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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품성사] 신품성사, 그 상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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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호식 [ jpatrick ] 작성일2009-07-02

[전례와 상징] 신품성사, 그 상징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인류의 구원 성업 과정에 나타난 명칭이 여러 가지다.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은 영(靈)의 소유자요 선지자이며, 파견된 자요 파견자이며, 봉사자요 봉사하기 위해 불리운 자이다. 더불어 거룩한 하느님이요 전례 집전자요 계약의 중재자요 제단이요 사제, 어린 양, 봉헌자, 희생 제물, 유일하고 마지막인 대사제, 하늘과 땅의 모든 주권을 가진 자, 다윗의 아들, 예언자, 인자(人子), 착한 목자, 이스라엘의 왕, 하느님의 아들, 참된 증인, 인류 구원자, 메시아, 구세주 등이다.

 

이런 여러 호칭은 예언자, 목자, 사제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고 그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예언직, 왕직, 사제직이라 표현한다. 예언자로서의 복음 전파, 목자로서 죽기까지 희생하여 제물이요 사제로서 모습을 보이면서 인류 구원의 목표를 세웠다. 부활과 승천에서 보여준 생과 사, 현세와 영원의 주권자로서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을 파견하고 복음 전파를 계속하도록 하면서 여전히 스승이요 목자요 사제로서 현존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냅니다”(요한 17,18). 이러한 제자의 파견은 단지 위탁일 뿐 아니라 성화(聖化)와 축성(祝聖)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신품성사는 교회에서 세 가지 교계적(敎階的) 단계 또는 품(品 : ordo)으로 구별, 주교품, 신품, 부제품을 두고 있다. 본래의 품 즉 온전하고 포괄적인 품은 주교품이다. 두번째 단계의 품을 신품이라 하고 그 다음 단계를 부제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구세 사업을 위한 위임과 역할의 차이이지 품이나 축복에 차별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세 단계는 하나의 신품성사로서 성사적 품위는 동일하다. 따라서 서품 예식 순서도 각 품의 직책에 따른 예절과 상징이 조금 다를 뿐 거의 동일하다.

 

주교품에서의 색다른 상징적 요소는 반지와 주교관, 지팡이의 전달과 주교좌(座)에 인도함이다. 반지는 신의의 표시이다. 하느님을 신랑이라 하면 교회는 신부이다. 반지는 신부인 교회를 수호하겠다는 약속의 표시다. 옛날엔 권위의 상징으로 보아 무릎꿇고 친구하기도 하였지만, 현대에는 계약의 상징이요 사랑의 상징으로 본다.

 

 

주교관

 

주교관(mitra)은 옛 예절책에서 방어와 구원의 투구라고 설명하였지만 지금은 아무 말 없이 전달한다. 이 관은 전례 집전자로서의 권위의 상징으로 뚜렷한 식별 표시가 된다.

 

 

주교의 지팡이

 

바오로 사도의 고별 연설(사도 20,28)에 근거한 말씀으로 주교 서품자에게 지팡이를 전달한다. “사목직의 표지로 지팡이를 받고, 양무리 전체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성신께서 친히 하느님의 교회를 다스리도록 당신을 주교로 선정하셨습니다.”

 

 

주교좌

 

전례 거행 중 앉을 주교의 자리를 뜻한다. 그리고 이 주교좌가 있는 성당을 주교좌 성당이라고 한다.

 

 

사제 서품식의 순서와 상징

 

복음 낭독과 강론 후 사제 서품식이 시작되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서품자 호명, 주교님의 훈계 말씀, 순명서약, 모든 성인들의 호칭기도, 안수와 축성기도, 제의 입힘, 손의 축성, 빵과 포도주의 전달.

 

 

평화의 친구

 

서품 예정자들은 개두보, 장백의, 띠, 영대를 준비하여 들고 호명을 하면 ‘예,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한 후 주교 앞에 나온다. 사제품을 받기에 합당한지 신자들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들은 후 주교는 그리스도의 도움에 따라 사제품을 수여한다.

 

서품자들은 원의와 주교의 질문에 따라 사목직, 사제직, 예언직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주교의 손에 놓아 존경과 순명을 약속한다. 이런 동작은 중세 봉건주의 하에서 봉토(封土)를 받는 신하가 자기 군주의 손에 두 손을 잡히고 충성과 복종을 서약한 데서 유래한다.

 

 

땅에 엎드림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를 할 때 서품자들이 제대 앞에 머리를 숙이고 바닥에 엎드린다. 주교와 신자들은 무릎을 꿇는다. 땅에 엎드리거나 무릎을 꿇는 것은 기도할 때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예수님도 게쎄마니 동산에서 “땅에 엎드려 기도하셨다”(마르 14,35; 루가 22,41 참조). 이 동작은 인간이 하느님께 대하여 얼마나 미소하고 비천한지를 드러낸다. 옛부터 겸손의 표시로서 취한 이 동작은 서구에서 제대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는 형태로 이어졌다. 특히 성 금요일 십자가 현양 때 무릎을 꿇었다. 성 금요일 예절의 시작에 오랫 동안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풍습이 있었다. 서품자들은 ‘재요 먼지요, 무(無)’라는 의식을 하느님과 교회 앞에 드러낸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집을 높이 지을 수록 그만큼 기초도 깊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서품자의 높이와 품위의 기초는 겸손과 비움, 무사(無私)이다.

 

 

주교의 안수

 

모든 성인의 호칭기도와 주교의 기도가 끝나면 주교는 서품자들 머리에 아무 말 없이 안수한다. 그리고 동석한 모든 사제들도 안수한다. 안수는 능력과 권력과 권리와 자격을 수여하는 상징이다. 구약성서에는 장자의 상속, 육체의 건강 기원, 직권의 양도, 죄의 이전에 안수가 사용되었고 신약성서에도 성령의 수여(사도 8,17), 직위 수여(사도 6,6), 병자 치유(사도 28,8), 축복(마태 19,13)을 위해 안수하였다. 신품성사 때의 안수는 성령 수여, 축복의 기원을 뜻한다. 하느님의 소유 또는 받아들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오로 사도는 “그대가 선물로 받은 그 거룩한 직무 곧 원로들이 그대에게 안수하며 예언해 준 말씀을 통해서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를 등한히 하지 마시오”(디모 4,14)하고 권고하였다. 참여한 모든 사제들이 안수하는 것은 신품이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고 전체 교회의 지도요, 축복이요, 결속임을 표시한다. “홀로 있는 자에게 앙화”란 유명한 경구가 있다. 신부는 신부들과의 유대 관계, 연수회, 피정을 통하여 새 힘을 얻는다.

 

 

제의 예식

 

서품자의 품위는 제의를 입어야 더 높아진다. 제의는 주교가 아니라 새 신부의 본당신부나 다른 신부가 입혀 준다. 구약 시대부터 제관은 특별한 예복을 입었다. 예복은 타인과의 구별이고 자신의 일상 생활과도 떠나서 제사의 거룩함과 위대함을 나타낸다. 일종의 인격 쇄신이다. 따라서 제의는 모두를 포함하고, 품고, 보호하고 덮어주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손에 성유 바름

 

전례 개혁에 따라 주교는 새 사제의 손에 예비자 성유가 아닌 크리스마 성유를 바른다. 중세기 초에 이미 이 성유를 사용하였으나, 1300년대에 예비자 성유를 사용하였다. 그 이유는 주교품을 위하여서만 크리스마 성유를 사용하도록 유보시킨 데서 나왔다. 이제 성유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표지이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가 4,18). 손의 성유 바름은 성신 강림의 은혜와 근원인 대사제 그리스도를 연상케 한다. 영원한 대사제의 관점을 시편은 노래하며 가르쳐준다. “너는 멜키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시편 110).

 

 

성반과 성작의 전달

 

거룩한 미사를 위해 이를 전달함은 사제에게 의미 깊은 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 시대로부터 교황 비오 12세까지 신품성사의 중요한 행위이다. 새 전례에서는 실제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그대는 하느님께 바칠 거룩한 백성의 제물을 받으십시오.” 새 사제는 이제 주교와 더불어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제물을 봉헌한다. 사제를 통하여 교회는 제물인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며 그리스도의 기념 축제를 지낸다. 그 안에 그리스도는 현존하신다. 성반과 성작을 전달하면서 주교의 훈계가 따른다. “행할 바를 깨닫고 다룰 바를 본받으며, 그대의 일상 생활로 주님의 십자가 신비를 닮도록 하십시오.” 미사 성제와 희생 정신을 사제 생활로 삼도록 가르친 첫 교황은 대 그레고리오였다.

 

 

평화의 인사

 

사도 시대로부터 입맞춤의 인사로 세례받은 신자 공동체는 형제적 사랑을 표현하였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로마 16,16). 2세기경 제헌 미사를 시작할 적에 평화의 인사가 있었다. 주교는 새 사제들을 포용하며 평화의 표시를 준다.

 

[경향잡지, 1988년 7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대전 선화동본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