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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29.“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03-29 조회수1,532 추천수1 반대(0) 신고

 

요한 11, 1-45(사순 5주 주일)

 

 

 

<사순 5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성지주일을 앞두고, 마치 부활을 연주하는 전주곡과 같습니다.

<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고,

<복음>에서는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며, 당신이 주님이심을 밝힙니다.

 <화답송>에서는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음을,

<복음 환호송>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찬미하며,

<2독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오늘 이 부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사순시기가 생명으로 가는 길, 곧 부활로 가는 길임을 봅니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이르러,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쓰라림보다는 감미로움이 서광처럼 비쳐옵니다.

또한 우리는 3월을 뒤로 보내며, 봄의 길목에 들어섰습니다.

 봄도 또한 분명 하나의 길입니다.

 사순이 부활로 가는 길이듯, 봄은 여름, 가을, 겨울로 가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을 꽃피우고 열매 맺고, 또 다시 생명으로 피어오르는 봄의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봄길이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봄길입니다.

생명을 열어주고, 부활을 가져다주는 참된 생명길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사랑이 걸어갑니다.

이 길을 걷는 여행은 아나톨 프랑스의 말처럼,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이요, 참된 생명에로의 이동이요, 사랑에로의 이동입니다.

 

 

 

오늘 우리는 라자로의 소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어주는 봄바람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둠의 동굴에 갇혀있는 이를 불러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저앉아 웅크리고 죽어 있는 이를, 빛으로 불러내는 봄비 같은 생명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라자로의 소생이라기보다,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에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라고 장엄하게 예고된 그 생명입니다. 곧 빛이신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일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이시오, 빛이신 까닭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부르십니다. 참 생명에로 이동입니다.

그 길은 에서 믿음에로의 이동입니다.

당신이 생명이요 부활임에 대한 믿음에로의 초대입니다.

<본문>에서 마르타는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2)라고 고백합니다.

 마르타는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11,23)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11,23)라고, 안다.”고만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1코린 8,2)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쩌면, 여전히 마르타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생명을 믿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아는 것을 넘어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생명과 부활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활은 믿음 안에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믿어야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와 현세를 넘어서 얻을 수 있는 풍만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합니다.

,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요한 11,27)

 

 

 

예수님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느냐고 물으시는데, 마르타는 그리스도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신원에 대한 믿음을 고백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동굴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도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하고 여전히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거듭 강조하시어 나무라듯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이처럼, ‘에서 믿음으로의 이동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불신과 어둠의 묻혀있는 저희의 무덤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당신 생명의 빛에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요한 11,43)

 

-오늘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6)

 

 

 

주님!

부활을 믿게 하소서!

제 생명이 죽고, 당신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제 안에 살아계신 당신 생명을 보게 하소서!

제가 사라지고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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