄한 사람이 없다고 하니 예수님께서도 단죄하지 않으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교황님 전대사 때문에 제가 아는 신부님께 성사를 본 후에 질문을 했습니다. 저랑 한 7년 동안 신부님과 만나 뵈면서 신부님께 드리는 질문이 신부님 입장에서는 뭔가 답변을 명확하게 하기 애매한 질문을 제가 자주 합니다. 그럴 때마다 신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안 죽어봐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신경쓸 게 아니고 하느님 당신께서 알아서 하실 거라고 하시면서 자기가 갈 길만 잘 가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묵상을 하면서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실 잘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남에 대해 무관심하자는 게 아니라 죄만큼은 남의 죄를 볼 겨를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납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이 세상을 살면서 어쩌면 성모찬송에도 나오듯이 지금 우리는 귀양살이하고 있는 사정인데 지금 자기의 죄를 씻는 데 주력을 해도 귀양살이가 끝날지 안 끝날지 모를 판인데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끝나면 예수님을 뵙겠지만 현세에서 귀양살이도 잘 하지 못하면 나중에 연옥에 가서도 할 판인데 그렇게 본다면 어쩌면 남의 죄를 볼 시간이 아니라 자기 코가 석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하면 저는 뜨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능하다면 이 세상에서 보속을 다 하고 연옥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쉽지만은 않지만 이 세상이 주는 쾌락은 별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래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실제 복음은 간략하게 하고 오늘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산나 이야기를 좀 더 세밀하게 묵상한 이야기를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 이야기는 제가 작년에 우연히 새벽에 오늘 독서를 보고 묵상한 내용을 적은 글이 있어서 따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하루 묵상할 주제를 한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1. 오늘 복음은 육적인 간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보다도 영적인 간음을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2. 나 자신도 죄인이면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남에 대해 판단하는 버릇은 없는지?

 

3. 물론 율법에 있는 내용이지만 요즘 말대로 하면 법대로 하자는 말이지만 아무리 법도 중요 하지만  

   바리사이  들이 말한 것처럼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는 법의 내용을 인용해 이야기한 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잔인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은 말로는 

   아니더라도   혹시라도 남을 향해서 이런 모진 마음을 마음속에 담아 본 적은 없는지 성찰하는 하루로

   하루를 지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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