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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죽음은 또 하나의 위대한 만남 / 연중 제33주일 다해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7 조회수1,379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실 지구 종말인 마지막 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어쩜 우리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닌, 믿음과 희망을 갖도록 이끌어 준다. 오래 전부터 묵시 문학은 역사의 종말이 다가올수록 가족이나 국가, 사회와 자연계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 기존 질서가 파괴되고 혼란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박해로 수많은 이가 순교를 하던 시대에 끝까지 신앙에 충실한 이들이 다시 살아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별처럼 빛나리라는 희망을 전한다.

 

예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의 변화와 함께 하늘의 기운이 제 기능을 잃을 때,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라고 이르셨다. 여기서 그 날의 분위기가 무시무시하고 어둡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마지막 날도, 우리가 무서워하는 다른 어떤 이가 아니라, 사랑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어 우리를 불러 모으시는 날이란다.

 

실제로 달도 태양도 수시로 모습이 바뀐다. 자신이 변화되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달리 보일수도. 마음이 밝은 날에는 달의 아름다움이 느껴지지만, 마음이 어두운 날에는 별다른 느낌이 없다. 종말 역시 이런 삶의 변화이리라. 오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결론일 테니까. 그러니 두려워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인생작품일 뿐이니까.

 

정녕 삶의 중간에서 종말을 판단할 수 없다. 감정적으로 해석도 못한다. 종말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하기에. 누가 종말에 대해 결론 내릴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종말에 구원이 가능해진다는 건 단지 사람의 생각일 수도. 중요한 것은 언제나 현실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늘 새롭게 출발하며 거듭 태어날 것을 이야기한다. 새로운 시작이 종말을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일 게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종말에 대한 말씀은 묵시 문학적 표현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종말은 무시무시한 두려움의 표상이지만, 실제로는 구원과 희망의 대상일 수도. 천지창조에서 시작된 인류의 삶은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역사이다. 태초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셨고, 또한 그 계약에 끝까지 충실하셨다. 반면 인간은 그 계약에 충실하지 못하고 매번 부족하기만 하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구원자 메시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그분께서 오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다. 그분께서 가신 그 모습으로 다시 오셔서 마지막 때를 여시고, 이어서 모든 생명이 충만함에 이르고, 모든 이가 하나 되는 세상이 될 것이기에.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거저 오거나, 우리와 관계없이 오는 게 아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을 마치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당신께서 끊임없이 시대의 징표를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를 알아듣고, 그 안에서 당신을 찾으며, 우리 노력으로 이 구원사업에 직접 참여하기를 바라시기에.

 

하느님 구원 사업의 중심에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공동체들 사이의 편을 가르는 모든 벽이 다 허물어져, 완벽한 그분 나라가 완성될 게다. 하느님 나라는 적들에게 승리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도록 순명하는 여정이다. 우리가 바라는 충만함에 이르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 주어진 죽음을 지나가야 하기에. 순명으로 받아들인 그 죽음은,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가장 위대한 사랑이 실현되는 만남일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종말,묵시 문학,해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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