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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성사] 혼인,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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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7-12-11

혼인,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있어 가장 축복된 일이지만, 엄연한 현실이기도 하다. 집안 사이에서 돈 문제가 오고가야 하고, 집 장만도 해야 할 것이며, 화려한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초대해야 한다. 혼인에 대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신앙인들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쪽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라서 성당에서 결혼하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난 초라한 결혼식이 싫었어요. 하객들은 전부 식당에 가있고 가족 몇 명만 하는 결혼식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기분이 나빠서 그랬어요. 아니 왜 하필 성당이냐? 그까짓 거 차이 있으면 얼마나 있냐고?… 난 딸 가진 입장이잖아요. 내가 뭐든 그쪽 비위를 맞춰야 하는 입장이지… 그런데 결국 그쪽에서 아들이 이겨서 호텔로 잡았어요. 엄마랑 아들이 싸워서 결국 이긴거죠”(‘고비용 결혼문화 인식개선 관련 심층 면접조사’ 중, 여성가족부, 2014년 12월).

 

혼인(婚姻). 사람들 사이에서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통하며, 가장 많은 이해관계가 뒤섞이는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 서는 두 남녀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두 남녀의 집안과 집안이 결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결혼의 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을 둘러싼 문제에 있어 당사자들 뿐 아니라 부모 혹은 친척의 의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 자식과 부모,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에서 여러 갈등이 생겨난다. 결혼이 이루어지기까지 수없이 흔들리게 되는 신앙인의 모습 안에서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혼인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정말 관심이 없었는데 딸아이가 결혼한다기에 딱 한번 점을 봤어요. 사귀는 사람이 있는 건 알았지만 결혼을 할 줄은 몰랐거든요. 아이가 사회생활도 안 해봐서 사람 볼 줄이나 알까 싶었죠”(60대 여성신자). 오늘날에도 결혼 전 남녀의 궁합을 보는 풍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신앙인도 예외는 아니다.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 바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이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2016년 5월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궁합이 별로인 내 배우자, 그래도 결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약 78%가 ‘배우자가 될 사람과의 궁합 결과가 신경쓰인다’ 라고 답했다.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에 앞서 상대방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혼인 예식서」에는 신랑 신부가 서로 ‘예’라고 대답하는 순서가 있다. 그 대답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서로의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말할 때 비로소 두 사람은 하나라는 공동체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차츰 쌓여가는 신뢰보다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재산, 학벌, 직업과 같은 조건들이 중요해졌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결혼이란 제도는 비용 대비 효율이 최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 사람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성격인지 전부를 알지 못한 채 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에 결혼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동기부여가 필요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임신한 신부에게 맞는 드레스

 

“순간 정적이 잠깐 있었어요. 알았다고 임신한 거는 잘 된 일이라고 말씀은 하시는데 당황스러워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사고치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그런 거에 전혀 신경을 안 쓰시고 믿어주신 것 같아요. 저희 엄마가 뒤에 말하시더라고요. 사고 한 번 안치더니 크게 한 번 쳤다고요”(결혼 2년차 20대 남성). 요즘 젊은 부부에게 ‘속도위반’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웨딩박람회에는 ‘임신한 신부에게 맞는 드레스가 있느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결혼하지 않는 비혼(非婚)현상이 두드러지는 시대에 오히려 혼전 임신이 결혼으로 이어지기에 환영하는 분위기마저 있다.

 

2014년 6월에 열린 수원교구 ‘제2차 가정사목세미나’에서 발표된 ‘혼인 전 젊은이들의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혼인교리를 받은 예비 부부 2270여명 가운데 ‘혼전 임신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8.5%였다. 또한, ‘동거 중’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8.9%로 나타났다(2014년 「2차 가정사목 세미나 및 가정분과위원교육」 자료집 참조). 교회는 혼인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지만, 현실 앞에서 신앙인들도 사회풍토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혼인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이루시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혼인 전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모가 뭘 해줘야만

 

“저는 부모가 뭐라도 해주면 스타트가 다르고 생각해요. 집이 없는 애랑 있는 애랑, 부모가 집을 해주면 그만큼 스타트가 달라서 나중에 가난이 대를 물린다고 하듯이 집이 있으면 그만큼 앞서 나가잖아요. 부모가 뭘 해줘야만 요즘 젊은 애들이 지네가 뭘 해서 뭘 일군다는 그런 시대는 이제 아닌 거 같아요”(‘고비용 결혼문화 인식개선 관련 심층 면접조사’ 중, 여성가족부, 2014년 12월). 한 웨딩컨설팅업체에서 최근 2년 안에 결혼한 남녀 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6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의하면, 평균 결혼 비용은 2억 7,400만원으로 조사됐다. 결혼자금 중 주택마련이 70%가량을 차지했다.

 

부모 세대는 자녀가 기죽지 않거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조금 더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혼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결혼에 점차 소극적이고 수동적이 된다. 가톨릭 교회는 혼인을 하느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부부로 맺어주신다고 본다. 그것은 ‘단일성’이란 교회용어로 표현된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시는 부부 사이에는 제 3자, 심지어 부모나 친척도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 혼인의 본질을 묵상하는 일은 신혼부부한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생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부부가 매번 새롭게 혼인의 본질을 묵상하는 일은 다음 세대에 신성한 혼인을 몸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난관들이 있지만 신앙인들은 혼인의 가치 전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억지로 채우려기보다 하느님의 자리를 비워두려는 미덕이 필요하지 않을까?

 

[외침, 2017년 1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이지원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