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1.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4 조회수1,71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로마 11,29-36

형제 여러분,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

 30 여러분도 전에는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마찬가지로 그들도 지금은

여러분에게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지만,

이제 그들도 자비를

입게 될 것입니다.

 32 사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오!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정녕 깊습니다.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
34 “누가 주님의 생각을

안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된 적이 있습니까?

35 아니면 누가 그분께

무엇을 드린 적이 있어 그분의

보답을 받을 일이 있겠습니까?”
36 과연 만물이 그분에게서 나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4,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한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했었습니다.

동아리 이름은 ‘우취부’입니다.

 이 곳은 우표 수집을 취미로 하는

동아리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우표를 모아왔기 때문에 꽤 많은

우표를 간직하고 있었지요.

나라마다 다른 우표의 모양과

우표에 담긴 의미들을 공부하면서

 너무나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취부’에 가입한 것이었지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재미도 있었고

 특히 같은 부서원들이 힘을 합쳐서

전시회도 열어 보면서 우표의 세계에

완전히 푹 빠져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한 동아리 선배가 제게 우표들을

정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대회에

한 번 출품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기에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당시에 만 장

이상의 우표가 있었지만,

 아직 가지고 있는 우표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고 학교 공부로

그럴 시간도 없다면서 거절했습니다.

대신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시간도 많고 우표의 양도

 더 많아질 테니 그때 작품을

만들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우표는

100장도 되지 않습니다.

이사를 하면서 없어지다 보니

지금은 그 100장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표 모으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아쉽고 후회가 됩니다. 더군다나

부족한 상태라도 고등학교 때에

출품했더라면, 좋은 경험을 얻게 되어

 지금까지도 이 취미를 계속

살리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인가를 시도할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에 대해 많이

알게 될 내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는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알게 될

내일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가장 좋을 때라고 착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가까운 사람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기보다 가난한 이들을

 포함한 이 땅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야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이들이 이 세상 안에서

 갚아주지는 못하지만,

하늘나라에서 이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사랑의 실천은

언제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나 자신이 여유가 있을 때?

 모든 것을 다 하고서 이제

더는 할 것이 없을 때?

지금, 이 순간 생기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우리는

사랑 실천을 늘 뒤로 미룹니다.

늘 ‘나중에’를 외치고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하느님, 내가

당신으로부터 떠날 때,

나는 살아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꼭 붙어 있으면,

나는 죽어도 산 것입니다.

(할레비)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해야 합니다)

만 옳지 않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한 남자가 이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유유히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 옆을 또 다른 남자가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 지나갑니다.

 이 둘 중에서 누가 정상적일까요?

당연히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는 이 남자를 향해서

 손가락질합니다. 왜 그럴까요?
1750년 무렵의 영국 상황이라면

이럴 수 있습니다. 당시에 남자가

우산을 쓰면 비겁해 보인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조나스 하웨이라는 남자가

우산을 쓰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고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모습이 정말로 영원히

맞는 생각일까요? 훗날 비정상이라면서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영원의 시간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