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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기획: 일상 속에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2438 주호식 [jpatrick] 스크랩 2020-02-29

[사순 기획] 일상 속에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부모가 먼저 ‘스마트 쉼’ 모범적 실천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겠다는 의지가 중요하다.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세상이다. 눈을 뗄 수 없는 콘텐츠가 모바일 기기와 텔레비전 등을 통해 흘러나오고 먹는 방송을 보면 군침을 흘리며 꼭 먹을 것을 다짐한다. 일회용품 사용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지만, 그 편리함에 길들어 소비를 줄이기 힘들고, 갖고 싶은 물건은 남들보다 싸게 사야 직성이 풀린다. 내 생각만이 옳고 그 의견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꼰대질’도 끊기 어려운 유혹 중 하나다.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광야에서 금식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참회와 절제, 자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신자의 도리다. 이번 사순은 다양한 절제와 비움을 주제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5회에 걸쳐 일상 속에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을 소개한다.

 

1. 스마트폰

2. 육식과 기호 식품

3. 에너지 절약, 일회용품

4. 소유욕

5.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기(꼰대질)

 


새로운 우상, 스마트폰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 간 김 스테파노(47)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버스 도착 시각을 확인한다. 이어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앱을 통해 음악을 감상하고, 버스에 올라 좌석에 앉자마자 유튜브로 다양한 영상을 시청한다. 집까지 가는 시간은 1시간 남짓, 영상 시청이 지루하다 싶으면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운다.

 

집에 도착해서도 스마트폰 사랑은 식지 않는다. 김씨가 스마트폰을 보는 사이 중학생과 초등학생 자녀도 저마다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게임 등을 한다. 식사 후에도 손에서 쉽사리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보던 김씨가 “또 이렇게 하루가 가겠구나”라는 생각에 자녀들에게 호통을 쳐보지만, 그것도 잠시, 김씨나 자녀들 역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뭘 해야 할지 몰라 초조한 눈치다.

 

한 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 10명 중 9명은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심지어 보행 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는 이들도 있다. 새로운 우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각종 수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2만 8592명)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과의존’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특히,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부모가 자녀의 스마트폰 중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지목됐다. 부모가 과의존 위험군인 경우에는 유·아동의 36.9%, 청소년의 67.5%가 과의존 위험군으로 나왔다. 문제는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지고 스마트폰 중독임을 인정해도 끊기가 쉽지 않다.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장 김민수(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신부는 “부모가 어린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시키고 책 읽는 습관을 심어줘야 한다”며 “더 나아가 신앙 안에 어떻게 스마트 쉼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평협(회장 손병선)은 신자들의 스마트폰 쉼을 돕고자 2020년 사순 묵상 수첩 ‘하느님 안에서 쉼’을 발간했다. 부모가 먼저 ‘스마트 쉼’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녀 스스로 스마트폰 사용 계획과 규칙을 만들도록 도울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어 △ 잠자리에서 스마트폰 사용하지 않기 △ 2세 이하 영유아에게 절대로 스마트폰 주지 않기 △ 스마트폰을 끄고 묵주기도 5단 바치기 등을 실천 사항으로 제시했다. 청소년 실천 사항으로는 △ 이동 중에 스마트폰 보지 않기 △ 목적이 있는 경우에만 메신저를 이용하고 알림 기능 끄기 등을 꼽았다.

 

김 신부는 “파견된 제자들이 자신의 활동 보고를 마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마르 6,31)’라고 말씀하셨다”며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내가 어떤 삶을 사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일, 백영민 기자]

 

 

[사순 기획]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 2. 육식과 기호식품


금육, 주님 수난에 동참하는 신앙 행위

 

 

사순 시기 금요일 저녁 서울 대학가. 중ㆍ고등부 교리교사 출신 청년들이 오랜만에 모여 삼겹살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한 청년이 “교리교사까지 했는데 금요일에 고기 먹기가 좀 그러네!”라고 말을 하자 다른 청년이 “요즘 누가 금육재를 지켜. 불타는 금요일 주(酒)님을 모시면서 주(主)님 수난에 동참해야지”라고 응답한다.

 

금요일 하면 언제부턴가 금육보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먼저 떠오르게 됐다. 더욱이 ‘고기가 진리다’ 라고 말하며 뭘 먹을까 고민하는 이들에게 매주 금요일 지키는 ‘금육재’라는 단어는 그저 분위기 깨는 소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금육재는 단순히 고기를 먹고 안 먹는 문제가 아니다. 금육재는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고 극기와 보속으로 예수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하는 신앙 행위다. 더욱이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들에게 빼앗긴 마음을 되찾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못 먹던 시절에야 고기가 금육재의 상징이 됐지만, 모든 게 풍족한 현대에는 고기는 물론 술과 담배, 커피 등 기호 식품도 금육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절제가 회개의 한 징표인 셈이다.

 

보편 교회는 모든 신자는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자신과 이웃들의 각종 죄악을 보속하는 정신으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연중 모든 금요일과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은 참회와 고행의 날인 셈이다. 한국 교회에서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 지침서」 136조, 「교회법」 제1250-1253조 참조)

 

누군가는 “회식이 많은 금요일에 금육은 불가능하다”고 반론할 수 있다. 교회는 명절 기간 금육과 금식을 관면하는 사목적 배려를 하지만 금요일 회식 자리 전 본당 사제에게 전화해 부득이하게 고기와 술을 마셔야 하니 관면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절제와 희생을 넓은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당장 오늘은 지키지 못해도 다른 날 꼭 지키겠다”는 결심과 실천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또 한국 주교회의는 금육재와 금식재를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다른 형태, 즉 참회와 고행, 애덕 실천, 신심 수련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환경적 측면에서 바라봐도 금육재는 지구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1.3㎏으로 소비량이 해마다 증가한다. 세계에서 생산되는 밀과 보리의 절반이, 옥수수는 80%가 가축 사료로 쓰인다. 더 많은 가축용 곡식을 재배하는 순환고리가 이어진다. 소고기 0.9㎏ 만드는데 6.8㎏ 넘는 곡물과 1만 8000ℓ(사료용 곡물 생산분 포함)의 물이 필요하다. 더욱이 가축은 인간보다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며, 그 양은 온실가스의 14~22%를 차지한다.(「찬미받으소서」 해설집 「공동의 집」 중)

 

사순 제2주가 시작됐다. 예능인들이 자주 쓰는 “지나간 한 끼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손들고 반박하고 싶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며 이웃에게 양보한 지나간 한 끼는 하늘에 쌓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8일, 백영민 기자]

 

 

[사순 기획]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 3. 에너지와 일회용품


나는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지 않는가

 

 

- 파도에 떠밀려 온 플라스틱 등 각종 쓰레기들이 바닷가를 뒤덮었다. [CNS 자료 사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인접촉을 꺼리면서 외적이요 사회적이기도 해야 하는 사순 시기 보속(「전례 헌장」 제110항 참조) 실천이 쉽지 않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람 접촉을 자제하면서 실천할 수 있는 에너지와 일회용품 단식을 사순 보속으로 실천하기 제격인 시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안락함과 편안함의 대가는 인류 공동의 집 지구가 부담한다.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소가 추가로 지어지고 대도시로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탑에 산림 곳곳이 멍들었다. 무분별한 물 사용에 하천과 바다 생태계가 시름하고, 과도한 종이류 사용에 벌목하는 전기톱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약탈적 소비를 수치로 환산하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대한민국의 경우 1인당 연간 전기 사용량은 10.2MWh (한국전력공사, 2018)이고 1인당 하루 물 사용량은 282ℓ다. 1인당 하루에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929.9g(환경부 제5차 전국폐기물 통계조사, 2018)이고 1인당 종이컵 사용량은 하루 1.4개꼴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나오는 폐마스크도 한몫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환경 악화에 대한 메시지가 선의의 모든 사람”(3항)을 대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세상을 보호하고 증진하려는 모든 노력은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의 양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5항)고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인간은 누구나 환경 악화에 책임을 지고 이를 막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실천이 어렵지는 않다. 에너지와 물 사용을 줄이고, 플라스틱과 종이 사용을 피하고, 쓰레기를 제대로 분리수거하고, 적당히 먹을 만큼 요리하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더 나아가 생산에 과도한 에너지가 필요한 제품과 재활용이 어려운 재질로 포장된 제품은 구매 자체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개개인의 노력이 더해지면 정부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더 엄격한 규정을 내놓을 것이며 기업도 더 친환경적인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고민할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처럼 가정에서 자녀에 대한 환경 교육도 중요하다. 한국전쟁 전후 태어난 세대는 습관적으로 에너지 절약을 강조했다. 자녀들은 빈 방의 전등을 끄고 수돗물도 아껴쓰라는 부모의 말을 귀에 못이 박일 만큼 듣고 자랐다.

 

타임지 선정 ‘2019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 스웨덴)는 2018년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각국의 대표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자. 에너지와 일회용품을 덜 쓰기 위한 노력이 쌓여 결실을 볼 때 앞으로 태어날 세대들은 지구 상에서 멸종한 일회용품을 책에서 보는 날이 올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5일, 백영민 기자]

 

 

[사순 기획]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 4. 소유욕


“주님, 이 물건이 제게 꼭 필요한 걸까요?”

 

 

얼마 전 이사를 마친 한 아녜스(51)씨는 이사를 앞두고 몇 주에 걸쳐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느라 곤욕을 치렀다. 안 쓰는 주방용품부터 유행이 지난 옷가지, 한 번 읽고 책꽂이에 꽂혀 먼지만 쌓인 책, 홈쇼핑에서 샀던 물건을 모아보니 그 양이 작은 트럭 한 대 분량은 될 법했다. 그중에는 ‘왜 이런 쓰지도 않을 물건을 샀을까?’ 고민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예쁜 성물을 모으는 게 생활의 작은 기쁨이었던 오 데레사(69)씨도 오래된 취미 생활을 접었다. 성물을 볼 때마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리라 성물을 모았지만 잘하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같은 기능을 가진 물건을 몇 개씩 사서 내버려두거나 일시적 충동으로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사들이는 행위는 문제다. 교회의 사회적 문헌은 “더 잘 살기를 원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존재보다는 소유로 향할 때, 향락을 목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할 때, 이것을 나은 것이라고 여기는 생활 양식이 잘못된 것”(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백주년」 36항 참조)이라고 가르친다. 물건의 본래 쓰임새를 위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사들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도 세상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금하는 명령이다. 그리스도인이 가진 재화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재화를 사용한다면 재화 본연의 목적 중 하나인 이웃을 돕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는 사라진다. 내가 쓰고 남는 것으로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한 것을 절제하여 이웃을 도와야 한다.

 

지난해 한 공영방송에서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카르투시오 봉쇄수도원의 일상이 방영됐다. 수도자들의 삶에서 소유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수도자들은 스스로 선택한 가난 속에서 고독과 침묵을 지키며 기도하고 노동했다. 세상과 동떨어져 오직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수도자의 삶을 보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봤다고 한다. 풍족한 세상 사람들이 소유에 대한 갈증만큼 무소유에 대한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물건을 줄이고 최소한의 것으로 살아가자는 ‘미니멀 라이프’ 바람이 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물건을 안 살 수 없다. 하지만 사순 기간만큼은 소유욕을 잠시 내려놓고 주님 수난에 동참하자.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고민한다면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내 안에 계신 주님께 여쭤보자. “주님, 이 물건이 제게 꼭 필요한 걸까요?” 답을 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주님이 부르시는 날 우리가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2일, 백영민 기자]

 

 

[사순 기획]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절제와 비움 - 5·끝.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기(꼰대질)


상대 입장 상관없이 자기 말만 하나요?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꼰대’라고 불리는 이들에게는 더 어렵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나이가 어리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낡은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시대착오적 말을 늘어놓는 행위’다. 상대의 입장은 상관없이 내 이야기만 하는, 한마디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꼰대는 젊은 세대에게 혐오의 대상이다. 꼰대가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을 소리 나는 대로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로 쓰며 비꼬기도 한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19년 9월에 오늘의 단어로 꼰대를 선정해 한국의 꼰대 문화를 상세하게 보도하는 낯 뜨거운 일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나 지위를 앞세워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행위는 유치원생에게서도 나타난다.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상대의 이름을 묻기 전에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너 몇 살이야?” 어쩌면 위계질서와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는 사회 특성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에 나온 ‘직장인 꼰대 체크리스트’ 중 일부를 추렸다. 후배 사원을 성당 활동에서 만난 동생이나 며느리로, 회식을 성당 모임이나 가족 모임 등으로 바꿔 ‘나는 여기에 몇 개나 해당하나?’ 살펴보자. 임 작가는 해당 사항이 1개라도 있다면 꼰대 기질이 있다고 말한다.

 

△ 윗사람의 말에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회사 생활의 지혜이다 △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 사원이 거슬린다 △ 회식 때 후배가 알아서 수저를 세팅하지 않거나, 고기를 굽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 △ 어린 녀석이 뭘 알아 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는 말에 동의한다 △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 △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화가 난다 △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성인(聖人)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꼰대 테스트라는 바늘귀를 통과하겠는가. 나이를 먹는 것도 서러운데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꼰대는 나이나 지위를 떠나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입장만 늘어놓는 사람이다. 실제로 젊은 꼰대도 얼마나 많은가.

 

송차선 신부는 저서 「곱게 늙기」에서 행복한 나이 듦의 지혜를 전한다. 상대를 대함에 있어 개방·경청·양보·겸손·관심·미소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물을 참으로 존재하는 그대로 보고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은, 삶의 깊은 곳까지 다다를 수 있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6 참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과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것이 꼰대 탈출의 지름길이자 성덕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29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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