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1.0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9 조회수1,167 추천수7 반대(0) 신고

(대구대교구 순교 사적지, 비산(날뫼)성당)

202119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복음 요한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아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루이스 캐럴의 작품으로 1865년에

소개된 환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저 역시, 어렸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봤던 기억을 통해서 이 책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줄거리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겨우 그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이렇지 않을까요? 인류 역사를 통해

하느님이 얼마나 많이 알려졌습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느님을 더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인 기도도,

주님께 올리는 제사라 할 수 있는 미사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는 것도. 우리는

충실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느님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느님을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알수록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큰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종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대해서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이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은 커지길 원합니다.

,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게 되면 감히

커지려고도 또 높은 자리에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바치고 있는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종이 아닌

주인 행사만 합니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면서 종의 말이 아닌,

주인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받은 것에 만족합니다.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가 받은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자신의 관계 안에서 자기 자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때 더 많은 것을 얻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는 욕심보다는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린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야 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은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자산이 된다.

(마틴 부버).

아는 만큼 모른다.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죽는 순간까지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연구하는 모습을 본

제자들이 묻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데, 어째서

배움을 멈추지 않으십니까?”

이에 아인슈타인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이라고

한다면 밖은 모르는 부분이 됩니다.

이 커지면 의 둘레도 점점 늘어나

접촉할 수 있는 미지의 부분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지금 저의

여러분들 것보다 크다고 하겠지만

제가 접촉할 미지의 부분이 여러분보다

더 넓고 많습니다. 그건 결국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알려는 노력을

멈춘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하느님은 절대로

알 수 없는 분이 되고 맙니다.

아는 만큼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구대교구 순교 사적지, 비산(날뫼)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