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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2주간 금요일]단식 (루카 5,33-3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06 조회수1,11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2주간 금요일]단식 (루카 5,33-39)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시라고 한다. (콜로 1,15-20)
그리스도 예수님은 15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16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그분께서는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18 그분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그분은 시작이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맏이이십니다. 그리하여 만물 가운데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19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00(99),1-2.3.4.5(◎ 2ㄴ 참조)
◎ 환호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라.
○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 ◎
○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
○ 감사하며 그분 문으로 들어가라. 찬양하며 그분 앞뜰로 들어가라. 그분을 찬송하며 그 이름 찬미하여라. ◎
○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 진실은 대대에 이르신다. ◎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고 하신다. (루카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제1독서(콜로1,15~20)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20)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시어 만물로 하여금 당신 자신과 화해하게 된 것에 대해 기뻐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평화를 이룩하시어'로 번역된 '에이레노포이에사스'(eirenopoiesas)의 원형 '에이레노포이에오'(eirenopoieo)'평화'를 뜻하는 '에이레네'(eirene)'행하다',  '~되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포이에오'(poieo)의 합성어로서 신약에서는 이곳에서만 쓰였다.

 

 

 

그 의미는 '평화를 만들다'(make peace)이며, 본절에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화해의 구속사업을 통해 하느님과 만물 및 만물안의 모든 생명체 상호간에 평화를 이루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은 사도 바오로의 다른 서신인 로마서 5장 10절과 에페소서 2장 15절과 16절 등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첫째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느님과 원수되었던 인류가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으로 인해 하느님과 평화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무죄하신 성자 그리스도께서 죄는 인간들이 지었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취하고 이 땅에 내려오시어 흠없으신 당신 몸을 자원으로 희생하여 대속의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본문의 전치사 '디아'(dia) '~을 통하여'(through)라는 의미로서 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십자가의 피가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왜 하느님께서 무죄하신 당신 독생 성자의 피를 흘리게 하셔야만 했는가? 

 

이것은 이 땅에 첫 사람의 교만과 불순종으로 계명을 어겨 죄가 들어오고, 모든 인류가 첫 사람안에서 죄를 지어 죽음으로 치닫게 된 이후로 그 죽음을 막는 유일한 원리가 바로 '피흘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못하면 부모 마음이 아프듯이, 피조물인 인간이 하느님의 뜻이 들어있는 계명을 어겨 창조주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며, 그 선성(善性)에 누를 끼치고 성성(聖性)을 모독하며, 공의(公義)를 거스려 일어나게 된 하느님 아버지의 의노는 당신과 위격과 레벨이 같은 하느님만이 풀어 드릴 수 있고, 죄는 인간이 지었기 때문에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속죄를 하셔야만 했던 것이다.

 

 

 

이 원리는 하느님 아버지 당신 자신이 세우셨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레위17,11; 히브9,22)선언하셨다.

 

 

 

구약 시대에 수없이 흘려지고 뿌려졌던 양과 송아지의 피는 해당 제사 한가지 죄에 대해서만 죄를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제사였지만(히브7,27), 저주의 십자가 상에서 피를 흘리신 무죄하신 그리스도의 제사는 그 단 한번으로 영원하고 완전한 효력을 발휘하여 죄사함 및 화해를 위한 더 이상의 피흘리는 제사가 필요없도록 만드신 것이다(히브10,10.11).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원문은 새 성경의 번역과 조금 다르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된 모든 만물들이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성혈의 구속 공로를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게 되었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셨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죄를 범한 인류와 화해하는 것은 하느님의 간절한 희망이요, 기쁨이었다.

 

 

 

여기서 '화해시키셨습니다'로 번역된 '아포카탈락사이'(apokatallaksai)의 원형 '아포카탈랏소'(apokatallasso)끝마침과 완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아포' (apo)라는 전치사와 그 자체로 이미 '화해하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카탈랏소' (katallasso)의 합성어이다.

 

 

 

사도 바오로'화목하게 하다', '화해시키다'라는 의미를 전달할 때 주로 '카탈랏소'(katallasso)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로마5,10; 2코린5,18.20).

 

 그러나 여기 콜로새서 1장 20절과 22절, 에페소서 2장 16절에서는 '아포카탈랏소'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완전한('아포'; apo) 화해('카탈랏소'; katallasso)의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카탈랏소'보다 그 의미가 훨씬 강하다.

 

여기서는 죄를 범하기 이전에 가졌던 평화의 관계로 완전히 되돌아가는 것말하기 위해 이같은 강조형의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과의 완전한 화해를 기뻐하시며 간절히 희망하셨던 것이다.

 

 

 

한편 '유도케센'(eudokesen)이라는 단어는 '아버지께서는 ~기뻐하신다' 뜻인데, 원문에는 콜로새서 1장 19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새성경에는 '기꺼이'로 번역했다.

 


 

이 단어의 원형 '유도케오'(eudekeo)'잘하다', '좋다'라는 뜻의 부사 '유'(eu)와 '생각하다'(마태3,9), '여기다'(2코린11,6)란 뜻의 동사 '도케오'(dokeo)의 합성어로서 '좋게 생각하다', '기쁘게 여기다'라는 뜻을 갖는다.

 

즉 이것은 기대하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에 행복해하고 기뻐하는 것을 나타낸다(마태3,17; 갈라1,15.16).

 

 

 

 

 

이 단어는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원수되었을 때에 하느님께서 인간과 다시 화해하게 되기를 얼마나 바라셨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느님의 이러한 바람이 그리스도의 육화(강생)과 십자가상 대속적 죽음을 가능케했다.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5,33-39)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36~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에 오신 새 시대에는 옛 전통을 따라 단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두 개의 비유를 통해 더욱 명확히 하신다.

 

 

 

두 비유에서 새 옷에서 찢은 조각 새 포도주예수님께서 오신 새 시대, 복음의 시대상징하며, 헌 옷 헌 가죽 부대는 일중일에 두번(월요일과 목요일) 정기적으로 단식하는 것과 같은 유다인들의 고루한 전통 및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여기서 '어울리지도'로 번역된 '쉼포네세이'(symphonesei; agree; match)의 원형 '쉼포네오'(symphoneo)'함께'(with)라는 뜻의 접두어 '쉰'(syn)'소리를 내다'는 뜻의 동사 '포네오'(phoneo)의 합성어로서 '함께 소리를 내다', '화음을 이루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교향곡'을 의미하는 영어 'symphony'의 어원이다. 여기 본문에서는 '일치하다', '조화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을 헌 옷을 기우는 데 사용하면, 세탁시 물을 흡수한 조각이 급격히 수축되어 기운 부분이 뜯어져 그 헌 옷이 망가지게 된다.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과 헌 옷은 서로 불협화음만 이룰 뿐,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새 시대 새 복음과 유다인의 고루한 전통은 서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고, 오히려 서로 피해를 줄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당시 유다인의 생활상 가운데 친숙한 포도주와 가죽 부대예로 들어 가르침을 전개하신다.

 

포도주를 새로 만들면, 그때부터 며칠 혹은 수 개월 동안 숙성될 때까지 계속해서 발효된다.

 

 

 

헌 가죽 부대는 새 부대와 달리 신축성이 없다. 따라서 유다인들은 새 포도주를 만들어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계속 발효되는 포도주에서 가스가 생겨나 신축성이 없는 헌 가죽 부대가 터져 버려, 결국 포도주와 헌 가죽 부대 둘 다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신축성이 뛰어난 새 가죽 부대에 담았던 것이다.

 

 

 

이것은 이미 루카 복음 5장 36절에서 설명한데로, 예수님의 복음은 유다인의 율법주의적 전통과 조화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율법을 왜곡해서 만든 과거의 고루한 전통과 규칙으로, 하느님의 율법의 정신을 참되게 제시하는 복음과 예수님의 행위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8)

 

 

 

'새 부대에'로 번역된 '에이스 아스쿠스 카이누스'(eis askus kainus; into new wineskins; into new bottles)에서 '새'로 번역된 단어 '카이누스'(kainus)'써 보지 않은', '처음 부르는' 노래로서 '새'노래(묵시14,3), '낯설고 놀라운',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마르1,27; 요한13,34; 사도17,19), 혹은 '낡지 않은', '새로운' 피조물, '새' 것(2코린5,17; 2베드3,13) 등등의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

 

 

 

율법, 규칙, 전통이라는 것에 얽매여서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유와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가르침이나 행위는 전에는 본 적이 없어서 낯설기도 하고, 목격자들을 놀라게도 만드는 차원의 것이다.

 

 

 

따라서 헌 종교 형식을 보존하려는 어리석음과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묵은 것이 좋다' (39)

 

 

 

이 구절은 공관복음서의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9장 17절마르코 복음 2장 22절에는 없는 루카 복음서의 고유한 내용이다.

 

여기서 '좋다'로 번역된 '크레스토스'(chrestos; better)사용하기에 적합하여 유용하다는 (useful) 의미를 지닌 형용사이다.

 

 

 

항상 묵은 포도주만을 마시던 사람은 그것이 자기 입맛에 익숙하고 몸에 좋다면서, 그것만을 선호하고 고집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구절은 종교적 전통과 규칙과 가치관만을 귀하게 여기며 지켜오던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다 종교 지도자들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빗대어 지적한 말이다.

 

 

 

그들이 만약 계속해서 묵은 포도주만을 권하는 사람들처럼 옛 전통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제시한 복음의 진수를 결코 깨달을 수 없으니, 그들의 아집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것을 경고하며 촉구하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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