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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체성사] 성체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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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8-08-05

[특별기고] 성체의 존엄성

 

 

남성 혐오 인터넷 커뮤니티인 ‘워마드’에서 성체를 모독한 사진이 올라와 가톨릭 교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교회에서는 본당마다 성체 현시와 조배 등 성체 공경 예절이 잇따르고 있다. 주교회의도 최근 신자들에게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공동 보속을 할 것을 제안하는 공문을 전국 각 교구에 보냈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네 차례에 걸쳐 「성체흠숭지례」(으뜸사랑, 2018) 저자인 최성균(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신부의 기고문을 싣는다.

 

 

1. 성체성사의 본질과 가치, 그 의미

 

성체(聖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가톨릭교회 신앙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성체는 인간의 눈과 척도로는 잴 수 없는 예수님의 신적인 사랑이시고, ‘불사의 영약(靈藥)’(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이시며, 성체를 영한 우리 육신도 이제 ‘부패될 육신’이 아니고 ‘부활의 희망을 지닌 육신’(성 이레네오)이 되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성체의 가치와 힘은 결국 성체께 대한 최상의 흠숭 표현인 미사성제 때 이루어지며, 미사의 꽃이며 핵심인 영성체 때 그 절정을 이룬다. 이때 신자들은 하느님께 최상의 흠숭과 영광, 찬미와 사랑, 감사를 드린다. 

 

성체성사의 본질과 가치, 의미에 대한 선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천명됐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미사성제)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사랑하는 당신의 정배인 성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제2장 47항) 

 

그러므로 성체께 대한 흠숭은 모든 교회 생활의 중심을 이루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원천적인 동력을 제공한다. 그러한 이유로 성체께 대한 올바른 흠숭이 결여된 신앙은 성교회를 점점 세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실제로 16세기 때 성찬례가 왜곡되고 성체께 대한 불경과 부족한 신심으로 인해 교회가 신앙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때,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에 관한 법규」 제1항에서 “만일 누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과 더불어 그분의 몸과 피가, 즉 온전한 그리스도의 전 존재가 진실로, 실제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심을 부인하면서, 상징으로서나 형상으로 혹은 그분의 능력만이 그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당해야 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함으로써 성체성사에 관한 교의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성체가 잘못 해석돼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측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성찬의 전례에서 성변화가 이루어진 후, 빵과 포도주의 형상에 실제로 신성과 인성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신자 중에는 성체와 성혈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물로 여기거나 영성체를 하나의 전례상 외적 행위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찬례는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누구도 그것을 가볍게 다루거나 그 거룩함과 보편성을 무시할 수 없다”(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2항)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체성사의 본질과 그 가치, 그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되고 있다면 그 결과의 근본적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성체성사야말로 인간이 되신 성령께서 베푸시는 하느님 선물의 정점이다. 따라서 성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가고 거기에서 존재 이유를 반드시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성교회는 신자들이 성체성사의 절대적 의미와 성체께 대한 흠숭지례를 인식하는 데 혼란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신앙적 쇄신을 통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5일,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2. 교회와 성체흠숭지례

 

현대 사회는 신을 배제한 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로 인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신앙마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초대 교회 때부터 가톨릭교회는 신앙적 위기를 여러 차례 겪어 왔지만, 뿌리까지 흔드는 도전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겪는 신앙적 위기는 뿌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의 현대화(aggiornamnto)는 신선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거룩한 신앙적 전통들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들로 진행됐고, 영의 식별에 결핍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많은 신앙적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미사 참여율도 2017년 19.4%로 급감했고, 사제와 수도자 수도 점점 줄어드는 유례없는 신앙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중세 말기 교회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14세기부터 신학자들이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학보다는 철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교회는 혼란에 빠졌고, 성체에 관한 이단설까지 유포됐다. 이러한 성체 논쟁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의 도전을 불러오면서 결국 교회를 분열시켰다. 이들의 도전은 신앙생활과 ‘성찬례’를 왜곡시키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성체와 성혈’을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성체와 성혈의 실체변화’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첫 번째 이유는 당시 교회에 만연된 ‘성찬례’에 대한 부족한 교육과 열심하지 못한 신심 때문이었다. 교회에서는 ‘성찬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의 재현’임을 신자들에게 충분히 제시해주지 못했다. 또 ‘성찬례’를 형식적으로 거행하고 있었기에 신자들은 ‘성찬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영성체도 자주 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결국 많은 신자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교회는 신자들의 성체성사에 대한 신심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정립해 줘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거룩한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와 흠숭지례에 관한 회칙’ 「신앙의 신비」를 통해 “빵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 채, 트리엔트 공의회가 단언하고 있는 이 ‘실체변화’를 ‘의미변화’ 또는 ‘목적변화’ 따위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런 변화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습니다”(11항)라고 쓰셨다. 그러면서 신자들에게 성체를 ‘상징’으로 여기는 심각한 위험성을 일깨우셨고, 성체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알려줄 책임이 먼저 교황 자신에게도 있음을 명백히 하셨다.

 

그렇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왜 이러한 신앙적 위기의 현상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먼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성찬 전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가 현재 거행하고 있는 ‘성찬 전례’의 방식과 태도에서 비롯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세심하게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12일,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3. 성체분배에 관한 문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현대 교회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수호할 수 있도록 성찬례의 규율과 관련된 훈령을 마련하라고 명하셨다.

 

200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지극히 거룩한 성찬례와 관련해 준수하거나 회피해야 할 일부 문제들에 관한 훈령 「구원의 성사」’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쇄신은 신자들이 거룩한 미사성제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4항)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그림자는 있다’”며 전례의 남용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날 성직자가 부족하고 신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도입된 비정규 성체분배자 특별 봉사제도가 이러한 전례 남용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 훈령에서도 ‘비정규 성체분배자’라는 항목에서 ‘성체 분배’ 문제에 대해 매우 세심한 규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성체를 분배하는 거룩한 성직자의 수가 충분하다면 비정규 성체분배자를 임명하지 않도록 한다. 미사 거행에 참석하였으면서도 성체 분배를 하지 않고 그 직무를 평신도에게 떠넘기는 사제들의 관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157항) 다만 “사제나 부제가 없을 때, 사제가 병약하거나 연로하여 성체를 분배할 수 없을 때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158항)

 

그렇지만 영성체를 하는 교우가 적거나 여러 사제가 있는데도 (사제는 앉아 있고) 비정규 성체분배자에게 성체를 분배하게 하거나, 비정규 성체분배자들에게 환자 봉성체를 시키는 것은 교회가 특별 봉사제도를 도입한 의도와는 거리가 매우 먼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체성사를 이룰 수 있는 집전자는 유효하게 성품된 사제뿐이며, 정규 성체분배자는 주교와 사제와 부제이고, 미사 거행 중에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그들의 소임”이기 때문이다.(154항)

 

이러한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을 막기 위해 “교구장 주교는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폭넓게 임명된 경우에 특별 규범을 발표하여, 법에 따라 교회의 전통을 유념하면서, 그러한 직무를 적절히 수행하는 방법을 확정 지어 주어야 한다”(160항)고 언급하고 있다. 또 “어떠한 경우에도 사제의 고유한 직무를 신자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전례가 남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32항)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미사 중에 ‘신자 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 성체분배자를 상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전례의 남용은 “놀라운 성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건전한 신앙에 혼란이 생기도록 하는 데 일조(一助)하고 있는 것”(6항)이며, 이러한 남용이 계속된다면 전례가 갖는 본연의 의미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규 성체분배자보다 더 많아진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은 사목이나 전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들이 간직해 온 교회의 성사생활과 전례 참여, 신앙심과 관련된 세습된 영적 자산과 유산을 빼앗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19일,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4. 영성체 방법에 관한 문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78조는 영성체 방법에 대해 “영성체는 혀로 또는 손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 21항에서도 “영성체를 시켜줄 때에는 축성된 제병을 영성체자들의 혀에 얹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각 주교회의는 손에 얹어 주는 방법을 허락할 수도 있다. 조건은 교황청의 확인을 받아야 하고, 불경의 위험이 없어야 하고, 성체께 대한 그릇된 생각이 신자들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훈령 「구원의 성사」 92항에서도 “모든 신자는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실 권리가 있지만,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바랄 경우 성체를 손에 들고 멀리 나가지 못하게 주의해야 한다. 신성 모독의 위험이 있다면, 손에 성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러나 9세기 프랑스 루앙 시노드(878년)는 신자들이 입으로 성체를 영하도록 결정했다. 당시에도 신자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즉시 영하지 않고 집으로 모셔 가서 성체를 모독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체께 대한 경외심이 매우 커 오직 사제만이 성체를 만질 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도 이같은 결정의 배경이었다. 9세기부터 1968년까지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은 영성체를 할 때 무릎을 꿇고 턱밑에 영성체 받침을 받치고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유럽 일부 지역 교회에서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1969년 「주님의 기념제」 훈령에서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에 관한 철저한 교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할 때는 성체성사의 현존에 대한 신앙 의식을 약화시키는 조짐마저도 배제하며, 성체께 대한 신성 모독의 위험이나 그런 위험의 징조마저 배제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이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을 실시할 때 교회의 이 훈령들과 지침들을 각 지역 교회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가?

 

초대 교회에서는 제자들이 얼마나 굳은 믿음으로 성체를 영했을 것이며, 얼마나 깊은 흠숭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명을 따라 이 ‘생명의 빵’을 분배해 주었겠는가! 그리고 자신들과 똑같이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체를 영하도록 제자들은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가르쳤겠는가!

 

오늘날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할 때 드러나는 가장 중대한 문제점은 영성체자들이 거룩한 성체를 경솔하게 대하거나, 동작이 기계적인 습관으로 변하면서 점점 성체께 대한 흠숭을 경시하고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은 신자들의 신앙을 약화시켰고,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께 대한 흠숭을 하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체 흠숭에 대한 철저한 교리교육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8월 26일,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