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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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2일 금요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 카시아의 성녀 리타 수도자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하느님, 날 구하소서.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알렐루야.)
찬미가
이날은 주님의날 참된날이니
거룩한 광명으로 찬란하도다
거룩한 주님피로 세상을씻어
부끄런 세상의죄 사라졌도다

실망한 사람에게 믿음을주고
못보는 사람에게 시력을주며
강도의 흉한죄도 사하셨으니
그어떤 공포인들 남아있으랴

주님의 십자가상 고통을보고
흉악한 죄인마저 매달려비니
생명의 복받음을 지켜보고는
하늘의 천사들도 놀라워하네

더러운 세상의때 씻어주시고
만백성 저지른죄 없애시려고
사람이 사람허물 씻어주시니
더없이 놀랍고도 신비롭도다

죄악이 주님은총 찾아헤매고
사랑이 두려움을 풀어없애며
죽음이 새생명을 되찾아주니
이보다 더귀한일 어디있으랴

예수여 파스카기쁨 마음속깊이
언제나 변함없이 남게하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난우리
승리의 깃발아래 모아주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빛나시오니
예수여 크신영광 받으옵소서
성부와 위로자신 성령과함께
영원히 무궁토록 받으옵소서. 아멘.

또는 부활 팔일축제 후 평일에 다음 찬미가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드높은 하늘이여 기뻐하여라
땅이며 바다들아 손뼉을쳐라
주예수 죽으신후 부활하시어
죽게된 사람에게 생명주셨네

이제는 은총의때 되돌아오고
구원의 새아침이 밝아오나니
어둠속 갇혀있던 인간세상이
어린양 흘린피로 빛을발하네

한죽음 죽음에게 멸망을주고
세상죄 남김없이 사해주시니
주님의 능력만은 손상없기에
참혹히 지시고도 승리하셨네

우리게 기쁜희망 주어졌으니
우리도 훗날에는 부활하여서
행복에 넘친생활 하게되리라
조금도 의심없이 믿게되었네

이처럼 많은은총 우리게주는
영광된 주님부활 기뻐들하며
풍요한 은총선물 가득받고서
모두다 마음모아 경축하세나

예수여 파스카기쁨 마음속깊이
언제나 변함없이 남게하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난우리
승리의 깃발아래 모아주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빛나시오니
예수여 크신영광 받으옵소서
성부와 위로자신 성령과함께
영원히 무궁토록 받으옵소서. 아멘.
시편기도
후렴1주여,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

2 주여 성내심으로 나를 꾸짖지 마옵시고 *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3 당신의 화살이 내게 박혀 있삽고 *
당신의 손이 짓누르고 계시기에,

4 내 살은 당신 진노 앞에 성한 데 없고 *
내 뼈는 내 죄로 하여 온전한 데가 전혀 없나이다.

5 진정 내 잘못은 내 머리 위 훨씬 넘어 있어 *
무거운 짐처럼 모질게 억누르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1주여, 진노하심으로 나를 벌하지 마옵소서.
후렴2주여, 내 모든 소원이 당신 앞에 있나이다. 알렐루야.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I

6 상처는 썩어서 악취를 뿜으오니 *
내 미련한 탓이오이다.

7 나는 축 늘어져 허리가 굽은 채로 *
진종일 슬픔 속에 지내나이다.

8 허리는 열기에 가득 차 있사오며 *
살은 성한 데가 도무지 없나이다.

9 나는 까라지고 아주 으스러지고 *
애끓는 마음에서 소리는 터져 나오나이다.

10 주여 내 모든 절원이 당신 앞에 있사오며 *
나의 비탄을 당신이 아시나이다.

11 심장은 뛰고 기운은 없어지고 *
이 몸의 안총마저 흐려져 있나이다.

12 벗들과 동무들이 내 상처를 멀리하고 *
근친조차 먼 발치에 서 있나이다.

13 내 목숨을 노리는 자 올무를 놓고 +
나를 해치려는 자 욕을 퍼부으며 *
언제나 간계를 꾸미고 있삽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2주여, 내 모든 소원이 당신 앞에 있나이다. 알렐루야.
후렴3나는 내 잘못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내 구원이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알렐루야.
시편 37(38)
괴롭고 뉘우치는 죄인의 기도
모두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 보고 있었다(루가 23,49).

III

14 귀머거리처럼 나는 듣지 못하오며 *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하나이다.

15 듣지를 못하는 사람처럼 *
입으로 대꾸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되어 버렸나이다.

16 주님 당신만을 믿사오니 *
내 주 하느님이여 당신은 들어주시리이다.

17 나의 말씀은 +
“저들이 나를 고소히 여기지 말고 *
내 다리가 휘청거려도 위세 부리지 말라는 것이오이다.”

18 사실 나는 다 넘어져 가고 *
고통은 줄곧 내 앞에 있나이다.

19 나는 내 잘못을 고백하고 *
죄 지은 탓으로 마음이 괴롭사오나,

20 까닭 없이 내게 맞서는 자들은 기세가 등등하며 *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은 수효가 많사오며,

21 선에 대한 갚음을 악으로 하는 그들은 *
선을 좇는 이 몸을 들볶나이다.

22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
내 주여 이 몸을 멀리하지 마옵소서.

23 주여 내 구원이시여 *
어서 나를 도와주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나는 내 잘못을 당신께 고백하오니, 내 구원이신 주여,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알렐루야.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써, 알렐루야,
우리에게 산 희망을 안겨 주셨도다. 알렐루야.
제1독서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에 의한 독서 3,11-17
형제들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여러분,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어온 계명의 말씀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그리고 우리가 카인처럼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카인은 악마의 자식으로서 자기 동생을 죽인 자입니다. 그가 동생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동생이 한 일은 옳은 일이었는데 자기가 한 일은 악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13 형제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더라도 이상히 여길 것 없습니다. 14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15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다 살인자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살인자는 결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습니다.

16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응송1요한 3,16. 14a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목숨을 내 놓으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도다. *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도다. 알렐루야.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도다.
우리도.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요한 복음 주해’에서 (Tract. 124,5. 7: CCL 36,685-687)
두 가지 생활
교회는 계시를 통해서 알려지고 권고된 두 가지 생활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는 신앙을 통한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을 직접 바라보는 생활입니다. 하나는 현재의 순례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삶의 생활입니다. 하나는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휴식의 생활입니다. 하나는 여정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본향에서 실현되는 생활입니다. 하나는 행위와 수고의 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관조라는 보상을 받는 생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첫번째 생활을 나타내 주고 사도 요한은 두번째 생활을 나타내 줍니다. 첫번째 생활은 지상에서 진보하여 이 세상 마지막까지 지속되고, 두번째 생활은 세말에 완성되고 후세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고, 반면 요한에게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말하자면 “베드로, 너는 잠시 동안 고통을 당하는 데 있어 나를 본받아 따라야 하고, 요한 너는 내가 영원한 축복을 가지고 올 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 좀더 상세히 말하자면, “완성을 지향하는 활동은 내 수난을 본받아 또 나를 따름으로 되는 것이고, 시작한 관조는 내가 올 때까지 지속되어야 하고 내가 올 때 완성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죽기까지 인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그러나 그분에 대한 완전한 지혜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 죽음의 땅에서는 세상의 고통을 겪고 저 생명의 땅에서는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그가 남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라는 말을 “남아 있다” 또는 “살아 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기다리다” 또는 “기대하다”라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하신 이 말씀은 지금 성취되지는 않고 다만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성취되겠다는 것을 뜻하고, 베드로에게 하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기대하는 것이 성취되려면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두 사도들을 지나치게 분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두 사도 모두에게서 실현되었고, 요한에게 하신 말씀도 두 사도에게 모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실제 신앙 생활을 보면 두 사람 모두 이 비천한 생활의 고통을 겪었고 또 후세 행복의 은혜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두 사도들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배인 거룩한 가톨릭 교회도 그러합니다. 온 교회는 내세의 기쁨을 이루려고 현세 생활의 유혹을 견디어 이겨 나가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각각 이 두 가지 생활을 나타내 주었습니다. 둘 다 신앙 안에 현세 생활을 거쳐 지나갔고 또 둘 다 영원한 행복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는 모든 사도들의 죄를 묶고 풀 권리를 받아 이 현세의 폭풍우 속에서 그들을 인도해 나갈 책임을 맡았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품에 머리를 기대어 모든 성도들에게 그 신비스러운 생명의 안식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묶고 푸는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닙니다. 온 성교회입니다. 태초부터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시었던 그 말씀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 일체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된 사람도 요한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주께서 오실 때까지 거울처럼 희미하게 들여다보고 하느님 나라에서 눈으로 직접 바라볼 그 신비들을 주님 품의 샘에서 마신 사람은 요한만이 아닙니다. 주님 친히 전세계로 복음을 전파하셨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그것을 마시도록 하셨습니다.
응송1베드 5,10; 2고린 4,14 참조
모든 은총의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우리를 불러 주셨도다. * 그분은 잠시 동안 고난을 받은 우리를 완전하게 해주시고, 든든히 세워 주시며, 흔들리지 않게 해주시리라. 알렐루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분은 예수와 더불어 우리도 다시 살리시리라.
그분은.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당신 성자의 거룩한 언약대로, 가는 곳마다 복음의 결실이 맺어지고, 진리의 증언대로 모든 사람이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 다음의 환호를 덧붙인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