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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자성사] 병 들었을 때에 그분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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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17-09-26

병 들었을 때에 그분이 계신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없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픈 이들의 영혼과 육체를 치유해주셨다. 그리고 교회의 병자성사는 예수님께서 맡기신 이 임무를 이어나간다.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들의 병자성사에 대한 오해는 그 은총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누구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 자신 혹은 나의 가족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라 생각지 못한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특히 질병은 고통을 불러오기에 최대한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것 역시 질병이다. 질병은 단순히 한 사람의 신체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 인생을 혹은 한 가정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한다. 흔히 병에 걸린 이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는가?”하고 스스로 반문한다.

 

요한복음 9장 2절에서 3절을 보면, 제자들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인 자에 대하여 “스승님, 누가 죄를 지었기에 저이가 눈먼 사람으로 태어났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이라 답하신다. 가톨릭교회는 과거 병자에 행하던 도유를 ‘병자성사’라는 이름으로 베푼다. 그러나 누구도 내가 혹은 내 가족이 받을 성사라고 생각지 못한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약할 때 받을 수 있는 이 성사의 은총에서 멀어져 버린다. ‘지금, 수원교구’를 통해 신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병자성사의 오해들을 살펴보자.

 


병자성사는 죽기 전에 받는 것이다?

 

신자들의 가장 큰 오해는 ‘병자성사’는 죽기 전에 받는 성사라는 점이다. 그리하여 병자성사를 권유할 경우, 환자들과 그 가족은 ‘왜 받아야 하지? 죽을 사람도 아닌데?’라는 거부감이 생긴다. 가톨릭평화방송 「김연범 신부의 전례산책」에 나오는 한 사례를 소개해본다. 한 할머니가 병자성사를 청하여 “할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 할머니는 “제가 아픈 게 아니라 손녀딸이 아프다”고 했다. 26살인 손녀딸이 희귀병에 결렸으며, 병원에서는 한 3개월 밖에 못 살거라 했다. “지금이라도 병자성사를 미리 했으면 합니다”라는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갔는데 그 손녀는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나 이제 이거 받으면 죽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사제는 전했다. 병자성사는 사형선고와 같은 성사가 아니다. 큰 병을 앓고 있거나 노령으로 급격히 쇠약해졌을 때, 또는 큰 수술을 받기 전에도 청해 받을 수 있다. 또한, 병중에 있을 때는 횟수에 관계없이 청할 수 있는 성사이다. 병자성사를 받은 후 회복됐다가 다시 병에 걸렸을 경우에도 또 받을 수 있다. 초대교회부터 행하던 병자도유는 병자들에게 영육의 건강과 구원의 은총을 주는 성사였다. 그러나 중세시대를 거치며 기나긴 고해성사와 참회와 결부되어 임종을 앞둔 이들만을 위한 종부성사로 한정되고 말았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종부성사’를 ‘병자의 도유’라는 표현으로 본래 의미를 되살려 놓았고,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병자성사가 질병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A씨는 오른팔에 종양 제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아야 했다. 같은 통증이 생기면 또 다른 종양이 발견되었다. 세 번째 수술 후 의사는 종양을 전부 제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의사는 A씨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방사선과에서 만난 또다른 여의사는 어떻게 이 상황을 감당 하냐며 종교가 무엇인지 물었다. ‘천주교’라는 A씨의 대답에 그 의사도 그렇다고 했다. 문 앞에서 그녀는 손을 꼭 잡으며 “우리 그분에게 희망을 걸어봅시다”라고 했다. A씨는 그 응원에 감격했고 힘을 얻었다. 현대인들은 병에 걸리면 의학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의학은 질병의 원인과 징후를 짚어줄 수 있지만, 질병을 겪고 있는 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개념을 넘어서 인간의 몸과 정신, 영혼이라는 전인적인 차원에서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 병자성사는 병고를 이겨내는데 필요한 성령의 특별한 선물인 위로와 평화 그리고 용기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 병자성사를 받는다고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고, 죽어가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성사로 병자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에 일어난 일을 하느님께 맡기며,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치유되고 또 치유될 수 없는 것은 수용하게 된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아픈 이와 가족들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병자성사는 병원에서만 받을 수 있다?

 

‘제가 다시 수술실을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 감사합니다.’ B씨는 검사결과를 듣고도 담담했다. 그러나 수술 날짜가 잡히자 온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했다. 일부러 집안일도 해보고 가족들에게도 웃어보였지만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수술을 받으러 가기 전, 본당에서 병자성사를 받았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비로우신 사랑과 기름 바르는 이 거룩한 예식으로 성령의 은총을 베푸시어 이 병자를 도와주소서. 또한 이 병자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구원해 주시며 자비로이 그 병고도 가볍게 해주소서”(병자성사 예식서). 그녀는 입원하는 아침 가방에 짐을 챙기며 다시 한번 감사기도를 바쳤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B씨의 경우처럼, 준비된 상태에서 병자성사를 받는 경우는 행운이다. 대부분 질병으로 위급한 상황도 있겠지만, 보호자들이 병자에게 충격을 줄까 혹은 병자성사에 대해 알지 못해 의식불명의 상태까지 미루는 경우도 있다. 원목실이 있는 병원이라면 응급상황에서 원목사제가 찾아와 성사를 줄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의식 있는 상황에서 본당 공동체 안에서 병자성사를 받는다면 더 커다란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16’(CBCK)에 따르면 병자성사는 전년 대비 12.7% 증가한 2만 399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이 지난 20년간의 통계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60대 이상 환자 수가 두드러지게 늘었고 80세 이상 환자도 10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최근에는 스트레스가 많은 20~30대까지 질병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국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질병에 걸린 이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결코 내버려두시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낫게 하는 주님이다”(탈출 15,26).

 

[외침, 2017년 9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이지원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