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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왜 전례서 중의 전례서인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10-16 조회수5,357 추천수0

[경향 돋보기 - 새로 나오는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 왜 전례서 중의 전례서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정신에 따라서 쇄신된 모든 전례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례서는 당연히 ‘미사 경본’일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이루는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고 현존하게 하는 성찬례 거행을 위한 전례서이기 때문이다.

 

미사 경본은 본디 고대 성사집, 곧 예식 거행을 집전하는 주교나 사제가 바쳐야 할 기도문을 담고 있었던 전례서에서 비롯하였다. 교회의 역사 안에서 발행된 미사 경본의 다양한 표준판들은 교회 생활에서 성찬례가 차지하는 특별한 중요성을 나타내는 명확한 표지였다. 각 미사 경본은 그 시대의 특별한 요구에 따라서 성찬 신비의 거행을 질적으로 풍요롭게 했던 변화와 적응, 수용을 담고 있다.

 

다른 한편, 로마 예식의 ‘본질적인 일치’라고 불린 것, 곧 교회의 오랜 전통의 증언으로서 바뀌지 않고 남아 있어야 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언제나 보존하고자 했다. 사실 미사 경본은 다른 전례서들과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법은 믿는 법을 세운다.”, “기도하는 대로 믿는다.”는 격언의 가르침처럼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을 표현한다.

 

새 「로마 미사 경본」(제3표준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속된 전례의 쇄신과 적응을 위한 오랜 노고의 산물이다. 이 미사 경본에 실린 다양한 전례문은 대부분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한 것으로, 기도하는 교회의 삶 자체를 담고 있다.

 

다가오는 대림 제1주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될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과 함께 「미사 독서」와 「복음집」은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사용해 온 「미사 통상문」을 비롯하여 다달이 발간되는 「매일미사」와 주례자용 「매일 미사 고유 기도문」을 대체할 것이다. 우리말 새 미사 전례서들의 발행은 단순히 전례서의 모국어 번역의 의미를 넘어 미사의 풍요로운 거행 방식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리라 기대한다.

 

이 지면을 통해서 우리말 미사 전례서들의 발행의 의미와 함께 몇 가지 성찰해 볼 주제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한다.

 

 

미사 전례서의 풍요로운 표징에 대한 존중

 

“전례서들은 전례 행위에서 실제로 천상 실재를 드러내는 표지와 상징이 되어야 하며 나아가 참된 품위와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지녀야 한다”( 「미사 경본 총치침」, 349항).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큰 신비인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는 데 알맞은 공간과 시간, 그리고 거룩한 표지와 상징들에 특별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 왔다. 올바른 전례 거행을 위한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이자 기본적인 요소는 바로 품위 있는 전례서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 새 「로마 미사 경본」을 비롯한 「미사 독서」와 「복음집」의 발행으로 한국 천주교회도 비로소 성찬례 거행을 위한 온전한 형태의 품위 있는 전례서들을 갖게 된 것이다. 1975년에 발행된 우리말 첫 「미사 경본」은 1996년에 「미사 통상문」을 개정함과 동시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으니, 무려 20여 년 만에 맞이하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신자들은 「미사 통상문」에서 번역상 바뀐 일부 표현에 대한 적응 외에 크게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사제들은 단지 거행의 편의를 위해 「미사 통상문」과 함께 「매일미사」와 주례자용 「매일 미사 고유 기도문」의 사용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전례서의 발행이 기존의 미사 거행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전례에서 사용되는 모든 사물의 거룩한 상징성을 생각할 때 전례서 자체의 가치와 중요성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이 전례서들은 하느님 백성이 이천 년 넘은 역사에서 체험한 신앙을 보존하고 표현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성사」, 40항 참조).

 

마찬가지로 「미사 독서」와 「복음집」은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특별히 존중받아야 한다. 이 전례서들은 봉사자, 행위, 장소, 다른 요소들과 어울려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신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표지이다( 「미사 독서 목록 지침」, 35항 참조).

 

교회는 미사 거행에서 특히 「복음집」을 「미사 독서」와 구분하여 아름답게 장식함으로써 각별한 공경을 표현해 왔다. 입맞춤과 분향, 높이 들어 올림, 또는 촛불과 향로를 든 행렬 등처럼 미사 거행에서 「복음집」에 공경을 드리는 모든 행위가 이에 해당한다.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을 언제나 주님의 몸처럼 공경해 왔듯이,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거행하는 올바른 규범과 내용을 담고 있는 미사 전례서들의 가치를 인식하고 그 활용을 적극 독려해야 할 것이다.

 

 

전례서에서 풍요로운 전례 거행으로

 

전례서의 본문은 전례가 거행될 때 비로소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우리를 참여시키는 행위이자 사건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모든 전례 거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거행 자체가 하느님의 주도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사제가 축성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축성하시는 것이고, 독서자가 성경을 선포할 때 하느님께서 몸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찬례는 본질적으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께 다가가게 하는 하느님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 기본 구조는 우리 마음대로 바꾸거나 최신 경향에 얽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의 성사」, 37항 참조).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을 담고 있는 성찬례는 전례 규범의 내용과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할 때 올바로 거행될 수 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거행 방식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전례 거행에서 어떤 인위적이고 부적절한 것을 추가하는 것을 우려하시며, 전례 거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성직자들(주교, 사제, 부제들)의 특별한 책임을 상기시키셨다. “예식의 특정한 구조에 주의를 기울여 충실히 따르는 일은 선물인 성찬례의 본질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 형언할 수 없는 선물을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제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사」, 40항).

 

따라서 성찬례의 거행 방식에 대한 특별한 의무를 부여받은 사목자들이 우선적으로 현 전례서들이 제시하는 규범을 알리고, 「미사 경본 총지침」과 「미사 독서 목록」에 나오는 풍부한 내용을 활용하도록 사목적 관심과 노력을 더욱더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전례 거행에서 자주 지적되었던 예규 중심이나 형식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전례 안에서 본질적으로 드러나야 할 하느님의 신비에 신앙 공동체를 능동적으로 참여시키려는 올바른 거행 방식과 관련된 것이다. 우리는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지침이 얼마나 자주 소홀히 다루어져 왔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제는 미사를 준비할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하느님 백성의 영신적 공동선을 먼저 고려하여야 한다. 미사의 각 부분을 고를 때에도 거행 중에 특정 임무를 수행할 사람들과 협의하고 또한 신자들에게 직접 관련되는 부분은 반드시 그들과 협의하여야 한다. 미사의 각 부분은 다양하게 고를 수 있으므로, 거행에 앞서 부제, 독서자, 시편 담당자, 선창자, 해설자, 성가대는 각자 자기와 관련된 부분에서 쓰이는 본문을 잘 알고 있어야 하며, 결코 즉흥에 따르지 말아야 한다”(352항).

 

이 지침은 미사 거행을 위한 준비의 중요성을 분명히 말해 준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란 마치 어떤 공연을 다루듯이 예식 진행의 효율성과 완벽함의 요구에 응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전례는 결코 어떤 완벽한 작품이나 공연을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처럼 거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전례 거행은 기쁨이나 감동도 체험할 수 없는 노동 행위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거기서 주례자인 사제는 완벽한 공연을 위해 미사 내내 틀린 부분을 찾아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감시자의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고, 즉흥적인 성가 지도자와 오르간 반주자는 그들의 좋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미의 노래에 공동체를 참여시키지 못할 것이다. 완벽한 성가대라도 미사 거행을 위해 모인 회중의 존재를 모른다면 단지 어떤 좋은 음악회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즉흥적인 독서자는 신자들에게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의 그 풍부한 의미를 깨닫도록 이끌지 못하고, 신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매일미사」 책이나 주보와 같은 인쇄물을 뒤적이는 데 더 열중할 것이다.

 

예식의 조화로운 준비와 실행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마음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다. 잘 준비된 미사 전례는 거행되는 신비에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도록 신자들을 준비시킨다. 이것이 바로 미사 준비의 목적으로 제시된 ‘하느님 백성의 영신적 공동선’이 뜻하는 바일 것이다.

 

 

전례의 아름다움 : 성찬례가 교회를 만든다

 

어떻게 신앙과 삶의 일치 안에서 미사를 아름답게 거행할 수 있을까? 전례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이와 같은 물음은 앞서 언급한 올바른 거행 방식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어떤 교회 공동체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더 근본적인 과제를 떠올리게 한다.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 없이, 삶 속에서 신앙을 증언하는 공동체 없이 전례는 결코 아름답게 거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금’ 미사를 거행하는 우리 신앙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전례 거행 자체에 쏟는 온갖 노력과 관심은 언제나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의 관계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례, 특히 성찬례 거행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여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십자가 사건으로 절망에 빠진 제자들이 주님 말씀의 빛으로 마음이 뜨거워져 삶의 의미를 되찾고, 빵을 쪼갤 때 주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함으로써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용감한 사도로 변화된다. ‘말씀’, ‘성찬’, ‘삶’으로 이어지는 이 점진적인 여정 속에서 전례의 거룩한 표지와 상징의 놀라운 힘과 뜻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도 미사 안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느꼈던 뜨거운 감동과 기쁨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쁨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세상 속에 파견되어 선포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 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하는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 안에서 교회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보셨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복음의 기쁨으로 충만한 공동체의 복음화 활동의 열매와도 같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하고, 언제나 기뻐할 줄 압니다. 또 작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곧 복음화의 활동에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기뻐하며 경축합니다. 기쁨에 찬 복음화는 우리 일상의 요구 안에서 선을 키우며 전례 안에서 아름다움이 됩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을 통하여, 교회는 복음화하고 복음화됩니다. 전례는 또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 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입니다”( 「복음의 기쁨」, 24항).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0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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