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4-04 조회수2,072 추천수10 반대(0)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피와 땀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꿈속에서 이렇게 기도했을 것 같습니다. “스승님! 영광의 자리에 오르시거든 저희에게도 합당한 자리를 주세요. 저는 예수님의 오른편 자리에, 제 동생은 예수님의 왼편 자리에 앉게 해 주세요.” 제자들이 원하는 것은 재물, 명예,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 병원에 있어야 했던 형제님이 병실에 적어 놓았던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님, 저는 저의 출세의 길을 위해 건강과 힘을 원했으나, 당신은 제게 순종을 배우라고 나약함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위대한 인물이 되고 싶어 건강을 청했으나, 보다 큰 선을 하게 하시려고 제게 병고를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 부귀함을 청했으나, 제가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가난을 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존경받는 자가 되고 싶어 명예를 청했으나, 저를 비참하게 만드시어 당신만을 필요로 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 저는 제 삶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청했으나 당신은 모든 이를 즐겁게 해주어야 하는 삶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께 청한 것은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주께서 제게 바라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길이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진리였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생명이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지내면서 고인이 되신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제게는 깊은 바다와 같았고, 높은 산과 같았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가야 할 길을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책을 가까이 했습니다. 사건의 현상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본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신문의 행간을 읽기보다는 신문의 편집의도를 말하였습니다. 책을 가까이하고, 본질을 보았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술버릇이 있는 아들에게 말로 타이르지 않았습니다. 30년 동안 즐겨 하시던 술을 끊으셨습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한잔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사제가 되겠다는 아들에게도 덕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기도하였고, 성서를 읽으셨고, 성무일도를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사제, 말씀에 충실한 사제가 되라고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잠을 잤던 제자들처럼 저 역시 아버지가 보여준 길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수난 복음을 함께 읽었습니다. 주님의 수난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배반했던 베드로, 자신의 꿈과 다른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수시로 마음이 변하는 군중,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려는 대사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조롱했던 도둑이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들 또한 평소에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내게 피해가 온다 싶으면, 나에게 더 큰 즐거움이 있다면 기꺼이 신앙의 이름표를 떼고 살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십자가, 희생, 겸손, 사랑이라는 길이 있지만 재물, 명예, 권력이라는 꿈을 쫓아갈 때가 많습니다. 너무도 쉽게 우리의 신앙을 팔아넘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가난한 이들의 외침, 절망 중에 있는 이들의 절규, 아파하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등장인물 중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사람입니다. 오늘 성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준 베로니카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두려워 도망갔지만 예수님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함께 했던 여인들의 이야기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만일 2000년 전에 내가 예수님 수난의 길을 보고 있다면, 나는 어떤 자리에 있을까요? 지금 나는 나의 삶 속에서 어떤 자리를 걸어가고 있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