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김웅렬신부복음묵상(오늘은 나, 내일은 너!)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5 조회수1,149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찬미예수님

돈 많은 구두쇠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정말로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서

 억척스럽게 돈을 긁어모아서 

강남에도 8층짜리 빌딩이

하나 있고 거기서 나오는 세만

하더라도 칠천만원, 팔천만원....

저 강원도 평창에도

몇 만평이 있고,

군데군데 동산 부동산해서

그 많은 돈을 두고도

어디 여행 한번 가보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 본 적 한 번도 없는

구두쇠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어느 날 이 할아버지가

밥을 먹다가 복통이 온 거예요.

 이 할아버지의 만병통치약은 뭐냐? 

빨간 옥도정끼 어지간한 병은

배꼽에다 이 빨간약만 칠하면

다 낫는데 옥도정끼 한 병을

배꼽에서부터 젖꼭지까지 발랐는데도

배가 쥐어뜯듯이 아픈 거야.

견디다 견디다 못해서

큰 아들을 불렀어요.

“큰애야, 빨리 좀 와봐라.

배가 너무 아파서 나 오늘

가겠다...아이구 아이구,

나 병원 좀 데려가 다오.”

아들이 생각하니 ‘

세상에 살다가 별일을 다보겠네.

약국도 한 번 안가는 양반이

돈 아까워서 어떻게 병원에를 가?’

난생처음 병원에 가서 MRI,

CT촬영서부터

종합검진을 다 했어요.

사흘 있다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혀끝을 차. “쯧쯧쯧쯧~~

아이고 영감님, 어쩌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렇게 놔 두셨수?

목에서부터 작은창자 큰창자

할 것 없이 온 몸이 암 덩어리로

꽉 차서 손을 쓸 수가 없으니

영감님, 삼 개월.... 알죠? 

가셔서 드시고 싶은 것 드시고

마지막 세상정리 하세요.”

사형선고를 받고 나와서 보니

참 인생무상, 삶의 회의가 오지요.

그 손가락질까지 받아가면서

모았던 재산 한 푼도 못써보고

죽게 생겼으니....애비가 죽는다고

하니까 며느리들끼리 모여서

가족회의를 한다고 하는데

화장실 가다가 열려진 문틈으로

‘뭐하나~~’ 하고 들여다보니

세상에 뭐하고 있었겠어요?

-재산싸움-

“둘째는 말이야,

강남 것 넘보지도 마.

그건 내가 찜 해 놓은 거니까

쳐다보기만 해봐라.”

그걸 밖에서 듣고 있으려니

그 영감님은

‘참, 내가 그동안 헛살았구나!’

이 할아버지는 죽기

삼 개월 전에야 철이 난거예요.

그래서 자식들을

다 불러서 유언을 했어요.

‘내가 본의 아니게 들었지만

나 죽고 난 다음에 내 재산은

삶아먹든 튀겨먹든

꼬치를 해먹던 바비큐를

해먹든 맘대로 하거라....

하지만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돈이 들더라도 관만큼은

특수제작을 해서

관 양쪽에 구멍을 내어서

내 양손을 관 밖으로 빼내라...

주먹을 쥐고 죽었으면

고무풀을 발라서라도

손바닥을 펴서 병원으로

가지도 말고 병풍도 치지 말아라.

나 영안실 거기 들어가기 싫으니까

집에서 손님을 맞이해라.’

병풍도 치지 말고,

관은 벽에다 세워놓고,

양손을 밖으로 빼라!

‘아이고 우리 아버지 암이

머리꼭대기까지 올라갔구나!’

‘내 노망난 것 아니야.

내가 죽을 때가 되어서

이제야 철이 났어...내가

죽었다고 하면 친구 몇 놈이

찾아올 텐데, 그놈들은

나보다 더 지독스럽게

산 놈들이야.

 내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이 뭐냐?

빈 손바닥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

니들이라도 이제부터 정신 좀

차려서 가진 돈 제대로 쓰고

옳게 좀 살아라.

나처럼 이렇게 죽음 3개월

남겨놓고서야 철이 들면

어떻게 하겠느냐?’

아들들이 그 얘기를 듣고

‘예, 아버지

다른 것은 못 해드려도

그건 꼭 해드리겠습니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서

관을 특수제작해서

죽은 시체의 손을 밖으로

 빼내고 장례를 치렀어요.

조문객들이 그냥 들어왔다가

그냥 다 뒤로 자빠져.

시체손이 빠져 나와 있고

관이 세워져있으니.....세상에

이게 있을 법한 일입니까?

그러니 누가 욕을 먹겠어요?

‘이 후레자식들이 미쳤구나.

이놈들이....’

그거 일일이

어떻게 다 설명해요.

그래서 아예 컴퓨터로

타자를 쳐서

코팅을 해서 걸어놨어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아버지 손에

빠져나왔으니 우리들 잘못은 없음.]

지독스럽게 더 구두쇠처럼 사는

 다른 영감님 셋이 왔다가

돈 몇 만원씩 부조하고

죽은 친구시체의 빈 손바닥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거예요.

그날 저녁에 포장마차에 가서

닭똥집 안주를 놓고

참이슬을 놓고 한잔하면서....

서로 얘기를 주고받았죠.

“나 아까 충격 받았다.

 너 느낀 것 없냐?”

“그놈이 분명히 우리들한테

 한 얘기야.....야, 그 빈손바닥

나 무섭더라.”

“그래 우리들도 남은 인생

정신 차리고 옳게 살자.”

“옳게 살려면 옳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참다운 종교를

찾아야 되는데 내가

조사해본 바로는

그래도 그중 천주교가

가장 낫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 성탄 때

그 세 사람이 세례를

받는다는 전설이올시다.

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숨이 끊어진 다음에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지만

우리 믿는 자들은

주님의 권능을 양손에

쥐고 감을 믿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죽을 때

부활에 대한 확신을

움켜쥐고 감을 믿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평화를 온몸에 휘감고

죽음을 믿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성령의 칼을

양손에 잡고 죽음의

두려움과 싸워서

평화롭게 죽을 것을 믿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숨이

 끊어질 때까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붙들고 감을 믿습니다.

사제는 직책상 임종의

현장에 많이 있게 되는데

저도 사제로 살면서 수많은

임종자리에 머물렀었어요.

물론 90%는 전부 다 천주교

신자들이었고 10%정도는

어떻게 어떻게 하다보니까

신자아닌 사람들이었는데

어떤 때는 버스가 뒤집혀져가지고

그 버스에 제가 타고 있었고,

시신을 수습하다가  저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어떻게 세례를 줘야

될 때가 있었는데 물이 어디 있어요?

급할 때 침으로도 했어요.

PT병에 물 흐르는 것 손으로

적셔서 얼굴에 부어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형제에게 세례를 베푸나이다.’

그렇게 해서 10% 정도는

외인들이 임종하는 자리에

있기도 했어요.

 살아생전에는 인격자소리를

들었고 아주 고매한 마음을

지녔던 분들인데 그분의

임종자리에 가면 내 옷자락을

붙잡고 놓지를 않아요.

‘당신이 신부니까 나 좀 살려주시오.’

그런데 그 양반 연세가 아흔 둘이야.

참 노인네들 죽고 싶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야.

아흔 둘인데도 난 더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죽음을 못 받아들이는 걸

보면 정말 추해요.

그런데 비록 한평생을 동네 어귀

한 귀퉁이 배추 몇 개 놓고

팔면서 살던 할머니라

하더라도 아까 말씀드린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성령의 칼을 잡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온몸에 휘감고 산,

그런 영혼의 소유자들은

비록 그 분이 살아생전에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는

번데기 장사라고 하더라도

하다못해 한평생 구두닦이를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임종할 때는 그렇게

위대할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가 숨을 거두려고 해서

임종경을 바치고 마지막

병자성사를 드리면 숨을

 할딱할딱 거리고 의식이

없다가도 병자성사를

딱 마치고 나면 할머니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울고 있는

딸들을 보고 “왜 우냐, 왜 울어? 

니 에미 죽었냐?

둘째 영숙이 너, 바울라 너...

나 죽고 난 다음에 성사 좀 봐.

둘째 사위 너도 정신 차리고,

니 가게 잘되는 거

니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아?

내가 얼마나 기도했는데...”

자식들 다 챙겨놓고,

성사보라 그러고 장례 어떻게

치르라 다 해놓고 ‘나 간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위대하게 죽더라!

이렇게 죽기 위해서는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런데 성숙한 신앙인은 뭐예요?

여러분처럼 미사수건 하나

뒤집어쓰고 있다고

성숙한 신앙인이에요?

세례명 하나씩 멋있는 것 갖고

있다고 성숙한 신앙인이에요?

그냥 주일날 왔다 갔다 한다고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죠?

신앙인과 종교인은 뭐가 달라요?

세례 받을 때는

종교인으로 세례를 받지만 

살면서 신앙인이 되어야죠.

우리 천주교가 종교인은

드글드글대는데 신앙인이 없어요.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는 뭡니까?

종교인은 머릿속에만

하느님의 사랑,

불교신자들 같으면

부처님의 자비만 있을 뿐이지

실천으로 끌어내려서

열매를 맺지 못해요.

열매 맺는 자가 바로

 신앙인인데 그저 듣기만 해서

자기 자신을 속여요.

그저 듣기만해서 머리만 커지고

지식만 커지고 귀만 고급이 됐지

열매를 맺지 못해.

듣고 배운 것이 겸손의 재료가 돼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히려 교만의 재료가 돼서

자기보다 못하다 싶은 사람들을

발가락의 때만큼 깔아뭉개고

무시해버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늬만 천주교 신자예요.

코너에 몰리면 언제라도

하느님 밥 먹듯이 배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야 죽을 때,

성령의 칼을 잡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붙들고,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고,

마치 작은집에서 큰집으로

이사 가는 마음으로 내가

이제껏 하꼬방에서 살았지만

이제 내 숨이 끊어지면

하느님께서 천국에

내가 살집을 마련해주신다!

작은집에서 큰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부활신앙이고

위령 성월 때 우리가 늘

묵상해야 되는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뒤의

부활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할머니들 천당 가고 싶으신 분?”

 하면 다 손드십니다..

“지금 보내드릴까요? ”

그러면 거의 손드는

사람이 없더라.

언젠가 괌에서 KAL기가

추락한적 있었지요.

그 추락사고가 있고나서

일주일 뒤에 중국에 선교하러

회장님들 몇을 데리고

KAL기를 탔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기도소리가 나오는 거야.

앞줄에 보니까 순복음교회

전도사들이 앉아서 안전대를

꽉꽉 조이고 서로 손잡고

통성기도 한다고,

옆에 보니 중이 하나 탔는데

염주하나를 들고 나무아미타불

하고...우리 회장님들 비행기 타도

생전 묵주기도 하는 것 본적도

없는데 묵주 꺼내 가지고

묵주기도하고...비행기가

이륙을 하니까 ‘아멘!’

두 시간 반을 날라서

심양공항에 내리는데

비행기 타 본 사람 알겠지만

‘덜커덩' 할 때

기분 좋은 사람 없지요?

바퀴 갈리는 소리가  ‘찌익~~’ 

 역추진 하면서 브레이크를

딱 잡고 비행기가 서니까

‘할렐루야!’ 그것을 뒤에서 보면서

이 앞에 앉아 있는 개신교

전도사들이나 ,우리 회장님이나 ,

저 스님이나 나름대로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저렇게

죽기가 싫어서 난리를 치는 구나!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위선의 삶을

벗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사전적인 의미로 ‘위선자’

라고 그럽니다.

성서적인 의미로는

가장 마태복음 5장 19절에

작은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8장 9절에

여러분의 자유로운 행동이

 믿음이 약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내 마음 행동 때문에

믿음이 약한 내 남편이

걸려 넘어질 수도 있어요.

아내는 성령세미나 받아가지고

좋아서 길길이 날뛰는데

주일미사 지키기도 힘든 남편은

그거 보면 열등감도 생기고

정말 자존심이 상하고...

자유로운 행동 때문에

믿음이 약한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그랬습니다.

히브리서 13장 7절에 보면

하느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일러준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를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진리는 구분이 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것은 수학적인 진리,

다른 말로 과학적인 진리라고 합니다.

어느 학원 수학 선생님이

수학을 기가 막히게 가르쳐서

그 선생님한테만 가면

수학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도 수학박사가 돼.

그런데 그 선생님이

도덕적으로는 땅에 떨어진

바람둥이야.

그래도 그 학원 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아이들은

꾸역꾸역 모여들지요?

다시 말하면 수학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은

지가 사는 행동과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도 세상으로부터

돌을 안 맞아요.

그런데 종교적인 진리,

윤리적인 진리를 가르치는

나나 여러분은

우리들이 하는 행동과

말이 다를 때는 세상으로부터

돌이 날라 옵니다.

저도 20년 넘게 특별히

피정 지도를 해왔어요.

솔직히 제가 한 말 종이

반으로 접어서 귀가 맞게끔

100% 다 못 살아요.

그렇지만 신자들이 볼 때

우리 신부님 강론대에서 하시는 말

당신 자신이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는 쓰신다!

하는 평가 정도는 받아야

위선자가 아니지...

강론대에서 하는 말과

사는 행동이 전혀 다를 때는

그 사제는 분명히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동네에 천주교신자가 있는데

그 신자가 그렇게

돈을 많이 꾸어 가.

그리고 꾸어 갔다 하면

그건 다 자기 돈이야

베드로 전서에

 ‘이방인들 앞에서

행실을 단정히 하라!’

고 했는데 그런 천주교

신자를 보면서 성당에

 나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위선의 삶을 벗어나라!

두 번째로 성숙한

신앙인이 되려면 자기 법에

얽매어서는 안 된다!

사제들에게 3대

조당이 있는데 미사 드릴 때

세 가지 곤란한 것

첫 번째,

미사 드릴 때 딸꾹질 나는 것

특히 성체 성혈 축성할 때

딸꾹질 나면 아주 돌아가세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딸꾹~~’

두 번째 조당은

한 여름에 제의 속으로

모기가 기어 들어와서 쏘면

얼마나 가려운지 아시지요?

세 번째 조당은 뭐냐!

설사가 날 때

어느 본당에서

주임신부님과 보좌신부님이

같이 미사를 드렸어요.

그런데 주임신부님이 보니까

보좌신부님 얼굴이 점점

똥색으로 변해가.

주임신부님이 경험이

많으시니까 즉시 알아채고

‘아, 이 사람이 속이 불편구나!’

신자들 헌금할 때 신자들

눈치 못 채게 복사들에게

초 하나씩 들려가지고

거룩하게 나가서

거룩하게 싸고 와라!

보좌신부님이 영문도

모르는 복사들 초 하나씩

들려서 제일 빠른 길로

항문은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제관으로 뛰어 들어가서

 제의 벗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제의를 머리 뒤로 훌러덩

제끼고 일을 보고나니

세상에~~ 얼마나

시원했겠어요.

그때까지도 복사들은

사제관 화장실 앞에 서 있다가

초를 들고 다시 성당으로

쫘악~~ 입장을 하는데

 여기저기서 막 ‘킥, 킥~~

' 웃는 소리가 들려.

보좌신부님

 얼굴이 새빨개졌지요.

‘아, 주님신부님 치사하다...

내가 나간 사이에 말해서

신자들이 알고 있구나!’

보좌신부님이 궁시렁거리면서

제대위로 올라가니

본당신부님도 배를 잡고

웃으시는 거야.

“이 사람아, 허리춤에

제의 말려들어간 것 좀 빼내”

바지를 추키다가 제의자락이

 바지 속으로 다 기어 들어간 것도

모르고 개폼만 잡고 올라갔으니.....

여러분들, 왜 웃는지 이해가 안 가!

여러분 꼬라지가 그렇다  이거야.

‘아이고 나 자매님

신앙 반만 닮았으면 좋겠어....’

앞에서는 이런 소리를 듣는

나지만 주님 앞에서는

얼마나 위선이고 꼴불견인가!

보좌신부님의 그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 그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성령께 힘을 얻기 위해 이 늦은

시간에 이렇게 찾아왔잖아요.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시냐!

사람이 있느냐! 에 따라

종교인이 될 수도 있고

신앙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가슴팍에 두고 사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처로부터 헤어나지 못합니다.

자식이 주는 상처,

남편이 주는 상처..

이웃이 주는 상처....

우리 신앙인들의 가슴 안에는

그리스도 한 분만 계셔야 되요.

사람은 믿는 존재가 아니라

신뢰하려고 애쓰는 존재입니다.

여러분들 사람한테

많이 속아봤잖아요.

저도 많이 속아봤어요.

저 사람은 나를 안속이겠지~~

교우니까 설마 신부를 속이겠어?

그런데 공사할 때마다

수도 없이 속고 또 속았어.

아유~~그럴 때마다 상처도

받지만 느끼는 교훈도 있어요.

내 안에서 사람이 빠져나가고

하느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모든 고통은 양면성이 있어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는

 대신 하느님이 그 자리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물론 하느님이 내 가슴 가득히

있어도 다른 놈이 와서

칼을 푹 찌르면 아프지요.

그런데 사람 중심으로 살 때와

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와 뭐가 다르냐!

하느님 중심으로 살 때는 회복이 빨라!

인간을 가슴팍 속에 안고 사는 사람은

10년 전에 받은 상처 그대로

돌에 새기고 살아요.

잊어야지...잊어버려 야지 하고

기를 쓰며 살아도 갑자기

그 생각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고

자다가도 벌떡 숨을 못 쉴 정도로

심장이 벌렁벌렁~~

그러나 하느님 중심으로 살면

미운 놈이 와서 옆구리를

 찌르고 뒤통수를 쳐도

‘그래, 씹어라~~

니 이빨이나 부러지지...’

정말 극한상황에 놓이면

어떤 용기가 생겨요?

 ‘그래, 까짓것

죽기밖에 더 하겠냐~~

죽으면 주님 곁에 가고..

얼마나 좋아,

나 죽는 것 안  두렵다!’

마귀가 날 건드려도

 ‘니가 사람 잘못 선택 했어

내가 얼마나 독종인줄 알아

내 너한테 안 져!’

성령의 칼을 잡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중심이 되면 분명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천주교 묘지 앞에 써있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우리는 넓은 의미의

사형수입니다.

교도소에서 형 집행을

기다리는 받고 있는

그 사람만 사형수들이 아니라

우리도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르지요.

사형수들은 늘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아요.

새벽에 교도관과 신부님이

철창 앞에 서 있을 때는

‘아,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구나!’

수인 사목 6년 동안에

저는 여섯 사람이 사형당하는

그 눈앞에 있었어요.

비록 그 사람이 세상에서는

조폭으로 사람 몇 명을 죽이고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교리를 배우고 천사처럼

보속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았어요.

유명한 영성 신학책을

많이 읽는다고 성인성녀

되는 게 아니라 성서 한 구절도

못 읽는 문맹자라고 하더라도

성인성녀 품에 오를 수 있어요.

비법이 뭐냐!

아침에 눈을 뜨면 주님,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밖에 안 남아 있다고

 한다면 묵주기도 드리면서

어디 분심잡념이 들어오고

 용서 못할 사람이 어디 있으며

그날이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떤 놈이 와서

내 싸대기를 때린다고 해도

‘그래, 때려보시지...’

위령성월은 껍데기뿐인

종교인으로부터 벗어나서

신앙인으로서 참다운

준비를 하는 겁니다.

우리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위령의 날이기에 늘 죽음을

묵상해야 되요.

오늘은 위령성월 첫날이면서

모든 성인의 축일입니다.

이제껏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이 세상을 살다 갔습니까?

성모님 성지에 와서 항상

배워가야 할 테마는 겸손입니다.

두 번째는 순명입니다.

성모님께서 성부께 죽기까지

순명하셨기에 그 아들 예수님도

성부께 죽기까지 순명하셨습니다.

부모가 하느님 앞에 순명하면

그 자식들도 하느님 앞에

순명하며 살아요.

성모님 성지에 올 때마다

순명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도움을 청하셔야 됩니다.

순명은 기적을 낳습니다.

순명은 기쁨과

일치를 가져옵니다.

순명은 삼덕 중에서

신덕의 핵심이라고 하지요.

‘어, 벌써 12월 달이네!’ 

이렇게 허망하게 한 달을

보내지 말고 오늘 11월 첫날,

성모님이 불러주신 것을

늘 상기하면서 11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알고 산다면

그것이 훈련이 되어서

다음 달 12월도 역시

위령의 날처럼 지낼 수 있 것이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 때

우리들 앞에 닥치는

어떤 어려움과 십자가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믿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