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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례성사] 세례성사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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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9-07-02

[전례와 상징] 세례성사의 상징

 

 

‘오늘’이란 말을 들으면 ‘내일’이나 ‘어제’를 연상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단어의 연상적 의미(聯想的 意味)라고 한다. 그런데 사람은 의사를 전달하는 매개물로서 단어(單語)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없더라도 어떤 실물을 보고 상징적인 의미를 알 수 있다. 반지를 보면 약혼이나 결혼을 생각하고 태극기를 보면 한국을 연상하게 된다.

 

이렇게 어떤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사물이나 사람, 동작, 행위를 통하여 다른 보이지 않는 실재를 나타내 보이는 것을 상징이라고 한다. 이것을 우리 말로는 표상, 표지, 표징, 징표 등 여러 단어로 표시한다.

 

대림절에 본 대림환에서 네 개의 초는 대림 4주간을, 촛불은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란 말씀을 명백히 드러내기 위하여 부활초를 사용하는가 하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란 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세례성사 때 촛불을 전달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표지이고 성사의 원형이다. 이와 같이 주님의 몸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된 구원의 교회요 성사이고 표지이다. 그러나 이런 상징을 잘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 없이 상징만을 보고 하느님의 일을 깨달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해 나아가도록 교회는 여러 가지 예식을 통하여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함에로 나아가는 일을 성사(聖事)라 하고 영원한 생명, 구원을 얻도록 세례를 받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수행하는 것이 세례성사이다. 즉 세례 자체도 사람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는, 볼 수 있는 한 표징이다. 세례 예식의 여러 상징들 가운데 중요한 것만 살펴보자.

 

 

십자표

 

‘예비자들을 받아들이는 예식’에서 세례 집전자는 예비자들을 권고하고 이마에 십자표를 한다. “○ ○ ○, 이마에 십자표를 받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 당신 사랑(승리)의 표지로써 당신을 지켜주실 것이니 이제부터 그분을 알아 따르기로 노력하십시오.” 이어서 다른 감각기관인 귀, 눈, 코, 가슴, 어깨에 십자표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몸 전체가 십자가로 밝혀진다.

 

십자가는 가로와 세로의 선이 교차한다. 즉 하늘과 땅이 이 표시 안에 하나로 연결된다. 즉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은 온전히 하나가 된다. 이 연결은 이제 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에 구원과 생명과 희망을 거는 찬미를 드리는 것이다.

 

십자가 표시는 세례 예식에서 아주 오래 된 것으로, 5세기경에 이미 있었다. 이것이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전파되었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 표시를 통하여 당신은 마치 집대문과 같은 당신 이마에 십자표를 할 것이며 모든 신자들도 그 표를 할 것이다.”

 

십자가 표는 ‘십자가에 못박힌 분께 예속됨’을 상징한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가 단지 수난의 표시일 뿐 아니라 부활의 상징이란 사실도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사제뿐 아니라 부모와 대부모 또는 동참자까지 십자표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는 본당 공동체가 예비자를 받아들이고 아울러 공동체가 성장함을 의미한다.

 

 

안수

 

세례, 견진, 혼인, 신품 등 성사 집행과정에는 안수 예절이 있다. 머리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하느님께서 손으로 사람을 감싸주어 보호하고 돌본다는 뜻이다. 또한 축복을 내리고 성령의 은혜를 넘치도록 베푼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이 안수도 이미 4세기 초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예비자들에게 베풀어졌다. 교회사가 에우세비오(Eusebius)는 콘스탄틴 대제가 안수를 받고 예비자가 되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이 안수는 초기 예비자 교육 중 자주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신앙인 교육은 축복과 성령의 힘과 하느님의 손을 필요로 한다.

 

 

성유

 

기름 바름을 도유(塗油)라 하고 세례식 전에 바르는 기름을 예비자 성유 또는 구마(驅魔) 성유라고 하며 세례식 후에 바르는 기름을 크리스마 성유라고 한다. 기름 바름은 원래 운동 선수들의 의식에서 유래한다. 그들은 경기나 특히 둘이 결투를 할 때 관절을 연하게 하기 위하여 기름을 발랐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다음에는 짙게 발랐던 기름을 목제기구로 벗겨냈다. 여기서 이런 도유의 상징적 의미가 생겼다. 즉 세례 받은 자는 악마와 대결하여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즉 기름 바름은 이미 기름을 받은 왕과 대사제가 영신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도유식 때 “구세주 그리스도의 능력이 당신을 지켜 주시도록 기원하며…”라고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세례식 후 크리스마 성유를 바르는 예절은 근원적으로 견진성사 때였다. 4세기경에 사제가 세례식 후 크리스마 성유를 발랐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 견진성사는 영세 직후 같은 시간에 베풀었다. 그러나 사제가 이마에 이 기름을 발라서는 안되었다. 견진은 주교들만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콘스탄틴 대제 때부터 예비자들이 많아져서 세례식마다 주교들이 찾아갈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도유는 빼지 않았다.

 

크리스마 도유는 영세자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왕이 등극할 때 기름 바르듯이 기름 바르고 또한 사제 직분을 받는다. 한마디로 영세자는 왕이요 사제이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살 수 없다. 모든 생명이 물에서 비롯된다. 태초에 모든 생명이 바다에 있었고 인간의 태아도 바닷물같은 양수(羊水)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모든 요소의 모체인 물을 하느님은 영세자의 천상적 탄생의 유효한 표징으로 삼으셨다. 영세수 축성 기도문의 일부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성사의 표시를 통하여 무형의 권능으로 기묘한 효과를 내는 천주여, 주께서는 물이 세례성사의 은총을 표시하도록 여러 가지 모양으로 준비하셨나이다. 세상 태초에 성신이 물 위를 거닐으실 때 이미 거룩하게 하는 힘을 물에 태워주시고 홍수의 심판을 내리실 때에도 물로 죄를 씻으시고 덕행의 기원을 삼으심으로써 신비로이 재생의 표본을 보여주셨나이다…”

 

예수님은 요르단 강물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고 십자가 위에서 피와 물을 함께 흘리셨다. 부활 후에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다.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탄생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질문에 대하여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말씀하셨다.

 

 

흰옷

 

세례복은 영세자가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입는 축제의복이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과 결혼축연에 참여하는 신부를 연상시킨다. 종말의 구원을 뜻하는 천상 영광의 잔치에 초대된 모습이다(묵시 7,9-14 참조). 이렇게 영세자는 새로이 창조되어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다(갈라 3,27 참조).

 

 

촛불

 

4세기의 암브로시오 성인은 “새 영세자들이 손에 불타는 초를 들고 부활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 공동체의 모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주님인 빛을 받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에페 5,8)는 정신으로 영세자의 과거와 미래를 비추는 빛의 상징이 이 촛불이다.

 

[경향잡지, 1988년 1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