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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5주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9 조회수1,446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주일을 잘 보내고 계시는지요? 어제 자정을 지나 집에 들어와 새벽까지 이것저것 뭔가 자료를 보다가 아침에 깨어 오늘 복음 내용이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차라리 일반적인 내용으로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예전에 올린 글을 올렸습니다.

 

다시 간단하게라도 올리는 게 나을 것 같다 싶어 다시 올립니다. 오늘 복음은 내용이 많습니다. 분량이라는 제약만 없다면 많은 생각을 이야기해보겠지만 그것도 무리인 것 같아 간단하게 몇 가지만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어제부터 독서와 복음을 여러 번 읽으면서 오늘 복음을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큰 틀에서는 부활입니다.

 

1독서에서도 나옵니다. 무덤을 열겠다고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덤을 열고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도 마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표징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마치 무슨 기적을 보고서 어떤 기적을 행하신 분을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복음과 독서도 내용은 같지만 하나 어떤 부분이 공통으로 나오는 게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나자로의 무덤에 가십니다.

 

독서에서는 무덤을 열고라고만 나오지만 복음은 무덤 앞에 있는 돌을 치우라고 하십니다. 저는 오늘 이색적으로 이 돌에 초점을 맞추어 묵상을 하고자 합니다. 원래 이스라엘 장례 풍습에 제가 예전에 들은 내용으로 보면 동굴 같은 곳 앞에 돌을 가로막아 놓는 풍습이 있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이 돌이 무엇을 상징할까를 오늘 복음을 기준으로 생각해봅니다. 나자로를 살려내신다고 하더라도 그 모습을 보려면 돌이 없어야 나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나자로가 실제로 죽어 있었지만 여동생들은 병을 앓고 있다고 표현을 합니다.

 

왜 요한사가는 앓고 있다고 했을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 병도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4절에 나옵니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그 의도를 오늘 복음 후반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 나자로가 소생하는 이 장면을 통해서 유다 군중들이 이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도록 하시는 의도입니다.

 

이 사실은 나자로 무덤 앞에서 마르타와 나누는 대화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을 향해서 기도를 하시는데 그 기도 내용이 언제나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시면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그 말씀을 주위 군중이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지는 알 수 있겠죠? 이렇게 하면 좀 더 유다 군중들이 예수님께서 나자로를 살리시더라도 이게 실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는 하지만 어쩌면 이런 기적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라는 명분을 미리 세워두시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봐서는 예수님께서 평소 하시는 말씀을 보시면 나를 믿지 않아도 내가 하는 일을 보면 나를 보내신 분을 믿을 수 있다고 하신 말씀에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결국 나자로의 이름을 외치시니 나자로가 살아서 나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유다 군중들은 복음 말미에 유다인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라고 하면서 복음이 끝을 맺습니다.

 

참 이 내용도 잠시 생각해보면요 복음에서 이걸 보고 모두가 믿었다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다고 나옵니다. 이 말은 이걸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이런 걸 보고도 믿지 않는다는 걸 보면서 정말 사람의 마음이 어찌 이리도 완고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건 2000년 전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일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주시는 메시지일 것 같습니다. 마르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이 말씀도 그냥 하신 말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요 오늘 이런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한번 집중을 잘 해시겠습니다.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이때 영광이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나자로가 살아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 사전 조건이 먼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오늘 군중들처럼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영광도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마치 눈뜬장님처럼 보지 못한다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 복음은 이런 메시지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로 부활신앙입니다. 또 하나 이런 사실을 뒷받침할 근거가 복음 중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11절 이하를 쭉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자로를 자고 있다고 표현하셨습니다.

 

가서 깨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당연히 잠들었으면 예수님이 깨우러 가시면 곧 일어날 거라고 말을 합니다. 재미 있게 요한사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복음을 묘사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을 바탕으로 제자들에게도 부활의 뜻을 알려주시려는 의도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때는 예수님의 의도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의도를 요한사가는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의도를 알려주려고 이렇게 기술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15절까지만 하고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걸 한번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나중에 나자로가 소생을 하면 지금 나자로가 없는 곳에 내가 있기 때문에 바로 현장에 직접 가서 하는 그걸 생생하게 목격하면 어떤 조작도 없었다는 걸 알 수가 있고 그런 상태에서는 그걸 더 실감나게 부활을 믿을 수가 있을 테고 그걸 통해서 너네들이 부활이라는 믿음을 확실히 가질 수가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측면에서 예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 그림을 보면 나중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이 세상에 안 계실 테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 부활신앙을 가르치실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아주 기뻐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양이 너무 방대해서 이 정도에서 마치겠습니다. 다음에 이 복음이 나오면 오늘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가지고 묵상해보겠습니다. 제가 서두에 돌에 묵상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습니다.

 

바로 돌은 우리가 예수님이나 하느님을 믿을 때 생기는 장애물 같습니다. 이런 장애물이 없어야 비단 정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활만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는 신앙에서 이런 돌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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