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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요한3,22-30)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09 조회수94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9일 토요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요한3,22-30)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

 

1독서<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1요한5,14-21)

사랑하는 여러분, 14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죽을죄가 있는데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우상을 조심하십시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4.5-6과 9(◎ 4)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 주님께 노래하여라새로운 노래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춤추며 그분 이름을 찬양하고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충실한 이들은 영광 속에 기뻐 뛰며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복음<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요한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5,14-21)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6~17)

 

요한 1서의 맺음말(5,13~27)도 요한 복음처럼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다시 밝힌다.

요한 복음에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집필 목적이었는데(요한20,31), 여기서는 하느님 아드님의 이름을 믿는 이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집필 목적이라고 말한다(1요한 5,13).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1요한 1,1)

이렇게 머리말이 생명의 말씀으로 시작된 요한 1서의 가르침이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5,20)라는 신앙 고백으로 끝을 맺는다.

 

오늘 말씀에서 특이한 것은 '죽을죄'(1요한 5,16)에 관한 언급이다.

'누구든지 제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죽을죄'와 '죽을죄가 아닌 죄'가 무엇인가?

구약에서는 '살인, 간음, 배교'를 죽을죄<대죄(大罪)=중죄(重罪)=사죄(死罪)>라고 했다.

신약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회는 하느님의 천주성(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 '생명의 은총'(성화은총=초성은혜=상존성총)을 잃어버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죽을죄'(대죄) '죽을죄가 아닌 죄'(소죄) 구분된다.

 

윤리신학에서나 교리에서는 '대죄'와 '소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 인간은 생각과 말과 행위로 대죄를 짓는다. 대죄가 성립되려면, 세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계명과 지성의 인식 행위와 자유 의지의 동의이다.

 

우리가 무슨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할 때,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줄 분명히 지성으로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좋아서 동의할 때 대죄가 성립되고, '생명의 은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생명의 은총'은 세례성사때 예수님의 십자가상 구속(해방)사업의 공로로 주어진 것인데, 대죄를 지음으로 잃게 된다.

 

오늘 독서에서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지은 사람을 위해서는 하느님의 생명(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간구(청)하라고 가르친다(1요한 5,16).

 

 

 

 

 주님 공현 후 토요일 복음(요한3,22~30)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6~27)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의 스승 세례자 요한 보다 늦게 등장하였으며,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께서 자신의 스승보다 더 인기와 명성이 있게 되자, 이것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폄하하는 호칭을 쓰고 있다.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이라는 호칭 속에는 존경의 의미가 보이지 않으며, 동시에 스승님이신 세례자 요한에게 의존하는 자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여기서 '증언하신던'에 해당하는 '메마르튀레카스'(memartyrekas)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희랍어에서 완료형은 과거 행하여진 동작의 영향이 현재에까지 미치는 것을 나타내므로, 이러한 표현은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 세례자 요한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로'에 해당하는 '이데'(ide; behold)는 '보라'라는 뜻으로 '에이돈'(eidon) 명령형인데, 말하는 사람이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시키고자 할 때 쓰는 말로서, 이것을 통해 당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인기에 시기와 불안을 느끼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자기들의 지도자인 세례자 요한이 영향력이 점점 약화되고 있는 현실에만 쏠려 있어서, 군중들이 세례자 요한을 외면하고 예수님에게로 몰려드는 것이 세례자 요한에게는 중대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고 본다.

 

여기서 '가고 있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콘타이'(erchontai)는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세례자 요한을 만나고자 찾아오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몰려갔으며이런 현상이 계속 진행중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요한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의 말을 빌어서 이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시대가 새롭게 열리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중심 주의적 신앙과 겸손이 잘 배어있는 구절이다.

그는 자신의 몫과 예수님의 몫이 각각 다르다는 사실과 이것을  정해 주신 분 '하늘', 곧 하느님이심을 알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과 자신 사이를 마치 경쟁 상대(라이벌)라고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예수님께 대하여 시기하고 폄하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여기서 '아무 것도'로 번역한 '우데 헨'(oude hen; not even one)은 '하나도 ~아니다' 라는 뜻인데, 앞에 나오는 '없다'로 번역된 부사 '우'(ou)를 강조해 준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중 부정을 통해 하늘에서 주어진 것만 사람이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에 해당하는 '에크 투 우라누'(ek tou ouranou; from heaven)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뿐이다(only what is given him from heaven).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사심없는 하느님의 일꾼이며 종이었고,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인정하는 신본주의자(神本主義者)였다.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01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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