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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하느님의 어린양, 놀라운 상호 교환의 신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7,409 추천수1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하느님의 어린양, 놀라운 상호 교환의 신비

 

 

오늘날처럼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혈안이 된 시대에 상업적 ‘교환(commercium)’이라는 말은, 적어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맞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달리 예수님과 인간의 상호 교환은 한쪽이 엄청난 손해를 보고, 다른 한쪽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익을 얻는다. 이것이 파스카 신비이고 하느님의 어린양의 희생이다.

 

 

놀라운 상호 교환의 기적인 하느님의 어린양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호 교환’이라는 용어를 이용하여 적절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본질상 생명을 얻을 능력이 없고 그분께는 본질상 죽음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은 우리와 놀라운 상호 교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성주간 월요일 독서기도의 제2독서).

 

죽음과 생명을 맞바꾸는 이 놀라운 ‘상호 교환’에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희생(sacrificium)’이 지닌 가치를 기억하고 되새기게 한다.

 

 

빵 나눔의 동반 성가(聖歌)인 하느님의 어린양

 

성찬 전례의 ‘평화의 인사’를 마친 후에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고 성작 안에 넣는 동안, 성가대나 회중은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을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외운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평화를 주소서.”

 

이 노래는 본래 동방 그리스-시리아 교회에서 부르던 것으로 7세기경에 세르지오 1세 교황(687-701년)이 로마의 미사 전례에 도입했다. 교황은 콘스탄티노 시노드가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 부르는 것을 금지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면서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전 회중은 이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했다. 곧 이 노래는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부르는 성가로 출발했다.

 

그러나 8-9세기부터 면병이 등장하고 빵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되자 여러 번 반복하여 부르던 것을 세 번만 반복하였다. 이에 따라 빵 나눔의 동반 노래로서 지닌 가치가 퇴색되어 독자 예식으로 변화하였다. 게다가 바로 앞에서 거행한 평화의 인사와 연결되어 마지막 간청 ‘자비를 베푸소서’가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점차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인 11세기에는 위령미사 때에 두 번째와 세 번째 간청을 ‘그들에게 안식을 주소서’,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변경하여 불렀다.

 

중세기 동안 이 노래는 빵 나눔과 더욱 멀어져 프랑스의 일부 지역과 수도원에서는 아예 빵을 나누기 전에 부르기도 했다.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뼈가 부러지지 않고(탈출 12,46; 시편 34,21 참조) 오직 심장만 찔렸다(요한 19,33-34 참조)는 성경 말씀과 빵을 나누는 동작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세 후기에는 빵 나눔과 관계없이 축성된 빵을 나누어 성작에 넣은 다음에 부르는 성가가 되었다가, 결국 평화 예식의 동반 성가, 심지어 영성체 성가로 간주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 때 전례 개혁을 통해 본래의 자리인 빵 나눔의 동반 성가로 환원되었다.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가이며 구원 희생에 대한 감사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그리스도의 명칭은 신약성경에서, 특히 세례자 요한의 입을 통해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선포되며, 요한 묵시록에 자주 등장한다(묵시 5,6 이하; 19,9 참조). 이 호칭은 이사야 예언자에 의존한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그러므로 이 주님의 종의 노래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을 가리키는 분명한 암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파스카의 어린양에 비유한다. “묵은 누룩을 깨끗이 치우고 새 반죽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5,7).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주님을 일컬어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 부르며 바오로 사도의 고백에 동참한다. 그리하여 파스카 희생 제물과 새로운 파스카의 ‘자비’와 ‘평화’를 상기한다.

 

사제는 주님의 몸을 높이 들어 올리며 세례자 요한의 말과 요한 묵시록의 구절을 빌어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요한 1,29 참조)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묵시 19,9 참조).

 

이에 공동체는 카파르나움에서 로마의 백인대장이 예수님께 한 말을 빌어 응답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마태 8,8 참조).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행위로 우리 삶에서 악의 권세를 없애신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고, 우리가 당신 뜻에 따라 자비와 평화의 희생으로 이웃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어린양’이 되도록 이끄신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의 희생 없이는 구원도 평화도 있을 수 없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5월호(통권 470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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