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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17 -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아침에 (샤프란볼루/터키)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30 조회수1,348 추천수1 반대(0) 신고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아침에

 

 

샤프란볼루는 이스탄불에서 차로 약 여섯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유서도 깊고 또 그만큼 아름답다.

 

마을 이름은 샤프란이라는 꽃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염색, 약재료, 향신료등 그 용도가 다양하면서도 귀해서 상당히 값이 나가는 꽃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내가 묵었던 숙소는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숙소였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체 순전히 가이드 북에 소개 된 말에 끌려서 찾아간 곳으로

 

오래된 가옥을 새롭게 단장해 깔끔하고….

 

……저렴한 가격임에도 내부에 넓은 정원까지 있어 매우 매력적이다라고 나와있다.

 

오래된 가옥” “새롭게 단장해 깔끔” “저렴한 가격” “넓은 정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마음에 들었는데 직접 찾아가 보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물론 사람마다 각자의 취향과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곳에 머물러도 만족도가 다를 수 있겠지만

 

가격 대비로 만 평가하자면 누구나 충분히 만족할 듯싶고

 

내가 끌렸던 가이든 북의 모든 조건을 떠나서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업적 냄새가 나지 않는 약간은 투박한 친절함과 편안함이 있어 더욱 좋았다.

 

 

 

 

  

특히나 그곳에서 맞은 두 번의 아침을 잊을 수가 없다.

 

숙소가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서 그런지

 

오직 새 소리만 들릴 뿐 차 소리나 다른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한창 봄이 시작되는 계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색에

 

햇살은 약간 따갑지만 공기는 아직 좀 차가운 아침 날씨가 기분을 맑고 상쾌하게 한다.

 

포도나무도 이제 막 덩굴을 늘려 나가기 시작했고

 

잔디도 아직 억새지기 전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터키의 잔디 색은 원래 그런 건지 선명한 연두색이다.

 

이런 정원의 한 나무 그들 아래 마련된 식탁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무늬 없는 흰색 도자기 접시에 빵, 버터, , 치즈, 슬라이스한 토마토와 오이,

 

녹색과 검은 색의 올리브가 놓여져 있고 투명한 유리 잔에 홍차 한잔.

 

더도 덜도 아닌 딱 순정 만화에 나올 법한 예쁜 아침 풍경바로 그것이다.

 

내가 특별히 예쁜 것을 선호하는 편도 아니고

 

오히려 너무 예쁜 척 하는 것에는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일부러 꾸미지 않았는데도 예쁜 것에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감동을 하게 된다.

 

이런 아침에 메모한 것을 보니 이렇게 써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아침을 맞는다.

 

따뜻한 햇살, 서늘한 바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 ……

 

오늘 이 아침을 잘 기억했다 “빠야따스”에서 살아가는 힘으로 삼아야 하리다……

 

더욱 겸손 되이 열심히 살아야 하리라.

 

 

 

빠야따스는 마닐라의 쓰레기 매립장이 있는 필리핀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에 한곳으로

 

나는 조금 늦은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고 이곳으로 자원해서 들어왔다.

 

여기에도 나름대로 빈부의 차이가 있어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하루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곳 사람들에게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평생 이룰 수 없는 소원이고

 

아무리 배낭 여행일지라도 비행기 값을 포함해서 내가 한달 동안 쓴 비용이

 

누구에게는 일년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금액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나는 청빈 서원-Poverty Vow”을 한 수도 사제가 아닌가!

 

하여 이번 여행을 준비 할 때부터 배낭 여행도 사치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는데 그러다가 이런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 차비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

 

하루 종일 땡볕 받으며 쓰레기 매립지에서 돈 될만한 것들을 골라내는 사람들….

 

쓰레기 썩는 냄새, 정체 모를 먼지, 옆집에서 틀어 놓은 시끄러운 음악 소리….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샤프란볼루에서 내가 맞이한 이런 아침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것이었고

 

필요 이상의 것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하는 일종의 죄책감 마저 느껴졌다.

 

이왕 떠나 왔으니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생활을 잠시 잊어도 좋으련만

 

일상에서는 떠나기를 꿈 꿨으면서도 정작 떠나와서는 일상에 메어 있는 나.

 

이런 게 바로 나의 한계인 것이지?

 

 

 

둘째 날 메모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오늘도 호사스러운 아침을 맞았다.

 

누구는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아침을 맞고

 

누구는 빠야따스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냄새 나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우린 나름 데로 열심히 일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평생 성실하게 일해도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이 그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도

 

십대, 이십 대에 짐을 꾸려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을 꿈도 못 꾸던 분들이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며 살수 없다는 것을 점점 받아들이게 되고

 

좋게 말하면 마음을 비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법을,

 

나쁘게 말하면 누릴 수 없는 것에 대해 체념 내지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좋은 쪽이었는지 나쁜 쪽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그랬다.

 

그러다 필리핀에 살면서

 

내가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을 비울 필요도, 체념이나 포기를 할 필요도 없어졌다.

 

누리지 못한 것들에 비해 누린 것들 그리고 누리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이성이 아닌 피부로 느꼈고

 

그러면서 누리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필리핀 마닐라 바야따스

 

 

세계적으로도 부지런하고 바쁜 한국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필리핀 사람들이 게으를 지도 모른다.

 

그것이 더운 나라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사백여 년간의 식민지 생활에서 온 타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보통의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것만큼 일한다 하더라도

 

현재로써는 절대로 우리 나라 사람들이 누리는 것만큼 누릴 수 없다는 거다.

 

그것은 한국과 필리핀의 국력, 경제력, 소득의 차이 그리고 이런 것들이 포함된 환율차이 때문이다.

 

물론 그 차이를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입고 싶은 것 안 입으며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우리와 우리 이후의 세대는 단지 한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곳 사람들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아왔고 또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필리핀에 태어나지 않고 한국에 태어나기 위해서 한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냥 태어나고 보니 한국 사람이었던 것인데

 

그것을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신의 뜻이라고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팔자혹은 이라고 할 것이다.

 

세계적이 스타이고 성공한 사업가이며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쓴

 

자선 사업가 폴 뉴먼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도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고 있기에

 

우리처럼 부유층에 대한 감세는 범죄와 다름없다.

 

나는 운이 무척 좋았기 때문에 행운을 타고난 사람들은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나도 필리핀이 아닌 한국에 태어난 운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빠야따스에 사는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스러운 아침을 맞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구걸하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그 행색이 너무나 안되 보여서 신께 항의를 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왜 태어나게 해서 저 고생을 시킵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게 저 사람에게는 더 행복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태어나게 했다면 저 사람을 위한 무슨 대책이라도 세우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자 신이 그에게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너를 태어나게 했다

 

 

 

- 10, 20, 30일에 업데이트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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