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5."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양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아오스딩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5 조회수1,614 추천수3 반대(0) 신고

 

마태 26, 14-27, 66(주님 성지수난주일)

 

 

 

오늘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성지주일>입니다.

동시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는 <수난주일>입니다.

 <1독서><야훼의 종의 셋째노래><수난주일>의 특성을 드러내는 반면,

<2독서><그리스도 찬가><성지주일>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임금으로 환영하는 상징적 행위로 성지가지를 들고 성당에 들어와, 동시에 예수님의 수난사를 듣습니다.

 

오늘 <전례>는 기쁨과 슬픔이 혼합되어 교차됩니다.

한편으로는 호산나를 환호하는 기쁨이 차오르고, 또 한편으로는 수난과 죽음으로 치닫는 비탄이 흐릅니다.

환영의 행렬은 곧바로 조롱의 십자가 행렬로 바뀌고, 손을 흔들던 환호의 성지가지는 등을 내리치는 채찍으로 바뀝니다.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던 이들은 예수님의 속옷마저 벗겨가고, 나귀 등위에 타셨던 분은 십자가 위에 못 박혀 매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왕으로 성 안으로 모셔진 그분은 강도와 함께 성 밖에서 처형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에 따른 우리 주님의 수난기입니다.

이 수난사는 다윗의 자손 호산나라고 외치는 군중의 환호로부터 시작되어, 바로 그 군중들이 외치는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는 배신과 욕설로 마무리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던 제자들의 배신은 예수님을 더욱더 처참하게 만듭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하루 밤 사이에 세 번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가리옷 유다는 은전 서른 냥에 스승을 팔아넘겨버리고,

다른 제자들이 스승이 붙잡힐 때는 옷마저 벗어던져버리며 달아나 버립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노리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 그리고 대제관은 서로 결탁하여 온갖 음모를 꾸미고, 예수님을 심문하고 박해하며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예수님은 외적으로는 군중과 모든 적대세력들로부터 위협당하고, 내적으로는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절대극명의 위기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오늘은 26장 마지막 장면인 베드로의 배반 장면(26,69-75)만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는 추궁이 거듭될수록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부인하다가(70),

다음에는 맹세까지 하고(72),

급기야는 거짓이면 천벌까지 받겠다고 극구 부인합니다(74).

결국, 그는 단지 예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인 맹세하지 말라(마태 5,33-37)는 가르침도 따르지 않습니다.

사실 앞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맹세하라고 다그치는 대사제의 추궁에도 맹세하지 않고 담대하셨는데 말입니다(26,63-64).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했을 때, 닭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베드로의 눈에서 비닐이 벗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구원의 카이로스의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는 그의 무지와 불신에 광명이 비추어진 것입니다.

 닭 울음은 어리석음에 갇힌 그의 영혼을 깨웠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뚫고, 영혼의 귀를 뚫고 내리는 청천벽력의 뇌성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그의 불신과 의혹, 무지와 어리석음을 부서 버렸습니다.

그의 울음은 단지 죄에 대한 울음이 아니었습니다.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 거짓과 비겁함에 대한 울음도, 혹은 스승을 배신한 불효나 불충에 대한 울음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75) 하는 성령의 죽비이었습니다.

닫힌 가슴을 헤치고 들어오는 주님 말씀의 광채요 섬광이었습니다.

죄가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깨우치는 빛이었습니다. 먼저 베풀어진 주님의 사랑 말입니다.

당신을 배신할 줄을 빤히 알면서도 먼저 베푸신 사랑 말입니다.

비록 의혹과 불신에 휩싸여 배신했어도 바로 그러한 그를 끝까지 믿고 희망하신, 그분의 먼저 베풀어진 사랑 말입니다.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채질하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주어라.”(루카 22,31-32)하시며, 결코 희망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명을 주시는 그 사랑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먼저 베풀어진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찬란한 울음을 울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배신은 당신 사랑에 대한 거절 때문이지만, 실상 드러난 것은 당신의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그토록,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사랑하시고, 그 사랑 때문에 고통 받으시고,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그 어떤 처지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통 받더라도 사랑하기를 결코 멈추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상처받더라도,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야 할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베풀어진 사랑을 관상하며 기쁨의 거룩한 울음을 울어야 할 일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를 더더더더~ 사랑하십니다.

저의 사랑이 부족하고 변덕스러워도 당신은 그러한 저를 끝까지 사랑하시니, 주님 사랑 받들게 하소서.

주님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더더더~ 저를 믿으십니다.

저의 믿음 약하고 미진하여도 당신은 저에게서 믿음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당신께 대한 저의 믿음이 아니라 저에 대한 당신의 믿음으로 제가 구원되오니, 주님께 의탁하게 하소서.

주님 희망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저를 더더더더~ 희망하십니다.

저의 희망이 그릇되고 빗나가도 제게서 희망을 거두지 않고 기다리오니, 저의 희망이 아니라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제가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응답의 장소요 공간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오늘말씀에서 샘솟은 기도 -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2)

 

 

 

주님!

더 이상 고집 부리지 않게 하소서.

생각을 움켜잡기보다, 생각에 붙잡히기보다, 생각을 바꿀 줄 알게 하소서.

저의 바람이 아니라, 당신 말씀을 따르게 하소서.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조정 당하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