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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7-20 조회수5,936 추천수0

[전례 생활]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미사의 감사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세우셨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것을 ‘성찬 제정 보도문’ 또는 ‘성찬 제정문’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이것은 내 피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몸과 피가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축성 말씀’이라고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제시된 네 개의 감사 기도는 그 본문이 각기 다르지만 이 축성 말씀만은 네 개의 감사 기도에서 항상 동일한 본문을 유지한다.

 

축성 말씀 중 포도주에 대한 축성 말씀은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이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에 해당하는 라틴어 본문은 ‘pro vobis et pro multis’이다. 여기서 ‘모든 이’에 해당하는 말인 ‘multi’는 직역하면 ‘많은 이’ 또는 ‘여럿’이라는 뜻인데, 자국어로 된 몇몇 「미사 경본」에서는 이를 ‘모든 이를 위하여’로 번역하였다. 우리말도 그렇거니와 영어로는 ‘for all’, 스페인어로는 ‘por todos’, 이탈리아어로는 ‘per tutti’라고 옮겼던 것이다. 이러한 번역이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은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1970년 : ‘모든 이를 위하여’로 번역 가능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발행하고 있는 Notitiae 1970년 1월 호에는, ‘pro multis’를 ‘모든 이를 위하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주어졌다. 같은 해 4월 호에는 그 답변을 지지하는 소논문도 실렸다. 이 번역을 지지하는 주요 논거는 다음과 같다.

 

1) 이 라틴어의 원문인 아람어는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의미를 지닌다. ‘주님께서 많은 이를 위하여 수난하셨다.’라고 할 때 ‘많은 이’의 범주는 경계가 없으므로, 주님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수난하셨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2)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교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주님의 수난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이는 ‘주님 수난의 가치’가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그 반면에 오직 끝까지 신앙 안에 머무는 ‘많은 이’에게만 구원의 결실이 맺는다고 할 때는 ‘주님 수난이 지니는 효력’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한다.

 

3) ‘많은 이’라고 직역할 때 그 안에 담겨 있는 중요하고 풍부한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이는 소수의 전문가들이다.

 

4) ‘모든 이’라고 의역할 때에, 모든 이는 자신의 의사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구원을 받게 된다고 오해함으로써 발생하는 기계론적인 구원관의 위험성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미약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에 대한 반론은 교회 전반에서 계속되었으며, 이 번역이 최선의 번역인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2006년 : ‘많은 이를 위하여’가 더 정확한 번역

 

경신성사성은 2005년 7월 9일 신앙교리성과 합의해 각국 주교회의 의장에게 이 번역에 관한 의견을 구하는 서한을 발송하였다. 각국 주교회의의 답신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가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제출되었다. 이후 교황의 지시로 경신성사성은 2006년 10월 17일 각국 주교회의 의장에게 회람을 발송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미 승인된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번역은 유효하다. 이것은 ‘pro multis’에 담겨 있는 주님의 의도를 올바로 해석한 것이다. 주님께서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수난하셨다는 것은 믿을 교리이다.

 

2) 그러나 다음과 같은 많은 이유로 ‘pro multis’를 더욱 정확히 번역해야 한다.

 

① 축성 말씀이 유래한 여러 성경 본문에 실제로 나오는 표현은 ‘multi’이다. 이는 이사야서 53장 11-12절과 관련 있는 중요한 표현이다. 주님께서는 ‘많은 이’를 위하여 수난하시는 하느님의 종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다.

 

이것이 성찬 제정문에 받아들여질 때 ‘pro omnibus’(모든 이를 위하여)가 될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pro multis’로 남았음에 유의해야 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성경 또한 이를 ‘많은 이를 위하여’라고 항구하게 번역해 오고 있다.

 

② 로마 전례의 라틴어 전례문에서는 포도주의 축성에 대하여 항상 ‘pro multis’라고 했으며, ‘pro omnibus’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③ 동방 전례의 여러 감사 기도문들 또한 각각 자신의 언어에서 라틴어 ‘pro multis’와 같은 의미의 표현을 유지하고 있다.

 

④ ‘많은  이를  위하여’는 ‘pro multis’의 충실한 번역으로서 그 안에 담긴 모든 의미를 다 담아내고 있다. 그 반면에 ‘모든 이를 위하여’는 사실상 교리 교육의 영역에 속하는 하나의 설명이기도 하다.

 

⑤ ‘많은 이를 위하여’는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하는 표현인 동시에, 구원이 개인의 원의나 참여 없이 기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믿는 이는 은총의 선물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참여하여 초자연적 생명을 받도록 초대된다. 그리하여 그 신비와 하나 되어 끝까지 항구하게 살아가면서, 구원의 결실을 맺는 ‘많은 이’ 가운데 하나로 설 수 있게 된다.

 

⑥ 2001년에 반포된, 전례문 번역에 관한 훈령 「올바른 전례」(Liturgiam authenticam)에 따라 표준판의 라틴어 원문을 더욱 충실하게 번역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경신성사성은 이러한 논거들을 통하여, ‘모든 이를 위하여’라는 번역이 유효한 것이지만 ‘많은 이를 위하여’라는 번역이 더 정확하고 나은 번역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수행되어야 할 후속 조치들 또한 제시되었는데,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모든 이를 위하여’로 번역된 「미사 경본」을 사용하고 있는 지역 교회는 1-2년 안에 ‘많은 이를 위하여’로 개정된 「미사 경본」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새 「미사 경본」이 마련되기까지는 이 점에 관하여 신자들에게 교리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대림 제1주일(12월 3일)부터 사용하게 될 새 우리말 「미사 경본」에는 잔에 대한 축성 말씀에서 ‘pro vobis et pro multis’를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로 번역하였다.

 

 

고려해야 할 해석 하나 : ‘여럿인 너희를 위하여’

 

앞서 제시한 두 가지 번역과 관련하여 제시된 여러 가지 논거는 구원의 가치와 효력이 지니는 보편성 여부와 관련되는 교의신학적 관점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축성 말씀이 성찬례를 거행하며 주례 사제가 낭송하는 전례문이라는 점에 착안한다면, 성찬례에 담긴 전례신학의 측면에서도 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성찬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여럿이지만 주님의 몸인 하나의 빵을 나누어 먹음으로써 모두가 주님과 하나로 일치한다고 한다(1코린 10,17 참조). 바로 이것이 성찬례에서 드러나는 구원이며,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은 사람은 여럿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여럿’은 주님의 몸을 먹음으로써 하나로 일치하여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는 여럿인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라고 하신 것이다.

 

사실 ‘많은 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에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뜻도 있다. 또한 고대의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는 두 단어를 연결하여 하나의 뜻을 나타낸 수사학적 기교가 흔히 발견된다.

 

이를테면 ‘갑과 을’이라는 두 단어로 이루어진 항목을 ‘을인 갑’이라는 하나의 단일한 항목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법에서는 ‘너희와 여럿을 위하여’가 ‘여럿인 너희를 위하여’라는 의미를 지닌다.

 

축성 말씀에 적용된 이 해석은 아직 교도권의 문헌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오히려 성찬례 신학의 핵심을 꿰뚫고 있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편지를 쓸 때 하나의 빵을 통한 구원의 일치를 언급하였는데, 최후 만찬 때에 주님께서 하신, 바로 이 말씀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7월호, 신호철 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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