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1.1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8 조회수1,638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산교구 순례지, 살티공소)

2021118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랜만에 후배 신부를

어느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후배 신부의 모습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신부! 살이 많이 쪘네?”

워낙 왜소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신부인데, 살진 모습이

전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서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말에 기분이

안 좋았나 봅니다.

퉁명스럽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살 뺄 거예요.”

실수한 것 같아서, 얼른

아니야! 건강해 보이고

보기 좋아서 이렇게 말한 거야.”

라고 말했지만, 그 신부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살쪘다는 것을

하나의 욕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게으르고 자기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세상의 생각이 이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어떻게든 상대의 힘을

빼는 말이 아닌, 상대에게

힘이 되어 주는 말을 하는데

더 큰 노력을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말도 이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떨까요? 주님의 말씀 역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단식 논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와 달리 단식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모습만 보여 주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주님의 이런 모습만 기억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에만 중점을 둬야 할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참된 단식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먹고 마시는 것도

중요함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먹는 것을

삼가는 것이 단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상의 뜻을 담고 있는

단식을 우리가 받아들였으면 하셨습니다.

, 음식을 삼가는 것처럼 악습을

멀리하는 것이 참된 단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악습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기존의 단식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먹고 마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참된 단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님의 말씀은

새 천 조각, 새 포도주와 같습니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옛 옷과

옛 부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새 옷, 새 부대가 되어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단식의 의미였습니다.

먹는 것을 삼가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악습을 멀리하고 주님의

새로운 말씀을 받아들여서

실천하는 것이 진짜 단식이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사고는 인간을 현명하게 만든다.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 한 것으로 만든다.

(J.패트릭).

진리를 바라보십시오

얼마 전에 사회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세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 친구들이

대학 다닐 때, 열심히 데모하면서

소위 운동권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영원히 진보적인

태도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이런 모습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거나

소유하는 것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보수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개방적으로

살았으면서도, 자신의 자녀를 향해서

보수적인 모습을 멈추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의 편에 서고 있느냐입니다.

진리가 없는 방향성은 나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름을

틀렸다고 나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부산교구 순례지, 순교자 김영제와 김아가타의 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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