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을 아는 지식.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03 조회수1,554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하느님을 아는 지식

제임스 페커는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책에서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하느님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인생에서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는가?

하느님을 아는 것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을 아는 것

삶에서 기쁨과 만족을 주는

 최고의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을 아는 지식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큰 기쁨은?

하느님을 아는 것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임을

위 책은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들보다

하느님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아가게 됩니다.

늘 하느님은 나에게

그분을 깊이 알게 만드시는

멀리 계신 하느님이 아니라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이런 일을

하셨다더라가 아니라

하느님은 내게 이런 일을

하신다고 고백하는 사람

그에게는 분명한 하느님에 대한

감동과 은혜가

실제적이고 친밀하게

자리잡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알고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두렵고 떨리지만 바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자는

그분의 현존을 경험하고

그의 가슴이 주님의 사랑으로

뜨거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에

주님의 성품을 알고

죽음보다 강한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도 알기에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인생의 기로에서도

생명 존엄을 버리고 죽음으로

도피하는 인생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세상을 향해

뛰어들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주

님을 알아가고

그 주님 안에서 누리는

놀라운 사랑을 알아가기에

늘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찬

이 지상순례의 삶에서

주님의 충실한 자녀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의 푸른나무 참고 )

작은 요한아

(마리아 발또르따 애칭),

많은 사람이 네가 보는 것을

보고 싶어하겠지만,

때가 되기전에 영원하신

주님을 알고, 그분의

이 세상 생애를 아는

은혜를 받는 것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중에서]

[예수를 성전에서 바침]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아주 수수한 집에서 한 쌍의

남녀가 길을 떠나는 것을 본다.

바깥에 있는 작은 층계로

매우 나이 어린 어머니가

흰 배내옷을 입힌

아기를 안고 내려온다.

우리 어머니이다.

 얼굴이 희고 금발이고 날렵하며,

모든 몸짓이 아주 얌전한 그분이다.

마리아는 흰옷을 입었고,

그 위에 엷은 하늘색

겉옷으로 몸을 감쌌다.

머리에 흰 베일을 쓰고,

아기를 매우 조심해서 안고 있다.

층계 밑에서는 요셉이 회색

나귀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요셉은 엷은 밤색 옷과

겉옷을 입었다.

그는 마리아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마리아가 나귀 가까이 오자

요셉은 고삐를 왼손으로 옮겨 잡고,

마리아를 안장에 더 잘 자리잡게

하느라고 조용히 자고 있는

 아기를 잠시 받아 안는다.

그런 다음 예수를 마리아에게

돌려주고 길을 떠난다.

요셉은 여전히 마리아 곁에서

나귀의 고삐를 잡고 걸으며 짐승이

비틀거리지 않고 똑바로

걸어가도록 살핀다.

마리아는 예수를 품에 안고,

추위가 아기에게 해를 끼칠까봐

두려워서, 그 위로 겉옷

한 자락을 덮어준다.

두 부부는 별로 말이 없다,

그러나 자주 서로 미소를 보낸다.

두 부부는 어떤 성문으로 해서

들어가서 도시의 틈이 벌어진

포석이 깔린 길을 가기 시작한다.

걸음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그것은 왕래가 많기 때문에 나귀가

자꾸만 걸음을 멈추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돌과

벌어진 틈에서 나귀가 줄곧 흔들리는

바람에 마리아와 아기가 편안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성전 구내로 들어간다.

요셉은 큰 비둘기 두 마리를 산다.

요셉과 마리아는 모든 문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처럼 여덟 단이 있는

층계로 올라가는 옆문 쪽으로 간다.

문 안에는 커다란 홀이 있다.

사제 한 사람이 달려온다.

 마리아가 가엾은

두 마리 비둘기를 바친다.

사제가 마리아에게 물을 뿌린다.

그런 다음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사제를 따라 엄밀한 의미의

성전으로 들어간다.

마리아는 어떤 장소에까지

들어가서는 발을 멈춘다.

마리아는 아기를 바친다.

아기는 그 순진한

작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난 지 며칠 밖에

 안되는 어린아이들과 같은

놀란 시선으로 사제를 본다.

사제는 아기를 두 팔로 받아서,

계단 위에 있는 일종의 제단을 향해

서서 성전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팔을 펴서 아기를 쳐든다.

 의식이 끝났다.

아기는 어머니에게 다시

돌아오고 사제는 물러간다.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구경꾼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에서

지팡이를 짚고 힘들게 걷는

등이 굽은 작은 노인이 나타난다.

대단히 나이가 많은 것 같다.

80이 넘은 것 같다.

그 노인은 마리아에게 가까이

가서 아기를 잠시 자기에게

달라고 청한다. 마리아는

미소지으며 그의 청을 들어준다.

노인은 시므온이다.

시므온은 아기를 안고 입맞춘다.

예수는 노인에게 미소짓는다.

작은 노인이 동시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눈물이 주름 사이로

스며들며, 예수는 노인을

신기한 듯이 살펴보는 것 같다.

아기는 예수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린 아기이다.

그래서 그의 앞에서 움직이는 것은

그의 주의를 끌고 물건을 붙잡아서

무엇인지 더 잘 보고자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일으킨다.

마리아와 요셉은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거기 있으면서 아기가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미소를 짓는다.

거룩한 노인의 말을 듣고

요셉의 놀란 시선과

마리아의 충격,

그리고 거기 있는 작은 집단의

사람들의 반응을 본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의 말에

놀라고 충격을 받으며,

어떤 사람들은 픽픽 웃는다.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그의 고통을 예고하자,

마리아의 미소는 더 심한

창백함으로 사라진다.

비록 마리아는 알고 있지만,

이 말은 그의 마음을 꿰뚫는다.

마리아는 격려를 얻으려고

요셉에게 더 가까이 가고

아기를 정열적으로 꼭 껴안는다.

그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안나의 말을 마시다시피한다.

안나는 여자인 만큼

마리아의 고통을 동정하고,

영원하신 분이 초자연적인

 힘을 주셔서 그의 고통의 시간을

완화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아기 엄마, 당신 백성에게

구세주를 주신 분이 당신의

울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틀림없이 그분의 천사를

당신에게 보내실 것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자들을

버리지 않았는데,

당신은 유딧과 야엘보다

 훨씬 나은 분입니다.

우리 하느님은 바다와 같은

고통에 저항하도록 지극히

순수한 착한 마음을

당신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자,

즉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가, 네가 전도할 때

나를 기억해다오.”

[앞의 사건에서 나타나는 교훈]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두 가지 교훈이

네가 묘사한 것에서 나타난다.

첫째 교훈은 이런 것이다.

진리는 의식에 몰두하는,

그것도 건성으로 의식에만

몰두하는 사제에게 드러나지

않고 평신도에게 드러난다.

하느님과 항상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하느님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전념하고 육체를 가진 존재에

있어서는 가장 고상한 것에

바쳐진 사제는 그날 아침

성전에 바치러 온

어린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를

즉시 알아차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위하여는

그가 살아 있는 영을

가져야 하였을 것이다.

죽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잠들어 있는 영혼을

감싸고 있는 옷만을 입고

 있지 않고 말이다.

하느님의 성령은,

만일 원하기만 하면,

천둥치는 소리를 내서

아무리 폐쇄적인 영이라도

벼락과 지진과 같이

흔들어 놓으실 수 있다.

 하느님의 성령은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느님께서

그 모든 위()에 있어서,

또 그 행동 방식에 있어서

질서이신 것과 같이 하느님의

성령이 질서의 영이시므로,

그분의 널리 베푸심을 받기에

충분한 공로를 만나는 곳에

퍼지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 왜냐하면,

이렇게 된다면 이 은총을

받을 사람이 정말 별로

없을 것이고, 너도 그분의

빛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그 널리 베푸심을 끌어당길 만큼

충분한 착한 뜻이 있는 곳에

베푸시기도하고 말씀도 하신다.

이 착한 뜻을 어떻게 발휘하느냐?

가능한 한 온전히 하느님에게서

오는 생활로, 믿음과 순종과

깨끗함과 사랑과 너그러움과

기도로 발휘한다.

외적인 행동으로가 아니라

기도로 발휘된다.

행동과 기도 사이에는

밤과 낮 사이보다도

 더 큰 차이가 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영의 일치이니,

사람들은 여기서 새로운 힘을 얻고

점점 더 하느님의 것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오게 된다.

외적인 행동은 여러 가지 목적,

그러나 항상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어떤 습관이다.

외부적인 행동은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두든가 게다가

거짓말과 게으름의

죄를 보태 주기까지 한다.

시므온은 이 착한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일생 동안 그는 많은

고민과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착한 뜻을

잃지 않았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의

여러 가지 역경도 그가 주께

 대하여 주의 약속에 대하여

가진 믿음을 손상시키지도

흔들지도 못하였고 하느님께

점점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착한 뜻을

중단시키지도 못하였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충실한 종이 -

나의 고난 후 승천 때에

열린 하늘에서 빛나는

하느님의 태양을 다시 보게

될 때까지 - 당신 성령의 빛을

그에게 보내시고 그를 성전

쪽으로 인도하시어 세상에 온

빛 자체를 보게 하셨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고

복음서는 말한다.

아아! 사람들이 성령께서

얼마나 완전한 벗이신지

알았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어떤 인도자이시고,

 어떤 스승이신지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그 사랑을, 그 빛 중의 빛,

그 불의 불, 그 지능,

그 지혜를 사랑하고 그분에게

구원을 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알 필요가 있는 것을 그들이

얼마나 더 잘 배우게 되겠느냐!

마리아야, 보아라. 내 자녀들아,

보아라. 시므온은 빛을 보기전에,

하느님의 약속이 채워진 것을

 알기 전에 오랜 일생 동안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희망과 기도에 꾸준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다하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꾸준하였다.

그래서 사제와 오만하고

눈먼 최고법원의 위원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그에게 따뜻한 체온과

미소를 주는 그 어린아기의

몸에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구세주를 보는

은혜를 받았다.

그는 아기인 나의 입술을

 통하여 그의 정직하고

경건한 일생에 대한 첫번째

보상인 하느님의 미소를 받았다.

둘째 교훈은 안나의 말이다.

역시 예언자인

안나도 갓난아기인

나를 메시아로 알아본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예언의

은혜를 가졌으므로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나가 믿음과

사랑에 이끌려 내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너도 듣고,

너희들 내 자녀들도 들어라.

그것을 가지고 이 암흑의 때에,

이 빛의 축일에 떨고 있는

 너희들의 정신을 위한

빛으로 삼아라.

구세주를 주신 분에게는 당신의,

<당신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하여 천사를 보낼 능력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정신에서 사탄이

이룩한 사업을 없애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주셨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괴롭히고

있는 사탄들을 지금

이기실 수 없겠느냐?

그분이 저 사탄들을

쫓아버리고 당신의

그리스도의 평화를

다시 주심으로 너희 눈물을

닦아 주실 수 없겠느냐?

왜 그것을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청하지 않느냐?

너희들의 수많은 죄로 인하여

분개하신 하느님의 준엄이

그 앞에서는 미소와 더불어

사그러지는 저항할 수 없는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용서가 그 결과인

 도움과 너희들이 스스로

원한 피의 홍수에 잠긴

이 땅 위에 꽂히는 무지개인

축복을 가지고 오는 그런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곰곰이 생각들 하여라.

아버지께서는 홍수로 사람들을

벌하신 다음 당신 자신과 족장

노아에겐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게 마련,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다시는 모든 짐승을

없애버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당신의

약속을 지키셨다.

그러나 너희들은

 이번에 우리가 살아나면,

당신이 우리를 구해 주시면,

다시는 절대로

전쟁을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절대로하는 말을

너희들 자신과 하느님께

얼마나 많이 하였으며,

그리고 나서 여전히 오히려

더 무서운

전쟁을 하지 않았느냐?

 거짓말쟁이들아,

 그리고 주를 존경하지 않고

 너희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들아,

얼마나 많이 그랬느냐 말이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신자 대중이 저항할 수 없는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부르면

또 한번 너희를 도와주실 것이다.

하느님의 준엄을 아주 강렬하게

존속시키는 사람들의 무리와

대등하기에는 너무나 수효가

적은 너희들 모두,

그래도 너희들은 머리 위에

매달려서 시시각각으로

더 커지는 현시대의 무서운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계속 충성스러워라.

 너희들의 극도의 불안을

하느님 앞에 갖다놓아라.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당신의 천사를 너희들에게

보내실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십자가와 일치하여 있어라.

십자가는 항상

마귀의 계략을 이겼다.

다른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는 마음들을 사람들의

사나움과 생활의

우울함으로 절망,

즉 하느님과의 분리로

기울어지게 하려고 애쓰는

 마귀의 계략을 말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중에서

부분 발췌 (마리아 발또르따)

교황청 신앙교리성성 출판허가]

유의점 : 이 책은 가톨릭 관련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특히 이 책에 대한

< 추천의 말씀 >과

< 비오 12세 교황님의 말씀 >과

< 신앙교리성성의 말씀 >은

클릭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성인의 통공 안에 있는

가족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요셉께 사랑을! )

 http://예수.kr ,http://마리아.한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