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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6.2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23 조회수2,172 추천수4 반대(0) 신고

2020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열왕 19,9ㄴ-11.14-21.31-35ㄱ.36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9 히즈키야에게 사신들을

보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10 “너희는 유다 임금

히즈키야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네가 믿는 너의 하느님이,

′예루살렘은 아시리아 임금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속이는 일이 없게 하여라.
11 자, 아시리아 임금들이

다른 모든 나라를 전멸시키면서

어떻게 하였는지 너는 듣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너만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으냐?’”
14 히즈키야는 사신들의 손에서

편지를 받아 읽었다. 그런 다음

 히즈키야는 주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펼쳐 놓았다.

15 그리고 히즈키야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세상의 모든 왕국 위에

당신 홀로 하느님이십니다.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다.

16 주님,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십시오.

주님, 눈을 뜨고 보아 주십시오.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산헤립이 보낸 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7 주님, 사실 아시리아 임금들은

 민족들과 그 영토를 황폐하게 하고,

18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것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으로서 나무와 돌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있었습니다.
19 그러나 이제 주 저희 하느님,

 부디 저희를 저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모든 왕국이,

주님, 당신 홀로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20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 때문에 네가

나에게 바친 기도를 내가 들었다.’
21 주님께서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은 이러합니다. ‘처녀 딸

시온이 너를 경멸한다,

너를 멸시한다. 딸 예루살렘이

네 뒤에서 머리를 흔든다.

31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라.’
32 그러므로 주님께서 아시리아

 임금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하고,

이곳으로 활을 쏘지도 못하리라.

방패를 앞세워 접근하지도 못하고,

공격 축대를 쌓지도 못하리라.

33 자기가 왔던 그 길로 되돌아가고

이 도성에는 들어오지 못하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34 나는 이 도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니 이는 나 자신 때문이며

나의 종 다윗 때문이다.’”
35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36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

복음 마태 7,6.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6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12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자신이 사는 자리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당연히 누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남들과 비교를 통해 자신의 어렵고 힘듦을

 하소연하기에 급급합니다.

더군다나 세상의 삶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에 대한

만족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멋지고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지금을 바라볼 때입니다.
언젠가 외국에 나갔다가 비행기를

 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제 자리가 창가라서

 창밖을 볼 수가 있었지요. 구름 위를

비행할 때에는 너무나 멋졌습니다.

 매일 볼 수 있는 구름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었지요. 그리고

착륙할 때에 보이는 도시의 모습

역시 너무나 멋져 보였습니다.
이 새로운 시점은 풍경에 질서와

논리를 부여했습니다. 잘 짜인 도로도

하나의 선으로 또 하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새로운 시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자리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새로운 시점으로 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의 시점과 매우 다릅니다.

 나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를 생각하고 이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머무를 수 있는

 참 행복의 길로 안내해줍니다.
이 새로운 시각을 위해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을 이렇게

요약하셨습니다. 이는 다르게 표현하면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 바란다면”이라는 전제가

들어있습니다. 남에게 먼저 해 줄 때,

우리 역시 원하는 것을 하느님으로부터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함을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는

표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이 길은 물론 좁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만큼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직 몸은 이 세상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처럼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멸망으로 이끄는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아주 비좁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통한 실천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철저히 노력해야 합니다.

좁은 문이라고 해서, 내게 가장

좋은 것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이 길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사랑이라는 새로운 시각에

항상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늙어 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지혜의 명작이며

최고의 인생 기술이다.

(앙리 아미엘)

정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온갖 소음, 온갖 정보,

온갖 데이터.
요즘 세상을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합니다.

정보를 갖고 있지 않으면

남들 눈에 멍청하게 비칠까 봐

두려워하고, 무엇인가를 놓칠까 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온갖 거짓 뉴스가

판을 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진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진리를 쫓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거짓 뉴스,

가짜 뉴스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내 삶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도 여기에서

벗어나는데 자유롭지 못합니다.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많은 것을 알기보다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참 지혜를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 침묵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홀로

외딴곳에 가셔서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정보 시대일수록 모든 정보를 취하는

노력보다 진짜 정보를 알아챌 수 있는

지혜로운 식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침묵 중에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황금율)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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