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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2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8 조회수1,484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 2사무 6,12ㄴ-15.17-19

그 무렵 12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3 주님의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

14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은 함성을 올리고

나팔을 불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7 그들은 다윗이 미리 쳐 둔

천막 안 제자리에 주님의 궤를

옮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주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쳤다.

18 다윗은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에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19 그는 온 백성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모든 군중에게 빵 과자 하나와

대추야자 과자 하나, 그리고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복음 마르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그들에게,

“누가내어머니고내형제들이냐?”

하고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이동식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밀폐된 공간에 한 곳은 딱 한 명만,

다른 곳은 두 명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시험이

시작되니 절대로 이동식 칸막이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잠시 뒤, 이동식 칸막이

건너편에서 한 여성이 심하게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동식 칸막이 안의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혼자 들어간 곳의

 사람은 단 7%만 도움을 주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둘이

들어간 곳의 사람은 분명히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자그마치 70% 이상이

도움을 주러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혼자서 하는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옆에 있을 때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용기를 갖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으로 인해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때로는

그 주변 사람이 짐처럼 큰 부담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내가 용기를 내어

사랑을 실천해서 주님의 뜻을 따르게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들거나 커다란

 짐을 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한 가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족을 이야기해주십니다.
어머니와 형제들을 왔다는 말을

듣고도 주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라고 말씀하시지요.

 어머니와 형제를 힘든 대상으로

또 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와 형제를 포함해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 모두가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혈육 관계로 맺어진 가족보다,

하느님의 뜻으로 맺어진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것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땅에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구원을 위해 오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힘들게 해서 그래서 미워하고

단죄하고 싶은 그 사람도 주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에서 제일 뻔뻔한 거짓말은

 “사람들이 그러던데”라는 말이다.

(더글러스 멀룩)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중세 때 유대인들은 유럽 각 도시에

고리대금업자로서 활약을 했습니다.

고리대금업자라고 하면 지나치게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행위로 알고 있지만,

 중세시대에는 이자를 아주 적게만 받아도

고래대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지금 모든 은행의 행위는 아주

파렴치한 고리대금인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를 매우 심각한

죄라고 말했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는

엄청난 죄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시의 기독교인들은 누구도

고리대금업에 종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은 기독교도가 아니었고,

당시 교회의 관점에서 볼 때 세례를

받지 않았기에 어차피 지옥에 갈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이들의

은행업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무식할 수 있느냐고 말하겠지만,

당시에는 이것이 당연했습니다.

왜냐하면, 배운 사람이 없었고,

자신의 입맛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종교인의 입김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런 어리석은 모습이

나타나곤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의 한계에 자신을

가두어서 얼마나 많은 잘못된 판단과

단죄를 반복하고 있습니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바로 주님의 마음이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늘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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