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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9.1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9-16 조회수1,43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9년 9월 16일

성 고르넬리오 교황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1티모 2,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청과

기도와 전구와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우리가 아주 신심 깊고 품위 있게,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3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일입니다.

 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5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도 한 분이시니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6 당신 자신을 모든 사람의 몸값으로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제때에 드러난 증거입니다.

7 나는 이 증거의 선포자와 사도로,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과 진리를

가르치는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진실을 말할 뿐,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8 그러므로 나는 남자들이

성을 내거나 말다툼을

하는 일 없이 어디에서나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복음 루카 7,1-1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백성에게 들려주시던

말씀들을 모두 마치신 다음,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다.
2 마침 어떤 백인대장의

노예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그는 주인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3 이 백인대장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유다인의 원로들을 그분께

보내어, 와서 자기 노예를

살려 주십사고 청하였다.
4 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며 간곡히 청하였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5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6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가셨다.
그런데 백인대장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르셨을 때,

백인대장이 친구들을

보내어 예수님께 아뢰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7 그래서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8 사실 저는 상관 밑에 매인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9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에게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군중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0 심부름 왔던 이들이 집에

돌아가 보니 노예는 이미

강한 몸이 되어 있었다.

지난달 초에 있었던 일입니다.

기도하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도 졸고 있고,

심지어 고해소에서도 사람들이 없을 때는

저도 모르게 졸고 있습니다.

잠을 덜 자는 것도 아닙니다.

 예전보다도 더 많이 자는데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계속해서 밀려듭니다.
저는 이 피곤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금방 알아챘습니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일이 많아서 그럴까요?

하는 일의 종류는 많지만 그렇게

피곤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디가 아파서 피곤한 것일까요?

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피곤함을 느낄까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운동하는 것이 귀찮아서

한동안 전혀 운동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라 너무 덥다고, 또 장마철에는

비가 온다는 이유로 며칠씩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하지 않으니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약간의 집중만 해도

피곤함을 쉽게 느꼈던 것이지요.
이런 체험은 처음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도 매일 하던 운동을

 하지 않아서 어느 날 갑자기 허리에

이상이 생겨서 병원에 입원했던

일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매일 새벽에 25Km 이상의 거리를

자전거로 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더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을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힘들어도 참고 견뎠습니다.

지금 현재 피곤함은 거의 사라졌고

힘차게 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운동에 대한 믿음이 있으므로 힘든

상태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도 이렇습니다. 그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태에서도 이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이

 그러했습니다. 주님이 크신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분 앞에

 겸손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말합니다.
“제가 주님을 찾아뵙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여겨졌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스스로 자격 없는 자라고

고백하는 겸손이 그를 합당한

사람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주님을

모실 만한 곳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더욱 영예롭고 주님을

모실 만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주님 몸소 그의 집으로 가지 않았어도,

그분의 치유를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굳은 믿음을 통한

겸손이 이루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생각해보십시오.

굳은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방향만을 따른다.

(에우리피데스)

(백인대장의 믿음을 봅니다)


아이들에 대한 신앙교육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에 대한

 신앙교육을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어.”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실 것입니다.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부모의 뜻에 맞춰서 강압적으로

교육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부모의 모습에 감응을 받고

주님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최고의

신앙교육이 어디에 있을까요?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하는 교육에서

이제는 벗어나 스스로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이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 자신들 역시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와 교황

성 고르넬리오와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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