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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단식논쟁- 새것과 헌것
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1-01-17 조회수1,266 추천수0 반대(0) 신고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통하여, 가톨릭 신자들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러한 뜻에 따라 교회는 해마다 1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간구하는 공동 기도를 바치고 있다.

 

 

 

 

1독서(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1-32절은 대제관의 인간적 요소와 그에 따르는 직무를 계시한다. 대제관은 그가 돌보는 백성들과 똑같은 연약한 사람으서 백성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바쳐야 한다.

 

1절은 대제관에 대한 간단한 정의다. 대제관은 무엇보다도 먼저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된 사람이다. 그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왜 중요한가는 2절에서 설명한다. 그 다음 대제관은 하느님에 관한 일을 맡고 있다. 하느님께서 기까이 가서 예배를 드리고 그분이 계시하시는 법과 바른 길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나아가 대제관은 사람들을 위해 제사를 바친다. 이 세 요소 가운데 앞의 두가지는 모세를, 마지막 것은 아론을 반영한다.

 

구약성서는 악의 없이 모르고 지은 죄와 알고서 고의로 지은 죄를 구별한다. 전자는 의인들도 범할 수 있는 죄로 쉽게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죄나 죄인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지르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이해하다의 본 의미는 감정을 누르고 조절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동정하다와 비슷한 뜻의 단어다. 대제관은 자기도 연약한 사람으로서 곧잘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잘못에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고 가능하면 이해한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 대속죄의 날이 되면 대제관은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바치기 전에 자신과 그의 가족을 위하여 황소나 송아지를 제물로 하는 속죄의 제사를 바친다. 그는 죄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아니라,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사를 바칠 의무가 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 제관이 되기 위한 또 다른 주요한 자격요건은 하느님의 부르심이다. 누구든지 제관이 되려면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 처음 등장하는 아론은 유다 전승에서 레위 제관들의 원조이자 대변인으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 5-10절에서는 1-4절에서 말한 제관직의 자격과 역할을 예수께 비교하여 그분의 제관 자격과 역할을 밝힌다. 먼저 5-6절에서는 1-4절에서 말한 제관직의 자격과 역할을 예수께 비교하여 그분의 제관 자격과 역할을 밝힌다. 먼저 5-6절에서는 예수께서 아론과 같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합법적인 제관이요 영원한 제관이심을 시편 2.7110.4를 들어 증명한다. 시편 2.71.5에서 이미 인용한 바와 같이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는 구절이다. 제관직을 증명하는 자리에서 이런 성서구절을 다시 인용하는 이유는 그분이 아론계의 제관과는 다른 유일한 대제관이심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이 구별은 언뜻 보면 게쎄마니 장면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어휘는 오히려 탄원 시편에 가깝다. 이러한 배경들을 참고하면서 볼 때.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을 하시는 동안 사람으로서 온갖 고통과 번민을 겪으셨지만 그러한 어려움 중에도 하느님께 순종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분의 간구와 기도를 들어주셨음을 증언한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고난을 통해 복종을 배운다는 가르침은 칠십인역의 지혜문학 성서에 가끔 발견되는 사상이다. 피로의 저서에서는 고난을 겪다배우다가 자주 함께 쓰일 뿐 아니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그분의 절대적 순종의 결과이자 천상 영광의 바탕으로 믿고 고백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 “완전하게 되다2.10 주석에서 설명한대로 축성되다의 뜻도 포함한다. 여기서는 두 의미를 다 내포한다.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순종하여 자신을 바침으로써 주님이자 영원한 대제관이 되셨다.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임명되다는 왕의 대괸식이나 대제관 축성식과 같이 장엄하게 임명되고 선포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복음(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마르코 복음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 18ㄱ 절은 마르코가 덧붙인 것이다. 본디 이 단원은 그래서 사람들이 와서 그분께 ...”
(18ㄴ절)로 시작했다. 유다교인들은 일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다. 그러나 요한 세례자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모양이다. 바리사이들은 매주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으로통한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 율사의 제자는 있을지언정 바리사이의 제자란 없다. 단순히 바리사이 무리라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구약에서는 혼인잔치 상징으로써 종말론적 구원을 서술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라 하신다. 상징어의 뜻인즉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는 시기라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19ㄱ 절로써 충분하다.

그렇다면 19-20절은 초대교회에서 만들어 덧붙였다하겠는데 왜 그렇게 했을까? 예수시대에는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는데 스승이 돌아가신 다음 교회시대에도 신도들이 단식하게 된 연유를 밝히고자 19-20절을 만들어 붙였을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단식 동기인즉 신랑이 떠나 혼인잔치가 끝났기 때문에, 곧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흥이 깨졌기 때문에 단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1세기 교회에는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언제 단식했던가? 짐작에 불과하나 처음에는 예수께서 운명하신 금요일에 단식했을 것이다. 1세기 말엽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 21-22절은 본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해온 이중단절이다. 그 표현이 상징적이므로 이중상징이라 해도 좋다. 이 상징어는 실상생활에서 얻은 체험을 드러내기 때문에 생활의 지혜 혹은 인생 예지라 할 수 있다. 새것은 강하고 헌 것은 약해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상징어는 무엇을 뜻할까?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혁신적이고 위력적이므로 그에 맞갖은 회개역시 새롭고 힘차야 한다는 것이리라.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따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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