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사

게시물 상세
제목 [혼인성사]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혼인성사
이전글 [고해성사] 고해성사 다시 보기
다음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9-07-28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43) 혼인성사 ①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삼포세대(三抛世代)”

 

이 말은 연애와 결혼 그리고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로 2011년에 처음 등장한 말입니다. 이 신조어는 ‘오포세대(五抛世代)’, ‘칠포세대(七抛世代)’로까지 확대되어, 집과 경력 그리고 취미 또는 인간관계와 희망까지도 포기한 세대를 일컫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을 반영하고 있는 매우 안타깝고 가슴 아픈 신조어입니다.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에게 “혼인”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현실의 벽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혼인 생활의 필요성과 가치는 점점 외면당하는 현실입니다. 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독신주의’ 또는 ‘비혼주의(非婚主義)’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강제적으로라도 무조건 결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결혼은 사랑을 근본에 두고 있는 것이며, 사랑은 결코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칫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혼인 생활의 가치는 물론 사랑의 가치를 훼손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랑은 인간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모든 인간이 타고난 근본 소명입니다. 인간은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남녀간의 사랑이 당신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절대적이고 변함 없는 사랑의 표상이 되게 하십니다. (…)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이 사랑은 풍성할 열매를 맺고, 창조된 세상을 지키는 공동 노력으로 실현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04항)

 

따라서, 혼인성사는 남녀가 이루는 사랑의 결실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장(場)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가 젊은 세대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혼인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현실적으로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선물이며 축복임을 생각한다면, 혼인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며 영광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44) 혼인성사 ②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

 

 

얼마 전에, 유명한 연예인 부부의 이혼 소식이 전해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혼 사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어느 쪽에 더 큰 잘못이 있는 것인지를 두고 별의별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이제 유명인들의 결혼과 이혼에 관한 뉴스는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소식입니다. 오히려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뉴스들로 인해 그들의 마음 아픈 가정사가 억지로 드러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대략 25만 7천 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2만 쌍의 새로운 부부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혼 건수 역시 적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 해, 이혼 건수는 대략 10만 8천 건이었습니다. 한 달에 2만 쌍이 결혼하지만, 9,500쌍은 이혼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결혼 건수는 전년대비 2.6%가 감소했고, 이혼 건수는 전년대비 2.5% 증가하였습니다. 결혼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이혼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좋다.’라는 설문에 ‘그렇다’라고 응답한 비율도 2008년 68%에서 2018년 48.1%로 감소하였습니다. 이제는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더 만족스럽고 편안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소모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젊은 세대는 굳이 결혼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찌 보면, 나름 현대적이고 대단히 세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가진 이들이라면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이 어디에서 왔으며, 그 사랑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을 통해 혼인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평생을 기약하고 한 사람과 결합하는 것은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고, 심지어 불가능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결정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시고, 부부들은 이 사랑에 참여하며, 이 사랑이 그들을 지탱하고 힘을 주며, 또 그들이 신의를 지킴으로써 하느님의 성실한 사랑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48항)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사랑을 변함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의 혼인성사가 드러내 주는 것처럼 이 모든 것은 사랑의 원천이시며 근원이시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019년 8월 4일 연중 제18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45) 혼인성사 ③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1요한 4,19)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현”이라는 성사의 정의에 따라 생각했을 때, 성사의 거행에서 그 가시적 표현들, 즉 특정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주로 그 성사의 집전자인 ‘사제’입니다. 성사에 참여한 이들은 사제가 바치는 기도문의 내용이나 사제가 하는 행동들을 통해서 그 성사의 특성을 알게 되고, 그 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사제가 아닌 “신랑과 신부”입니다. “라틴 전통에 따르면 신랑 신부가 그리스도의 은총의 집전자로서, 교회 앞에서 혼인 합의를 표명함으로써 서로 혼인성사를 줍니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사제(주교 또는 신부)가 신랑 신부의 상호 합의에 대한 증인이 됩니다. 그러나 성사의 유효성을 위해서는 사제의 축복이 필요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23항)

 

이처럼, 혼인성사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하느님 앞에서 맹세하는 ‘혼인 합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교회와 세상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하느님의 계약을 독점적이고 충실한 부부 사랑의 표상이라고 보고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깊이 이해하도록, 선택된 백성의 의식을 준비시켰습니다. 룻기와 토빗기는 혼인과 부부의 신의와 애정이라는 고상한 의식에 대해 감동적인 증언을 담고 있습니다. 성전은, 아가에서 발견되는 ‘죽음처럼 강한’ 사랑, ‘물살도 쓸어 갈 수 없는’(아가 8,6~7) 사랑이라는 표현을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인간 사랑의 독특한 표현으로 언제나 여겨 왔습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11항)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모습으로 부부간의 사랑이 이어질 때, 그 사랑은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영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기에, 우리를 자유롭게 사랑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랑은 본래 결정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새 결정을 내릴 때까지만’이라는 한정적인 것일 수는 없습니다. 부부간에 이루어지는 이 깊은 결합은 두 인격의 상호 증여로서, 자녀의 행복과 더불어 부부의 완전한 신의를 요구하며, 그들의 풀릴 수 없는 일치를 촉구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46항)

 

그러므로 부부가 드러내는 “영원불멸한 사랑”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선택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고귀한 사명에 초대되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노력할 때, 비로소 그 완성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19년 8월 11일 연중 제19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

 

 

하느님을 알아 가는 기쁨 (46) 혼인성사 ④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9)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이 큰 흠이 되지는 않습니다. ‘돌아온 싱글(single)’이라는 의미의 “돌싱”이라는 신조어가 흔히 사용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이혼 경력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진출을 가로막거나, 도덕적 평가의 요소로 사용되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혼 경력으로 누군가의 인간적 품성을 평가할 수 없으며, 이혼 경력으로 인해서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톨릭교회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톨릭교회 안에서 이혼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혼의 아픔이나 상처에 대한 배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혼인성사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을 거스르는 것은 교회의 입장에서도 큰 상처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혼인성사에 있어서 신랑과 신부가 지켜야 할 고유하고, 고귀한 가치들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합니다. 그것은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 그리고 “출산”입니다.

 

“단일성과 불가해소성과 출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은 혼인에 필수적입니다. 일부다처제는 혼인의 단일성과 양립할 수 없고, 이혼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가르는 것이며, 출산 거부는 하느님께서 부부 생활에 주시는, 자녀라는 ‘가장 뛰어난 선물’을 외면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64항)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이러한 혼인성사의 목적과 가치들은 오늘날 이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 분위기에서 외면당하기도 하고, 그 중요성을 축소시키려는 의견과 부딪히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강조하는 혼인의 가치들은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교회의 낡은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서로를 불가분(不可分)의 내조자로 세우신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인간이 편의에 따라 바꿀 수 없으며, 사랑의 의미와 가치 또한 인간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혼인은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혼인은 배우자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온전한 자기증여”의 행위이며, 이를 통해 주어지는 “출산”이라는 선물 또한 당사자들의 선택이 아닌, 생명에 대한 거룩한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의 가치는 혼인 당사자 외에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혼인 당사자들에 의해서조차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분이 교회 앞에서 밝힌 이 합의를 당신 은혜로 확고하게 하시고 두 분에게 복을 가득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합니다.” [2019년 8월 18일 연중 제20주일 의정부주보 11면, 왕태언 요셉 신부(신앙교육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