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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령] 한국의 위령기도2: 한국 위령기도의 개념과 발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13 조회수6,426 추천수0

[한국의 위령기도] (2) 한국 위령기도의 개념과 발생


보편교회 정신 계승하면서도 토착화된 유교문화 포용

 

 

- 「상장 예식」이 발간되기 전까지 100년 이상 우리나라 교회의 상장 예식서로 사용된 「천주성교예규」.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위령기도란 누구를 위해 바치는 기도인가

 

위령기도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연도’라고 불렸다. 이 연도라는 말은 ‘연옥도문(煉獄禱文)’에서 유래하는데, ‘도문’은 오늘날의 ‘호칭 기도’이므로 말의 뜻만 놓고 보면 ‘연옥에 있는 이를 위하여 바치는 호칭 기도’이다. 

 

그러나 이 연도라는 말을 넓은 의미로 본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상장 예식서인 「상장 예식」과, 이 예식서가 발간되기까지 100년 이상 우리나라 교회의 상장 예식서로 사용된 「텬쥬셩교례규」에 있는 모든 기도를 통틀어 일컫는 것이므로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기도’이다.

 

 

위령기도의 기원

 

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운명이 끝나는 날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천상 탄일’(Dies natalis)이라고 부를 만큼 부활 신앙이 투철했으므로 파스카의 기쁨을 드러내는 찬미가와 시편을 노래하며 장례를 거행했다. 그러나 중세에는 망자의 영혼이 심판의 형벌을 피하기 위한 속죄와 탄원이 주를 이루는 장례로 바뀌었다. 1614년에 공포된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는 중세의 복잡하고 긴 장례식을 간소화하고, 죽은 이의 집에서 성당으로 향하는 예식, 성당 안에서 행하는 예식(위령 성무일도·미사·사도예절), 묘지에서 하는 예식 등으로 정리했다.

 

 

부글리오 신부, 중국 신자 위해 「성교례규」 편찬하다

 

중국교회에 파견된 예수회 선교사 부글리오(Louis Buglio) 신부는 모든 신자들의 장례를 사제가 집전할 수 없고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봉헌하기 어려웠던 중국교회를 위하여 한문본 「성교례규」를 편찬했다. 그는 「로마 예식서」의 세 가지 예식에서 미사와 사도예절을 빼고, 중국인들의 장례 순서를 따라 평신도들만으로 가정에서 거행할 수 있는 예식서를 출간한 것이다. 이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이교(異敎) 문화에 관용적인 문화적응주의적 태도에 기인하지만, 중국인들의 상장례 곳곳에서 드러나는 비복음적이고 반교회적이거나 미신적인 요소까지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상장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한문본 「성교례규」의 ‘장상예절’, ‘성회상사금조’, ‘성회상사규조’와 ‘상례문답’ 등을 통하여 이교의 상장례 관습 중 교회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과감하게 떨쳐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승훈의 세례와 「텬쥬셩교공과」, 「텬쥬셩교례규」, 「상장 예식」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할 때 중국교회 기도서인 「천주성교일과」를 가져왔고, 곧 이어 「수진일과」도 조선교회에 유입됐다. 당시 교우들은 이 두 기도서에 있는 임종부터 장례에 관련된 기도들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평민 이하 계급의 한문을 모르는 신자들은 한문 기도서나 교리서들을 해독할 수 없었으므로 초기교회 지도자들이 중요한 부분을 한글로 번역했다. 

 

조선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한문 기도서 「천주성교일과」를 번역한 「성교일과」와 조선교회 공식 기도서 「텬쥬셩교공과」를 간행함으로써 누구든 위령기도를 바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이어 「텬쥬셩교례규」를 발간하였는데, 제1권은 ‘선종을 돕는 공부’부터 ‘종후 축문’까지 한문본 「성교례규」 첫째 권의 전편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제2권은 한문본 「성교례규」 둘째 권의 ‘성회상사규조’를 번역한 ‘상장규구’ 아래 ‘장상예절’을 번역한 ‘상장 예절’을 장례의 각 단계에 배치하고, ‘안장유동예절’과 ‘장유동시송’을 발췌 번역한 ‘유동장사예절’ 그리고 ‘상례문답’을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한문본 「성교례규」 셋째 권에 있는 기도 가운데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들과, 이 예식서 이전에 발간된 「텬쥬셩교공과」에 있는 기도들도 「텬쥬셩교례규」 제2권에 수록하였다. 이처럼 조선교회는 우리말로 편찬한 「텬쥬셩교례규」를 발간함으로써 비로소 천주교 예법에 의한 상장례를 공식 공포하고 시행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는 2003년에 「텬쥬셩교례규」를 대폭 개정한 「상장 예식」을 간행했다. 이 예식서는 「텬쥬셩교례규」를 발간할 때와 달리 사제도 성당도 가까이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므로 미사와 고별식을 장례의 중심으로 편찬했다. 비록 가정이나 장례식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천주교 장례는 미사와 고별식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 예식서는 「텬쥬셩교례규」를 계승하면서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현한 「장례 예식서」(Ordo Exequiarum)의 골격과 내용을 대체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에 시편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도들은 이 예식서에 있는 것들이다. 다만 오늘날 한국사회의 상황, 특히 1970년대 이후 교우들이 급증한 교회 현실을 고려하여 화장·삼우·면례 등을 교회 정신대로 거행할 수 있도록 편찬했고, 오랜 숙고와 준비 끝에 한국 천주교의 조상 제례 의식까지 수록한 것은 이 땅의 복음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점이다. 「상장 예식」은 중국교회의 한문본 「성교례규」, 조선교회의 「텬쥬셩교례규」처럼 보편교회의 정신과 형태를 계승하면서도 한국이라는 지역교회의 특수성을 적절히 반영한 예식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1월 11일, 박명진(시몬 · 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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