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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 42,1-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6 조회수1,517 추천수0 반대(0) 신고

 

 

 

성주간 월요일 제1독서(이사 42,1-7) 

첫번째 주님의 종의 노래(이사42,1-9), 1절이하 4절까지는 주님께서 소개하시는 주님의 종의 선한 성품과 하시는 일들이 제시된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내가 선택한 이내 마음에 드는 이다." (1)

 

'여기에'에 해당하는 ''(hen)은 '보라'라는 뜻으로동사가 아니라 감탄사이다당신이 소개하는 종에게 관심과 주의를 가질 것을 촉구하는 표현이다.

'내가 붙들어 주는 이'에 해당하는 '에트마크'(ethmak)는 '붙잡다', '지지하다', '떠받히다','지키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타마크'(tamak)의 미완료형이다.

 

미완료형은 미래에 그렇게 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하여 항상 그렇게 하심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 동사는 하느님께서 그 권능의 손길로 이 종을 굳게 붙들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보호하시며 높이 세워주실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내가 선택한 이'에 해당하는 '뻬히리'(behiri)의 원형 '뻬히르'(behir)는 동사 '빠하르'(bahar)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임의적으로가 아니라 어떠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자를 신중하게 선택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주님의 종이 구원사업을 능히 수행할 수 있기에 선택하였다는 뉘앙스와 이를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주님의 종의 능력을 보증하신다는 함축적인 의미가 함께 있다.

 

'내 마음에 드는'에 해당하는 '라체타'(ratsetha)의 원형 '라차'(ratsa)는 '기뻐하다', '받아들이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제사규정을 다루고 있는 레위기에서 하느님께서 제물과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을 나타내는 단어이다(레위1,4 ; 7,18 ; 19,7 ; 22,23).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드려진 희생 제사라 할지라도 제물에 흠이 있거나 제사 드리는 자가 율법에 합당한 자가 아니면 그 제사를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레위10,1-11 ; 19,7 ; 22,23).

그런 점에서 본문의 마음에 든다(기뻐하신다)는 표현은 그가 인류 대속을 위해 드려질 제물로서 조금도 흠이 없다는 사실과 나아가서 제사를 드릴 대사제로 완벽한 분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I have put My Spirit upon him)에서 완료 시제의 동사가 사용되었다완료시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째로 역사적 완료로 본다면하느님께서 그의 종 메시아에게 인간으로 육화(강생)하기 전에 천상에서 말씀으로 존재하였을 때(요한1,1; 필리2,6) 이미 영을 충만하게 부어 주셨음을 나타낸다.

 

둘째로 예언적 완료로 본다면이 본문은 메시아께서 강생하신 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한 사건을 내다보는 예언이 된다.따라서 본문의 완료 시제는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주님의 종이 자신의 뜻대로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임의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 즉 하느님의 뜻과 능력으로 구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임을 보여 준다.

 

'공정'에 해당하는 '미쉬파트'(mishipath)는 '재판하다'라는 의미의 '샤파트'(shapath)에서 유래하며, '심판', '재판'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정의'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것은 하느님의 본질적 속성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말해 하느님의 통치가 온전히 구현되고 인간이 하느님께 대해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인간들 상호간에 평화롭고 올바른 관계가 서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2)

 

거의 같은 의미를 전달하는 세 개의 부정 단문으로 구성되어 있다이것은 주님의 종이 이방의 열왕들처럼 폭력적이거나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크게 드러내고자 하지 않으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또한 거짓 예언자가 자신을 과시하며 떠들어대는 것과 전혀 다르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람들의 가슴에 조용히 그러나 호소력있게 진리를 전달하며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전할 것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모습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마태26,62.63; 27,14; 마르15,5 ; 루카23,9; 요한8,6; 14,30).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3)

 

습지나 물가에서 자라나는 갈대는 유프라테스 강 하류와 나일강 주위뿐만 아니라 성경의 주된 무대인 팔레스티나의 요르단 강 유역에서도 많이 자라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식물이었으므로 고대 근동 문학과 성경에서도 상징적비유적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갈대는 연약하여 바람에 잘 흔들리므로 연약한 인간의 면모와 관련하여 종종 사용된다(1열왕14,15; 마태11,7). 여기에서 '부러진 갈대'(상한 갈대)에 해당하는 '카네 라추츠'(qaneh ratsuts)는 문자 그대로 반쯤 부러진 상태의 갈대를 나타낸다.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큰 타격을 입은 상태와 특별히 죄악으로 인해 영혼이 더러워진 인간의 상태를 말한다.

 

여기에서 '꺾다'는 의미에 해당하는 '이쉬뽀르'(yishibor)의 원형 '샤바르'(shabar)는 완전히 박살내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레위6,21; 1열왕19,11).

사실 상한 갈대는 아무런 이용 가치가 없기 때문에 박살내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다이러한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종이 육체적정신적영적 상태 모든 면에서 절망적인 상황비관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들을 세상의 왕들처럼 무자비하게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유하며 새 생명을 주실 것을 나타낸다.

 

한편일상생활의 필수품인 등불 역시 갈대와 마찬가지로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비유와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꺼져가는 심지'에 해당하는 '피쉬타 케하'(pishitah kehah)는 '희미한 심지'(꺼져가는 등불), '연기나는 심지'라는 의미이다.

 

즉 본문의 등불은 기름이 없어서 깜빡이면서 이제 막 꺼져버리려는 순간이나 혹은 꺼져서 연기가 나는 상태의 등불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경우 그 등불은 연기가 날 뿐등불로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이러한 상태의 등불은 꺼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주님의 종은 이런 등불을 결코 끄지 않으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필요없다고 꺼서 내버릴지라도 주님의 종은 이러한 상태의 등불도 소중히 여기신다이는 주님의 종이 그 어떤 사람도 거부하지 않고 자비와 사랑으로 용납하여 주심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님의 종의 봉사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그대로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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