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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2주간 금요일]사람의 아들의 날 (루카 17,26-37)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5 조회수1,551 추천수0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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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간 금요일]사람의 아들의 날 (루카 17,26-37)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 블로그

  

지혜서의 저자는,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주를 알 수 있다고 한다.(지혜13,1-9)
1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2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3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5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
6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은 하느님을 찾고 또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러는 가운데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7 그들은 그분의 업적을 줄곧 주의 깊게 탐구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 그 겉모양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8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9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화답송 시편 19(18),2-3.4-5ㄱㄴ(◎ 2ㄱ)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네.
○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말하고, 창공은 그분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앎을 전하네. ◎
○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 온 누리에 퍼져 나가고, 그 말은 땅끝까지 번져 나가네. ◎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루카 17,26-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8 또한 롯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짓고 하였는데,
29 롯이 소돔을 떠난 그날에  하늘에서 불과 유황이 쏟아져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30 사람의 아들이 나타나는 날에도 그와 똑같을 것이다.
31 그날 옥상에 있는 이는 세간이 집 안에 있더라도 그것을 꺼내러 내려가지 말고, 마찬가지로 들에 있는 이도 뒤로 돌아서지 마라.
32 너희는 롯의 아내를 기억하여라.
33 제 목숨을 보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살릴 것이다.
3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날 밤에 두 사람이 한 침상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36)·37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어디에서 말입니까?”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지혜13,1-9)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  그러나 그들이라고 용서받을 수는 없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내지 못하였는가?"  (9)

 

지혜서 13장에서 15장우상숭배를 단죄하는 내용이다.

지혜서 저자에 의해 단죄받는 우상 숭배의 첫째 형태지혜서 13장 1-9절에 나오는데, 바로 자연 숭배이다.

 

자연 숭배에는, 아무리 아름답고 힘 있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피조물들을  창조주로 오인하는 것이 포함된다.

자연 숭배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잘못은, 그들이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한다." (지혜13,1)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처음에는 자연 숭배자들을 판단할 때 관용을 보이는 듯하다가 ("그렇다고해서 그들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 지혜13,6),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그들이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찾아 내지 못하였다." (지혜13,9)는 사실을 지적한다.

 

우상 숭배의 다음 형태 나무로 만든 목상을 경배하는 것이다(지혜13,10-19).

사람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어떤 사람들이 신(神)으로 부르는 것을 조사한 뒤에 저자는 그 다음 구절에서 목수가 나무를 깎아 만든 우상에 색을 칠하여 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안전한 곳에 고정시킨 다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모든 것, 곧 재산, 가족, 건강 등을 위하여 그것에 간청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항해를 하려는 어떤 사람이 "자기를 데려다 줄 배보다 더 깨지기 쉬운 나무 조각"에 대고 비는 경우이다(지혜14,1).

 

배는 이득을 버리는 마음에서 고안되고 장인의 지혜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조종하는 것은 아버지의 섭리" (지혜14,5)이고, 아버지는 육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게 해주신다.

"세상의 희망이 뗏목에 몸을 피하였던"(지혜14,6) 노아의 방주의 경우가 그랬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은 물론 그것을 만든 자도 저주를 받는다(지혜14,8-11).

그들은 하느님의 창조물을 "사람들의 영혼에 올가미"(지혜14,11)가 되게 하였기 때문에 징벌을 받을 것이다.

 

우상 숭배의 기원은 인간이 고안해 낸 것이다(지혜14,12-21).

우상들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 없었던 것이며 영원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우상들은 죄와 타락의 원천이다.

 

두 가지 예는 우상 숭배가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를 설명한다(지혜14,15).

첫째 예는(지혜14,15) 갑작스런 죽음으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아들의 상을 만드는데

그 조각상이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 예는(지혜14,16-21) 임금의 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임금의 조각상을 공경하기 시작하였는데, 임금은 야심을 가진 장인들에게 덜 사실적이고 훨씬 더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게 하여 경배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사람들은 죽은 아들의 조각상과 임금의 조각상을 신(神)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것이 "인간에게 함정이 되었다"(지혜14,21).

모든 죄악과 악행의 뿌리인 우상 숭배의 주제는 지혜서 14장 22-31절에서 발전한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우상들을 숭배하는 것이  모든 악의 시작이요 원천이며 끝이다"(지혜14,27).

 

하느님을 잘못 알게 되면 반드시 살인, 도둑질, 성도착 등으로 이어진다(로마1,18-32참조).

특히 사악한 것은 이교도들의 종교의식("비밀의식")과 결탁된 악이며, 우상들(결코 神이 아닌)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거짓 증언과 연관된 악이다.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복음(루카17,26~37)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노아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였는데, 홍수가 닥쳐 그들을 모두 멸망시켰다." (26~27)

 

여기서 '노아 때와 같은 일이'에 해당하는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노에'(en tais hemerais Noe; in the days of Noe)를 직역하면, '노아의 날들에'로서 노아의 살아 생전을 말한다.

 

이것은 바로 노아의 생애에 있었던 결정적인 사건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물 심판을 말한다.

 

이처럼 노아 때의 홍수 심판과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하는 의도를 살펴보려면, 루카 복음 17장 24절의 번개와 사람의 아들의 날을 비교한 것을 보면 된다.

 

루카 복음 17장 24절에서 번개의 번쩍임과 비추임사람의 아들의 날에 비교하여 예수님의 재림은 매우 급작스러울 것이며,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확연하게 볼 수 있을 것임을 예언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분명 심판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악해서 그것을 거절했다. 

결국 심판은 임했고, 경고를 무시한 자들은 심판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멸망당한 자들에게 있어서, 그 심판은 갑작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들은 심판의 경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아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의 날에도 사람들이 여러 가지 경고를 통해 알 수 있지만, 이러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임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그리스도 재림의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하느님의 경고를 통해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뜻인 것이다.

 

루카 복음 17장 27절에서는 26절의 노아 때와 같은 일들에 관해 더욱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하고'로 나열된 동사는 모두 미완료 과거 시제이다.

이것은 그들의 삶이 항상 그러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노아의 경고를 듣고도 안일하고 익숙한 삶의 방식에서 탈피하지 않고, 계속 이전과 동일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그것이 왜 그들에게 죄가 되는가?

 

루카 복음사가의 의도는 단순히 그것밖에는 다른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그들에게 가장 심각한 죄는 다름아닌 세상의 일들에만 가치를 두고, 그 일들에만 골몰하였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노아가 방주를 짓고 있었을 때나 그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해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위기감없이 여전히 그들의 세속적 관심에 따라 일상사에만 열중해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이에 대비한 노아와 그 가족들은 구원받았지만, 그들은 멸망의 길을 갔던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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