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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6 조회수1,47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 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복음 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강의 때문에 지방에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식사를 간단하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근처 편의점에 들어갔습니다.

컵라면과 삼각김밥 하나가 식사로는

딱 맞거든요. 컵라면 1,300원 그리고

삼각김밥이 1,000원이었는데,

바로 옆에 있었던 삼각김밥이

할인해서 700원입니다.
저는 무엇을 선택했을까요?

좋아하는 맛의 삼각김밥이 아니라

할인되는 삼각김밥을 선택했습니다.

더군다나 동전이 생기지 않는

딱 2,000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300원을 번 것 같기도 합니다.
식사 후에 자동차 주유소에 들어갔습니다.

글쎄 50,000원 이상 주유하면 세차가

 무료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는 것입니다.

주유를 마치고 세차장에 가서 주유

영수증을 내밀었더니, 하부 세차는

 3,000원이라고 하면서 기왕 세차하는 것

3,000원 내고서 하부까지 세차하라는

것입니다. 이 직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부분도 깨끗하게 해야 차를

오래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300원을 벌고 세차를

무료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별 이득이 없어 보입니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삼각 김밥은

시간이 지나면 그냥 폐기처분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냥 버릴 것에 700원을

쓴 것입니다. 또한,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하부 세차까지 해 주고 세차비로 2,000원

받습니다. 공짜라는 생각에 비가 약간씩

내리는데도 세차했는데 사실 돈 주고

괜히 세차한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의 상술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알면서도 속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의 기준만을 보고 듣는다면

과연 주님의 뜻을 마음에 간직하면서

제대로 따를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닐까요?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물론 우리를 매우 당황스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

관계되는 것에만 집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관계되는 것에 충실히

따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혜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나보다 더’라는 말은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말씀과 정반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그 어떤 것도 당신보다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될 때 하느님

나라는 멀리에 있지 않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다.

(헬렌켈러)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행복한 삶.

매주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가서 주일미사를

가족들과 함께 봉헌합니다.

 미사 후 다시 주차장에 가서

차를 타고 성지로 돌아오는데,

글쎄 운전석 쪽으로 다른 차가

 너무 바싹 주차해서 문을 열고

도저히 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불편을 느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자동차 문이 봉고차처럼

슬라이드로 열린다면

훨씬 더 편할 텐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불편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여러분의 욕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 샤워하고 나서 물기가

너무 많아 욕실 바닥이 미끄러운 것.
- 면도할 때 깎은 수염이

세면대 위에 많이 떨어져 있는 것.
- 세면대 위 거울은

왜 이렇게 얼룩이 많은지….
그렇게 크지 않은 욕실만 봐도

불편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 안에는 얼마나

많은 불편함이 있을까요?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에

산다면 어떨까를 떠올려 보십시오.

훨씬 더 불편함의 숫자가 많을 것

같지 않습니까? 과학기술의 발달로

현대가 적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금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만큼 요구사항과 불평불만이

많아진 것입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야 불평의 삶보다는

만족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얼굴을 찡그리는 일보다 웃는 일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어떤 삶이 더 행복할까요?

(우리가 본받고 배워야 할 십자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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