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단식할수없다 (마르2,18-22)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8 조회수1,219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1년 1월 18일 월요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단식할수없다 (마르2,18-22)

연중 제2주간 월요일(1/18)

 

1독서<예수님께서는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브5,1-10)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그분께 너는 내 아들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10(109),1.2.3.4(◎ 4ㄴㄷ)

◎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 주님께서 내 주께 이르셨나이다.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너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

○ 주님이 당신 권능의 왕홀을 시온에서 뻗치시리이다. “너의 원수들을 다스려라.”

○ 네 권능의 날에 주권이 너와 함께하리라거룩한 빛새벽 품에서 나는 너를 낳았노라

○ 주님은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않으시리이다. “멜키체덱과 같이 너는 영원한 사제로다.”

 

복음<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마르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히브5,1~10)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7)

 

'이 세상에 계실 때'로 번역된 원문에서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없고 '육체'라는 단어가 나온다. '육체로 계실 때' 혹은 '육체를 지니고 계실 때'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육체'로 번역된 '사르코스'(sarkos)의 원형 '사륵스'(sarx)의 기본 의미는 '살'(flesh) 이지만, '몸', '혈육을 가진 인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 '인간성' 등 다양한 의미들을 나타내어 쓰인다.

 

본절에서는 이 '사륵스'(sarx)가 '인간 그 자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강생(육화)하신 예수님의 지상 존재, 즉 인격적인 본성 전체를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혈육을 가진 인간이셨던 동안 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느끼실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시련과 유혹과 고통을 모두 당하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죄가 없었으므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사륵스'(sarx)의 생각에 지배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실 때에나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을 때에는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마음에 드는) 아들이었다 (마태3,17).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본문은 생명을 독점적으로 주관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보여준다. 여기서 '죽음에서 구하신다'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을 갈바리아 언덕에서 죽기 이전에 건져내신다는 의미가 된다.

 '구하실'에 해당하는 '소제인'(sozein)의 원형 '소조'(sozo)는 어떤 위협을 당하지 않게 미리 건져 내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에크 타나투'(ek thanatu; from death)와 함께 쓰이면, 죽음의 위험에서 건져 낸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에크 타나투'(ek thanatu)와 함께 '소조'(sozo; to save)가 쓰였다는 사실은, 본절에 기록된 기도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지도록 간절히 바치신 예수님의 기도임을 말해 주며, 예수님께서는 그때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죽음의 위험에서 능히 건져 내실 수 있는 하느님께 드렸던 것이다.

 

 둘째로 위와 같은 의미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에서 구하신다'라는 표현이 죽음 이후의 부활 사건까지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그 기도가 '들어 주셨습니다'라는 본절의 후반절의 표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겟세마니의 기도를 염두에 두고서 그 기도의 장면을 묘사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고난과 고통을 경험하신 분이다.

본문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다시 번역하면, '심한 통곡(요란하도록 큰 부르짖음)과 눈물(울음)로 ~ 드렸고'prayers and petitions with loud (strong) cries and tears>가 된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그 당시 기도 모습을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44) 라고 기록하였다.

이보다도 더 이상 간절하고 애절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간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어디에 나오는가!


예수님의 얼굴에서 떨어진 땀이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복음서의 기록은 얼굴에 있는 모세 혈관이 터져서 피부 밖으로 나온 피가 땀방울에 섞여땅에 떨어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 정도로 예수님은 간절하게 기도하셨던 것이다.

 

한편, '큰 소리로 부르짖고'로 번역된 '크라우게스'(krauges)의 원형 '크라우게'(krauge)는 '고함', '큰 부르짖음'이란 뜻이다.

이것은 자신이 억지로 외치려 해서 나는 소리라기보다 극도의 긴장이나 고통의 가운데서 마음을 쓰지 않음에도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소리(통곡)이다.


더군다나 '심한'이라고 번역된 '이스퀴라스'(ischyras; strong; loud)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은 그분이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분의 심정을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은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26,38)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 전해주고 있다.


이것을 볼 때 상처가 깊은 사람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 소리가 터져나오고,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찬 사람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신음 소리 새어 나오듯이 그 순간 예수님은 그와같은 상태에 빠지셨음이 분명하다.

참을 수 없는 긴장과 고통 가운데서 그분은 흘러 나오는 신음 소리만 낸 것이 아니라 울기까지 하셨다.


그분은 아버지께 울면서 기도와 탄원을 드린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과 혼란, 절망감에 싸여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적 혼란을 겪으셨던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진지하고 애절하고 뜨겁게 기도하셨으나 저자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 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기도와 탄원'을 올렸다고 만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탄원'에 해당하는 '히케테리아스'(hiketerias)는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과 원통함을 탄원하는 자'를 의미하는 '히케테스'(hiketes)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탄원', '간청'이라는 뜻이다.

 

복음서 저자들은 그 기도와 탄원의 내용을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로 전해주고 있다 (마태26,42; 마르14,36; 루카22,42).

예수님은 그 기도를 무려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다(마태26,44). 히브리 사상에서 '세 번'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횟수이다.


히브리인들의 공식 기도가 하루 세 차례였다는 사실도 그들이 하느님께 온전한 기도를 드린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같은 내용으로 세 번이나 동일하게 기도하셨다는 것은 더 이상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간절하고도 완벽하게 기도했음을 나타낸다.

 

'그 경외심 때문에'


예수님의 기도와 탄원의 응답을 받은 결정적인 동기와 배경에 대한 언급이다. 하느님께서 중시하시는 것 기도하는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이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예수님의 경건에서 우러나오는 복종 때문에 그의 기도가 아버지께로부터 응답을 받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다.

'경외심'으로 번역된 '율라베이아스'(eulabeias)는 '두려움', '경건'을 뜻한다. 기원전 3~4세기 이후부터 사용된 이 단어가 처음에는 '신중함', '세심한 주의', '사리분별'등을 의미했으나, 후기 희랍어에서는 '공경'을 뜻하게 되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명사가 나타나는 곳은 본절과 히브리서 12장 28절 뿐이다.

 

라틴어 성경은 이것을 '존경', '경외'(reverentia), 그외 다른 성경은 '경건'(piety), '공손한 복종'(reverent submission)등으로 번역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 아버지 앞에 엎드릴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이러한 태도이다. 그분의 이러한 복종은 비굴함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하고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들어 주셨습니다'


'들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에이사쿠스테이스'(eisakustheis)의 원형 '에이사쿠오'(eisakuo)는 방향 또는 진입의 의미를 나타내는 전치사 '에이스' (eis)와 '듣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쿠오'(akuo)의 합성어로서 '요구에 따르다',  '요구를 들어주다'라는 의미이다.

 

본문에서는 과거 분사 수동태로 쓰였으며, 영어로는 'he was heard'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무슨 기도가 어떻게 응답받았는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는 '대속의 십자가 죽음'으로서 응답받았고, '죽음에서 구해달라'는 기도는 십자가 죽음 후 '부활'을 통해서 응답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죽으셨고, 또한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을 받으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부활의 사실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와 탄원이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8.1.15.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사무상15,16-23 마르2,18-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신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마르 2,18-22)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 제자들이 아직 혼인 잔치의 손님으로 있습니다. 그 손님은 아직 단식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 할 것이다.

= 신랑이신 예수님을 빼앗겨야 손님이 아닌 그 신랑과 혼인하는 신부로 한 몸이 되는, 곧 예수님께서 신부의 값을 십자가에서 치르셔야 손님이라는 그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 단식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단식은, 단식의 자격이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세례로, 초대받은 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단식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알리기 위한 물 세례에 만족하는 신앙을 살고 있습니다.(요한1,31) 그것은 보이는 예수님의 육()의 치유, 기적 등 땅의 복을 위한 신앙을 단식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53, 5) (예수)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 병자들이 받은 치유(기적) 또한 예수님의 징벌 곧 대속의 댓가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신앙의 목적으로 보고, 먹는 그 단식을 하면 그리스도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 새 천조각- 새 계약(대속),  헌 옷- 율법

 

(히브리9,15-16)  1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새 계약의 중개자이십니다. 첫째 계약(율법) 아래에서 저지른 범죄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하시려고 그분께서 *돌아가시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약속된 영원한 상속 재산을 받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6 유언이 있는 곳에서는 유언자의 죽음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 모든 약속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와 윤리, 그 율법의 행위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 헌 옷을 입는 것이고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예수님을 진리로 깨닫는 것,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예수님과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예수님이 섞어 버리면 둘 다 못쓰게 되는 , 곧 구약의 제사와 율법, 계명을 신약이 대속으로 완성하는 그 진리로 구원을 받는 것인데~ 그 구원의 일,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헛된 것이 되어 세상에 구원이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죄의 용서, 그 구원의 예수님이 아닌 육의 만족을 위한 기적의 예수님만을 따르고 좋아하게 되니, 사랑하게 되니 구원을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이가 그렇게 살고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로마3,10~ 필리3,18)

십자가 이전, 육의 치유의 예수님을 기억하고 섬기는 것, 헌 옷입니다. 그 예수님을 십자가의 대속 구원자로 깨달아 의지하는 것,새 계약의 새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 새 포도주- 피의 새 계약, 헌 가죽- ()


(루가22, 16-20)  1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 예수님께서 파스카의 제물로~ ()의 존재들의 구원의 값을 당신 목숨으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죽어야 할 강도가 그날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루가23,42) 그래서 그에게는 더 이상 파스카의 제물, 예물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히브10,18)

이제는 하느님께 감사의 찬양을 ~ 그분께서 하신 일이 참 사랑, 참 의로움의 진리시라고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창조(구원)하신  하느님의 목적이시고요~(이사43,7)

그 하느님의 목적을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에페1,6) 그렇게 십자가의 대속 그 죽음 그 사랑으로 내가 용서 받았다. 라고 믿으면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고(1요한2,5) 그 하늘의 존재가 된 이에게는 더 이상 파스카제물, 그 예물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다.


17 그리고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1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 너희도 '파스카의 피'로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음을 믿는 이는 구원의 표징인 포도 즙, 그 피로 마시지 않게 됩니다.


19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행하여라()- 밖으로 흘리지 않고 마음 안에 간직하여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흘려듣지 말고 마음에 담아 예수님의 몸을 파스카 제물이 아닌 다른 차원의 몸과 피로 먹고 마시라는 말씀입니다.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 구원의 완성, 그 십자가를 믿는 이는 더 이상 제사 행위가 아닌 그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용서, 자유, 평화 그 구원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그가 곧 새 계약을 지키는, 행하는 이입니다.  예수님과 몸과 피는 대속의 죽음 그 사랑 , 피의 새 계약으로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그 피의 새 계약으로 받는- 구원은 새로 태어난, 그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요한3, 3-5)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5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 보이는 모든 것은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로마8,24) 육을 위한 종교행위 헌 옷, 헌 부대입니다. 그 육의 치유를 위한 예수님을 끊는, 그 단식을 하고~ 구원의 그 십자가 피로 받는, 보이지 않는 용서를 깨닫게 해 주실, 그리고 무죄를 증언해 주실~(로마8,2) 성령을 받게 된다면 새 부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땅의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사58,6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 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 치유()의 예수님을 자랑하면 다른 이에게 희망이 아닌 절망을 줍니다. 또 도덕과 윤리의 예수님을 말하면 법에 묶이는, 무거운 짐의 신앙을 주게 됩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 그 진리의 예수님을 올바로 말하는 것, 전하는 것, 그래서 이웃이 용서, 자유 그 하늘의 새 생명을 받게 되는 것,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이라 하십니다.

♡ 아멘♡ -*^^*-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복음(마르2,18~22)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22)

 

'새 천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찾아온 새로운 복음의 질서 상징하는 반면에, '헌 옷'은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을 인간적으로 해석하여 문자적인 준수에 얽매이는 구질서를 상징한다.

 

'새 천 조각'에 해당하는 '에피플레마 라쿠스 아그나푸'(epiblema rekous agnaphou; a piece of unshrunk cloth)는 세탁을 한 적이 없어 줄지 않은 옷감 말한다.

그러니까 마르코 복음 2장 21절의 의미는, 이러한 '새 천 조각'이므로 '헌 옷'을 기우게 되면 그 기운 옷을 세탁할 때 아직 줄어들지 않았던 '새 천 조각'이 물을 흡수하여 급격히 줄어들면서 '헌 옷'을 망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 뜻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유대교의 전통은 함께 조화될 수 없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망칠 수 밖에 없는 상충적 관계라는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구시대의 질서인 단식의 문제를 가지고, 하늘 나라의 신랑인 예수님을 맞이하여 기쁨의 복음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이다.

 

한편, 마르코 복음 2장 22절의 '새 포도주'의 '새' '네온'(neon; new)이지만, 후반절에 나오는 '새 부대'의 '새'는 '카이누스'(kainous; new)이다.

전자의 원형 '네오스'(neos)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뜻이고, 후자의 원형'카이노스'(kainos)는 본질적으로 새롭다는 뜻이다.

특히 '카이노스'(kainos)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더러운 영이 들린 자를 고치셨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새롭고 권위있는 가르침'이라고 했을 때의 '새롭고'에 해당하는 단어의 원형과 같다(마르1,27).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시작되면서 그 부피가 늘어난다. 이 때 새 가죽 부대는 유연하고 신축성이 있어서 변화에 따라 늘어나지만, 헌 가죽 부대는 그 변화를 견딜 수 없고 곧 터지고 만다.

말하자면,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낡아서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인들의 전통이 수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헌 가죽 부대 같은 바리사이들의 슬픔의 단식은 합당하지 않으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를 맞이하는 기쁨의 혼인 잔치와 같은 축제가 합당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해 '혼인 잔치 집의 비유'(마르1,19~20), '새 천 조각의 비유'(마르1,21), '포도주와 부대 비유'(마르1,22)를 연이어 말씀하셨다.

과거의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기준으로, 단식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예수님을 비난하는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런 질문에 국한하지 않으시고 모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복음이 갖고 있는 역동성을 이런 비유들로 밝히신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