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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성사] 혼인, 사랑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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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8-05-22

[전례 생활] 혼인, 사랑의 신비

 

 

성당에서 혼인하는 것은 가톨릭 신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가톨릭교회는 혼인 예식 거행으로 무엇을 드러내고자 하는가?

 

새로 출간된 「혼인 예식」은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혼인의 풍성한 전례 거행으로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 그 풍요한 사랑의 신비를 상징하고 그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어야 한다”(14항).

 

혼인은 단지 정혼자들과 그 가족에게만 관련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에게 혼인은 파스카 신비로 교회와 새로운 계약을 맺으신 그리스도의 사랑과 일치를 드러내는 신비이다.

 

그것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마태 19,6)이 된 부부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사랑의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며 신앙의 빛으로 평생에 걸쳐 완성시켜 나가야 하는 신비 여정의 시작이다. 따라서 혼인 예식은 그 주요 요소들과 거룩한 표징을 통해서 이러한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거행되어야 한다.

 

“혼인 거행의 중요한 요소들, 곧 구세사 안에서 차지하는 그리스도인 혼인의 중요성과 더불어 부부와 자녀의 성화를 위한 본분과 책임을 가르쳐 주는 말씀 전례, 주례자가 요구하고 받아들이는 정혼자들의 혼인 합의, 신랑 신부를 위하여 하느님의 강복을 간청하는 축복 기도, 신랑과 신부는 물론 다른 참석자들을 일치시켜 주는 영성체 등이 뚜렷이 드러나야 한다.

 

이 성찬의 친교로 사랑이 자라나고 그 사랑이 또 이웃과 이루는 친교로 드높여진다”(「혼인 예식」, 35항).

 

 

혼인, 사랑의 충만한 수락

 

혼인 예식의 절정은 정혼자들이 자유로운 마음으로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서약하는 순간이다. 혼인은 정혼자들의 서약, 곧 두 사람의 취소할 수 없는 합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혼인 예식에서 정혼자들이 상호 서약으로 혼인 합의를 표명하는 양식은 다음과 같다.

 

“나는 당신을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62항).

 

혼인 서약은 “나는 당신을 남편(아내)으로 맞아들여”라는 문구로 시작하는데, 이 말 안에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의 개념, 곧 온전한 수락과 일치의 뜻이 담겨 있다. 우리말의 ‘맞아들이다’에 해당하는 라틴어 동사 ‘accipere’는 라틴어 성경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그 의미는 특히 마리아와의 혼인과 관련하여 요셉이 천사에게서 들은 말에서 잘 나타난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결국 신랑과 신부는 이 서약의 말로 배우자를 자신의 소유물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선물로서 서로를 받아들일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온전한 수락과 일치의 특별한 점은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라는 표현에 잘 담겨 있다. 곧 부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선과 행복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된 부부 일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혼인은 함께 일하고 영적으로 소통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인간을 오롯이 맞아들이는 육체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둘째, 혼인은 서로가 가진 관심사의 일치만이 아니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는 것이다.

 

셋째, 혼인은 어떤 정해진 기간 동안의 한시적인 계약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수행해야 할 계획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체적인 삶의 일치의 관점에서 사랑의 충만한 수락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과 신의의 표지

 

혼인 합의에서 표명되는 부부 생활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신의’는 혼인 예식에서 여러 상징적인 표지를 통해서 표현된다. 혼인 합의 때에 서로의 ‘오른손을 잡는 행위’와 혼인 합의 뒤에 이루어지는 ‘반지의 축복과 교환’이 그것이다.

 

신랑 신부가 서로 ‘오른손을 마주 잡는 것’은 본디 옛 로마 전통의 약혼식에서 이루어진 행위로 다가올 혼인과 동거생활과 관련된 신랑의 책임과 신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2-16세기를 거치면서 혼인식이 ‘성당 문 앞에서’(ante faciem ecclesiae) 공적으로 거행됨에 따라 이 동작은 혼인 합의 체결의 두 주체인 신랑과 신부가 서로의 결합과 상호 신의의 뜻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표지가 되었다.

 

반지 또한 전통적으로 약혼식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건네주었던 것으로 신의의 표지였다. 일찍이 사제가 신자들의 약혼식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신부의 반지를 축복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가 되었다. 11-15세기의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여러 예식서들과 1614년의 「로마 예식서」의 혼인 예식에서는 사제가 신부의 반지만을 축복하고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 주는 행위만을 담고 있었다.

 

한편 독일과 스페인과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반지를 모두 축복하고 서로 주고받는 관습이 있었다. 여러 세기가 지나면서 신랑과 신부의 반지를 함께 축복하고 서로 교환하는 관습이 보편화되었고, 지금의 예식서 안에 반영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둘을 하나로 결합시킨 사랑과 신의의 가시적인 표지로서 서로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사랑과 신의의 표지로 당신께 드리는 이 반지를 받아 주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드립니다”(「혼인 예식」, 67항).

 

 

혼인 축복, 하느님의 선물

 

‘일생 신의를 지키며’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존경하겠노라는 선언은 그 자체로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결정인가! 이는 성품성사 때나 종신 서원에서 성직자나 수도자가 하느님께 바치는 서약만큼이나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아름다운 응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모든 부르심은 그분의 도우심이 없다면 시작할 수도 마칠 수도 없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조건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듯 변하곤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니던가? 하느님의 은총 없이,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힘입지 않고서 이 위대한 서약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낼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제는 공동체의 마음을 모아 신랑 신부를 향해 두 손을 펴들고 하느님의 복을 간절히 청한다. 곧 인간적인 노력과 힘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부부 생활의 여정에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어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드리는 것이다.

 

이 혼인 축복은 로마 전통의 혼인 예식에서 비롯한 가장 특징적인 요소로서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이 기도의 구조는 삼위일체의 성격을 띠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혼인 제정의 기원이 되는 창조 사건을 중심으로 성부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에 대한 ‘기념’이 주된 내용을 이룬다.

 

둘째 부분은 혼인의 선과 신랑 신부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총을 간구하는 ‘성령 청원 기도’의 성격을 띤다.

 

셋째 부분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간구로서 부부 관계 속에서 지속될 복음적 소명과 더불어 영원한 구원에 도달할 때까지 혼인 생활에 알맞은 선과 종말론적 희망을 담고 있다.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에 힘입어 거룩한 성사로 축성되어 맺어진 부부는 그리스도와 그 신부인 교회의 결합을 드러내는 사랑의 신비를 살게 될 것이다. 「혼인 예식」의 지침 안에도 인용된 한 교부의 글은 그리스도 안에서 혼인하는 이들이 살아야 할 이 신비, 곧 신앙의 빛을 통하여 일상 속에서 소망하고 준비하고 거행해야 할 신비를 밝혀 준다.

 

“교회가 맺어 주고 봉헌으로 확인하고 축복으로 날인하며 천사들이 선포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준하신다. … 그것은 하나의 바람, 하나의 서약, 하나의 가르침, 하나의 섬김으로 이루어지는 두 신자의 유대가 아닌가! 둘 다 형제이고 둘 다 반려이며, 결코 몸과 마음이 갈리지 않는다. 이제는 둘이 한 몸이다. 몸이 하나이면 마음도 하나이다”(테르툴리아누스, 「아내에게」, 2,8).

 

* 김기태 사도 요한 - 인천교구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이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8년 5월호, 김기태 사도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