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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 영원한 행복에 초대받았지만, 죄 때문에 상처 입은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인도하는 법을 통하여 그리고 인간을 지탱해 주는 은총을 통하여 주어진다.
  •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하느님은 당신 호의에 따라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시어, 의지를 일으키시고 그것을 실천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필리 2,12-13).
  • 제1절 도덕률
  • 1950 도덕률은 하느님의 지혜의 작품이다. 성서적 의미에서 도덕률은 하느님의 자애로운 가르침, 그분의 교육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도덕률은 약속된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과 행동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해 주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사랑에서 벗어나게 하는 악의 길을 피하라고 가르친다. 도덕률의 규범은 엄격하지만, 그것이 약속하는 바는 감미롭다.
  • 1951 법은 자격이 있는 권위가 공동선을 위해 공포한 행동 규칙이다. 도덕률은 인간들 사이에, 그들의 선익을 위해 또 그들의 목적에 비추어, 창조주의 권능과 지혜와 선으로 세워진 합리적 질서를 전제로 한다. 모든 법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진리는 ‘영원법’에서 비롯한다. 법이란 만민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이성은 선언하고 확증한다. “이성이 내리는 이러한 규정을 바로 법이라 한다.”(1)
  • 살아 있는 존재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에게서 법을 받을 만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식별할 능력이 있는 이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은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분께 기꺼이 복종하면서 그의 자유와 이성을 사용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해야 합니다.(2)
  • 1952 도덕률은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이 표현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어 있다. 모든 법의 근원이며 하느님 안에 있는 영원법, 자연법, 옛 율법과 복음이라고 하는 새 율법을 포함한 계시된 법, 그리고 국법과 교회법 등이 그러하다.
  • 1953 도덕률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해지고 하나로 통합된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완덕에 이르는 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분은 법의 마침이시다. “사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이십니다. 믿는 이는 누구나 의로움을 얻게 하십니다”(로마 10,4).
  • I. 자연법
  • 1954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간에게 선과 악이 무엇이며, 진리와 거짓이 무엇인지를 이성으로써 식별할 수 있게 하는 타고난 도덕의식의 표현이다.
  • 자연법은 모든 인간 개개인의 마음에 적혀 있고 새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을 행하도록 명하고 죄짓는 것을 금하는 인간의 이성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인간 이성의 이러한 명령도, 그것이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자유가 복종해야 하는 더 높은 이성의 목소리이자 또한 해석자가 아니라면, 법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못할 것입니다.(3)
  • 1955 하느님 법[神法]인 자연법은(4) 인간이 선을 행하고 자신의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따라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자연법은 도덕 생활을 규제하는 기본적이며 가장 중요한 규범들을 표명하고 있다. 자연법의 주축은 모든 선의 원천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느님에 대한 열망과 복종이며, 타인을 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는 의식이다. 자연법의 주요한 규정들은 십계명에 제시되어 있다. 이 법을 자연법(lex naturalis)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비이성적인 존재들의 본성과 연관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법을 규정하는 이성이 인간 본성(natura)에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규칙들이 ‘진리’라고 하는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지 않고, 도대체 다른 어디에 씌어 있겠는가- 모든 정의로운 법은 그 빛의 책에 씌어 있으며, 거기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건너간다. 법이 사람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인장(印章)이 마치 반지에서 밀랍으로 건너가는 것 같아도 그대로 반지에 남아 있듯이 법은 인간 안에 새겨지는 것이다.(5)
  • 자연법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넣어 주신 지성의 빛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빛을 통해서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한다. 이 빛, 곧 이 법은 하느님께서 창조 때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6)
  • 1956 자연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으며, 각자의 이성으로 확증된다. 자연법은 그 규정들에서 보편적이며, 그 권위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자연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나타내고,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가 된다.
  • 참된 법이 있으니, 그 법은 올바른 이성이다. 이 법은 인간 본성에 부합하며,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 이 법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그 규정은 의무감을 촉구하고, 그 금지령은 과오를 방지한다. ……이 법은 변질시켜서도 아니 되고, 그 일부를 폐지해서도 아니 된다. 이 법을 완전히 폐기할 수 없다.(7)
  • 1957 자연법은 매우 다양하게 적용된다. 자연법은 장소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생활 조건들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가 다양함에도 자연법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 주고, 피할 수 없는 차이점들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에게 공통 원칙들을 제시하는 기준으로 남아 있다.
  • 1958 자연법은 불변하고 역사의 변동을 거치면서도 그대로이다.(8) 사상과 풍속의 흐름 속에서도 존속하며, 그 사상과 풍속의 진보를 뒷받침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한 채로 남아 있다. 설령 자연법의 원칙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그것을 파기할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자연법은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안에서 언제나 되살아난다.
  • 주님, 당신의 법이, 죄악으로도 말살할 수 없는 인간 마음에 쓰인 법이, 도둑질을 처벌한다는 것은 틀림없사옵니다.(9)
  • 1959 창조주의 매우 훌륭한 작품인 자연법은, 인간의 선택을 이끄는 도덕규범의 체계를 세울 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된다. 또 자연법은 인간 공동체들을 건설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도덕적 기초가 된다. 결국, 자연법은 국법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국법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국법은 자연법의 원칙들을 살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자연법에 실질적이거나 법률적인 요소들을 더하기도 한다.
  • 1960 모든 사람이 자연법의 규범들을 분명하게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어렵지 않게,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을 가지고, 오류의 혼동 없이”(10)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진리들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죄인인 인간에게 은총과 계시가 필요하다. 자연법은 성령의 활동에 따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토대를 계시된 법과 은총에 제공해 준다.
  • II. 옛 법
  • 1961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시어 그들에게 당신의 법을 계시해 주셨으며, 이로써 그리스도의 강생을 준비하셨다. 모세의 율법은 이성으로써 자연스럽게 감지할 수 있는 여러 진리들을 표현하고 있는데, 이 진리들은 구원의 계약 안에서 공포되고 권위있게 확인되었다.
  • 1962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그 윤리적 명령들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소명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곧 그 계명들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어긋나는 것을 금하고, 그 사랑을 위한 기본적인 행실을 명하고 있다.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과 하느님의 길을 나타내 보이고, 인간을 악에서 보호하려고 모든 사람의 양심에 하느님께서 주신 빛이다.
  •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에서 읽지 못하던 그것을 율법의 돌 판에 새겨 주셨습니다.(11)
  • 1963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거룩하고,(12) 영적이며,(13) 좋은(14) 율법은 아직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후견인과 같이(15)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성령의 능력과 은총을 스스로 주지는 못했다. 율법은 죄를 없애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예속의 법이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율법은 특별히 사람의 마음속에서 “욕망의 법”을(16) 형성하고 있는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반면에 율법은 여전히 하늘 나라로 가는 길의 첫 단계이다. 율법은 선택된 민족과 모든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구세주이신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율법은 하느님 말씀으로서 영원히 지속되는 가르침을 제시해 준다.
  • 1964 옛 법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율법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교육이며 예언입니다.”(17)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실 해방의 업적을 예언하고 예고해 주었으며, 성령에 따르는 삶을 표현하기 위한 표상들과 ‘예형’과 상징들을 신약에 제공해 주었다. 끝으로, 율법은 지혜서들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으로 보충되어, 새 계약과 하늘 나라를 지향하게 된다.
  • 구약의 체제 아래서도, 사랑과 성령의 은총으로 가득 찬 사람들, 무엇보다도 먼저 영적이고 영원한 약속의 성취를 갈망하는 사람들이……있었다. 그러한 갈망 때문에 그들은 새 법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약 아래서도 역시 새 법의 완전성과는 아직 거리가 먼 육적인 사람들, 벌에 대한 두려움과 현세에 관한 약속들을 들려줌으로써 그 도덕적인 행실을 북돋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하여간 옛 법은 사랑을 명하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의 마음에 부어 주신”(로마 5,5) 성령의 은총을 주지는 못했다.(18)
  • III. 새 법, 곧 복음의 법
  • 1965 새 법, 곧 복음의 법은 자연법이거나 또는 계시된 법인 하느님의 법을 이 세상에서 완성한 것이다. 복음의 법은 그리스도의 업적이며, 특별히 산상 설교에 표현되어 있다. 복음의 법은 또한 성령의 업적이니, 성령을 통하여 이 법이 사랑의 내적인 법이 된다. “보라, 그날이 온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으리라.……나는 그들의 생각 속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리라.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히브 8,8.10).(19)
  • 1966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신자들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총이다. 이 법은 사랑을 통해 작용하고,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우리 주님의 산상 설교를 이용하며, 이를 행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에게 주려고 성사들을 활용한다.
  • 마태오 성인의 복음에서 읽게 되는, 우리 주님께서 설파하신 산상 설교를 경건한 마음과 통찰력으로 묵상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대헌장’을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설교에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도하기에 적합한 규범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20)
  • 1967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며,(21) 정화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참행복 안에서 복음의 법은 하느님의 약속을 성취한다. 약속은 한층 드높여져 하느님 나라를 향한 것으로 밝혀졌다. 복음의 법은 이러한 새 희망을 신앙으로 받아들일 마음을 지닌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를 향한 놀라운 길을 제시한다.
  • 1968 복음의 법은 율법의 계명들을 완성한다. 주님의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윤리적 규정들을 폐지하거나 과소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그 규정 안에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요구들을 분출하게 한다. 산상 설교는 옛 법의 신적이며 인간적인 진리를 모두 드러낸다. 산상 설교는 새로운 외적 규정을 첨가하지 않지만, 행동의 근원인 마음을 개선하도록 인간을 이끈다. 마음은 인간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중에서 선택하고,(22)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심화되며, 이러한 덕들과 더불어 다른 덕성들이 다져지는 본래의 자리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복음은 율법을 완성하여(23) 인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완전하심을 본받게 하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24)
  • 1969 새 법은 자선, 기도, 단식 등의 종교적 행위들을 실천하게 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행위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25) 향하게 하는 행위들인 것이다. 새 법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이다.(26)
  • 1970 복음의 법은 또한 ‘두 길’(27) 가운데에서 결정적인 선택을 하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할 것을(28) 명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29) 복음의 법은 이 황금률 안에 요약되어 있다.
  • 복음의 법 전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30) 예수님의 새 계명에(31) 들어 있다.
  • 1971 주님의 산상 설교에 사도들이 가르친 윤리적 교리 교육을 합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테면 로마 12─15장, 1코린 12─13장, 콜로 3─4장, 에페 4─5장 등이다. 이러한 교리는 주님의 가르침을 사도들의 권위로써 전달하는 것인데, 특별히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하여 성령의 주요한 선물인 사랑으로 힘을 얻는 덕들에 관한 설명의 경우가 그러하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로마 12,9-13). 이러한 교리 교육은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비추어 양심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32)
  • 1972 새 법은 두려움 때문에 행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성령께서 불어넣어 주시는 사랑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사랑의 법이라고 부른다. 또한 신앙과 성사들로써 행동하도록 은총의 힘을 주기 때문에 은총의 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새 법은 또한 자유의 법이라고도(33) 하는데, 이는 새 법이 의식적(儀式的)이고 법률 지상주의적인 율법 준수를 요구하던 옛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사랑의 자극을 받아 기꺼이 행동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마침내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는 종”의 신분에서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시어”(요한 15,15) 그리스도의 벗이라는 신분으로, 나아가 상속을 받을 아들의 신분으로(34) 우리를 드높여 주기 때문이다.
  • 1973 새 법에는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계명과 복음적 권고의 전통적 구별은 그리스도인 삶의 완성인 사랑과 관련지어서 정립된다. 계명은 사랑과 양립될 수 없는 것들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며, 권고는 사랑에 어긋나지는 않아도 사랑을 발전시키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는 것을 피하도록 하는 것이다.(35)
  • 1974 복음적 권고는, 더 많이 베풀어 주지 못하여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생생하고 충만한 사랑을 드러낸다. 복음적 권고는 사랑의 열정을 증언하고, 우리에게 영적으로 민첩한 자세를 갖추게 한다. 새 법의 완전성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으로써 이루어져 있다. 더 직접적인 길과 더 용이한 방법을 깨닫게 하는 복음적 권고들은 각 사람이 자기 소명에 따라 실천해야 할 것이다.
  • 하느님께서는 누구나 복음의 권고들을 모두 지키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다만 사랑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각 개인과 때와 기회와 능력의 다양성에 따라, 당사자에게 적합한 권고만이 지켜지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덕과 계명과 권고, 한마디로 모든 법과 그리스도인다운 행위의 여왕이 되는 사랑 그 자체가 그 모든 것에 자리와 순위, 때와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36)
  • 간추림
  • 1975 성경에 따르면, 율법은 사람들에게, 약속된 행복에 인도하는 길을 제시하고 악의 길을 금하는 하느님의 부성적 가르침이다.
  • 1976 “법은 한 공동체를 맡은 사람이 반포한, 공동선을 지향하는 이성의 명령이다.”(37)
  • 197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마침이시다.(38) 그리스도께서만 하느님의 정의를 가르치시고 베풀어 주신다.
  • 1978 창조주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자연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지혜와 선의에 참여한다. 자연법은 인격의 존엄성을 나타내며, 인간의 기본 권리와 의무들의 기초를 이룬다.
  • 1979 자연법은 불변하며, 역사 속에서 존속한다. 자연법을 표현하는 규범들은 근본적으로 유효하다. 자연법은 도덕규범 확립의 기초이며 국법의 필수적 토대이다.
  • 1980 옛 법은 계시된 법의 첫 단계이다. 옛 법의 윤리적인 명령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 1981 모세 율법에는 인간이 이성으로 자연히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진리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그 진리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것들을 계시해 주셨다.
  • 1982 옛 법은 복음을 위한 일종의 준비이다.
  • 1983 새 법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서, 이 은총은 사랑을 통해 작용한다. 새 법은 주님의 산상 설교 안에 표현되어 있고,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기 위해서 성사들을 활용한다.
  • 1984 복음의 법은 옛 법을 완성하고, 능가하며, 완전하게 한다. 곧 하늘 나라의 참행복으로 그 약속들을 성취하며, 인간 행위의 근원인 마음을 새롭게 해 줌으로써 그 계명들을 완성한다.
  • 1985 새 법은 사랑의 법이며, 은총의 법이고, 자유의 법이다.
  • 1986 새 법은 그 계명들 외에 복음적 권고들도 포함한다. “교회의 성덕은 특별한 방식으로 주님께서 복음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준수하도록 제시하신 여러 가지 권고로써 증진된다.”(39)
  • 제2절 은총과 의화
  • I. 의화
  • 1987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화(義化)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40)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41) 누리게 해 준다.
  •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시어 다시는 돌아가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죽음은 더 이상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합니다.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죄와 관련하여 단 한 번 돌아가신 것이고, 그분께서 사시는 것은 하느님을 위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자신도 죄에서는 죽었지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로마 6,8-11).
  • 1988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우리는 죄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고, 새 생명으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 우리는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며,(42) 참포도나무 곧 그리스도 자신의 가지들이다.(43)
  • 성령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하느님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나누어 받음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머물러 계시는 사람들은 하느님처럼 됩니다.…….(44)
  • 1989 성령의 은총이 작용하여 내는 첫 결실은 회개이다. 복음서의 첫 대목에 나오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하신 예수님의 선포에 따라, 회개는 우리를 의롭게 해 준다. 은총의 작용으로 인간은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멀어져 위로부터 오는 용서와 의화를 받아들인다. “의화는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45)
  • 1990 의화는 하느님 사랑을 거스르는 죄에서 인간을 풀어 주고, 인간의 마음을 죄에서 정화시켜 준다. 의화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베풀어 주신 용서에 뒤이어 이루어진다. 의화는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며, 죄의 예속에서 해방시키고, 치유해 준다.
  • 1991 이와 동시에, 의화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 사랑의 공정함을 가리킨다. 의화와 함께 믿음과 희망과 사랑도 우리의 마음 안에 스며들고, 우리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된다.
  • 1992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 의화는 당신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부합하게 한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46)
  •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이 죄들은 하느님께서 관용을 베푸실 때에 저질러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어, 당신께서 의로우신 분이며 또 예수님을 믿는 이를 의롭게 하시는 분임을 드러내십니다(로마 3,21-26).
  • 1993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협력 관계를 이룬다. 인간 편에서, 의화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동의 안에서, 그리고 그 동의에 앞서고 그것을 보전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사랑으로 협력하는 행위를 통해서 표현된다.
  • 하느님께서 성령의 비추심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실 때, 인간은 거절할 수도 있는 이 감동을 아무런 반응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인간은 그의 자유 의지로써 하느님 앞에서 의화를 향해 나설 수 없다.(47)
  • 1994 의화는 하느님 사랑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하느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며 성령을 통해 주어진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에 따르면, “불경한 사람의 의화는 하늘과 땅의 창조보다도 더 위대한 일”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겠지만, 선택된 사람들의 구원과 의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48) 때문이다. 그는 또한 죄인들의 의화는 천사들을 의롭게 창조한 일을 능가하며, 그것은 죄인의 의화가 더 큰 자비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1995 성령은 내적 생활의 스승이시다. “내적 인간”을(49) 태어나게 하는 의화는 인간 존재 전체의 성화에까지 미친다.
  • 나는 여러분이 지닌 육의 나약성 때문에 사람들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19.22).
  • II. 은총
  • 1996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된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50) 곧 양자가 되고(51) 신성(神性)과(52) 영원한 생명을(53)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 1997 은총은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참여이다. 곧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로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받는다. 그는 ‘양자’로서, 외아들과 결합되어, 이제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그에게 사랑을 불어넣어 주시고 교회를 이루시는 성령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 1998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이러한 부름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이 부름은 스스로 거저 베푸시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만 당신을 계시하시고 당신을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름은 인간 지성의 능력과 의지의 힘을 초월하며, 어떤 피조물의 능력과 힘도 초월한다.(54)
  • 1999 그리스도의 은총은 무상의 선물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聖化恩寵, 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神化恩寵, gratia deificans)이다. 이 은총은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된다.(55)
  •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2코린 5,17-18).
  • 2000 성화 은총은 사람이 하느님과 함께 살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그 사랑을 완전하게 하는 상존 은총(常存恩寵, gratia habitualis)이며, 지속적이고 초자연적인 성향이다. 이 성화 은총,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자 하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인 상존 은총은, 회개의 시작이나 성화 활동의 과정에서 하느님의 개입을 가리키는 조력 은총(助力恩寵, gratia actualis)과는 구별된다.
  •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하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원의(願意)를 일으키심으로써 일을 시작하시며, 우리의 의지에 협력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56)
  • 우리도 일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일하시는 하느님과 함께 일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앞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치유하고자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에 앞서 있고, 일단 치유가 된 뒤에는 활기를 주려고 우리의 뒤를 따르십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부름을 받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가 경건한 마음으로 살도록 우리를 앞서 있고, 우리가 영원히 하느님을 모시고 살도록 우리를 뒤따릅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57)
  • 2002 하느님의 자유로운 주도(主導)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습으로 창조하시고, 그에게 자유와 더불어, 당신을 알고 사랑할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유로울 때에만 사랑의 친교를 이룰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 감동시켜 주시고 직접 움직이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만 채워 주실 수 있는 진리와 선에 대한 갈망을 인간 안에 심어 주셨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은, 모든 기대 이상으로 그 갈망을 충족시킨다.
  • 당신께서 고요한 가운데 창조의 일을 하셨어도, 매우 좋은 그 일을 끝내신 뒤 이렛날에 안식을 취하셨다고 성경의 말씀이 말해 주는 것은, 당신께서 주셨기에 매우 좋은 일들을 한 뒤에 우리도 영원한 생명의 안식을 당신 안에서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58)
  • 2003 은총은 먼저, 그리고 주로 우리를 의롭고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의 선물이다. 그러나 은총에는 성령께서 우리를 당신 사업에 참여시키고, 우리를 다른 사람들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할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선물들도 포함된다. 이 선물들 중에는 각 성사의 고유한 은혜인 성사 은총도 있고, 바오로 사도가 사용한 그리스 말을 따라서 카리스마(charisma)라고 부르기도 하는 특별한 은총[特恩] 또는 은사들도 있다. 카리스마는 호의, 무상의 선물, 은혜를 의미한다.(59) 기적이나 이상한 언어의 은사와 같이 때로는 예외적인 그 은사의 성격이 어떻든 간에, 카리스마는 성화 은총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또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카리스마는 교회를 건설하는 사랑에 이바지하는 것이다.(60)
  • 2004 특은들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책임을 완수하고 교회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데 따르는 직분의 은총을 언급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언이면 믿음에 맞게 예언하고, 봉사면 봉사하는 데에 써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힘쓰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면 순수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사람이면 열성으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로마 12,6-8).
  • 2005 은총은 초자연적인 것이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감지되지 않으며, 신앙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 업적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다고 추론할 수 없다.(61) 그러나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마태 7,20)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우리 삶과 성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 은총이 우리 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보장도 받고, 우리가 갈수록 더 커져 가는 신앙과 신뢰하는 청빈의 태도를 지니도록 자극도 받는다.
  • 이러한 마음가짐의 가장 아름다운 예는, 교회의 재판관들이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 질문에 대해 잔 다르크 성녀가 한 답변에서 볼 수 있다. “잔 다르크 성녀는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 중에 있음을 아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저를 은총의 상태에 두시기를 바라며, 만일 제가 은총 중에 있다면 저를 그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62)
  • III. 공로
  • 아버지께서는 성인들 가운데서 찬미를 받으시며 그들의 공로를 갚아 주시어 주님의 은총을 빛내시나이다.63)
  • 2006 일반적으로, ‘공로’(meritum)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것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악행일 때는 벌이 주어진다.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공평에 상응하는 것이다.
  • 2007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창조주께 받았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 2008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공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은총에 협력하도록 자유로이 안배하셨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느님의 어버이다운 활동은 인간을 감도하심으로써 시작되며, 반면에 협력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실은 그 뒤를 잇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다음으로 신앙인에게 돌려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공로 자체도 당연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데, 인간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주도와 도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2009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시켜 주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참된 공로를 베풀어 주실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된 유산”을(64) 받게 하는 은총에 의한 권리, 사랑의 완전한 권리이다. 우리 선행의 공로는 하느님 선의의 선물이다.(65) “먼저 은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려야 합니다.……공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66)
  • 2010 은총의 영역에서는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신다. 그러므로 회개와 용서와 의화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초의 은총을 받은 뒤 우리는 성령과 사랑의 인도를 받아,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우리의 성화를 위해, 은총과 사랑의 성장을 위해, 나아가 영원한 생명을 위해 필요한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공로를 세울 수 있다. 지혜로우신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우리는 건강이나 우정과 같은 현세적 선익까지도 받게 하는 공로가 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은총과 선익은 그리스도인이 기도로써 청하는 것들이다. 기도는 공로가 되는 행실에 필요한 은총을 얻게 해 준다.
  • 2011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세우는 모든 공로의 원천이 된다. 은총은 적극적인 사랑으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킴으로써 우리 행위에 초자연적 성격을 부여하여 결과적으로 하느님과 인간들 앞에서 공로가 되게 해 준다. 성인들은 항상 그들의 공로가 순수한 은총이라는 사실을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 세상의 귀양살이가 끝난 다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 주님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늘 나라를 위한 공로를 쌓기를 바라지 않고, 주님의 사랑만을 위해 힘쓰기를 바랍니다.……이 생명이 끝 날 때, 저는 빈손으로 주님 앞에 서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제 업적을 헤아려 주시기를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희의 모든 의로움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주님께서 바로 그 주님의 의로움으로 저를 꾸며 주시어, 주님의 사랑으로부터 주님을 영원히 소유하기를 원합니다.(67)
  • IV. 그리스도인의 성덕
  • 2012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28-30).
  • 2013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68) 부름을 받는다. 인간은 모두가 성덕의 소명을 받았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 완덕에 이르고자 신자들은 그리스도께 받은 힘을 다하여……모든 일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온 마음으로 헌신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느님 백성의 성덕은 교회의 역사에서 수많은 성인들의 생활을 통하여 빛나는 증거를 보여 주었듯이 풍성한 열매를 맺어 나갈 것이다.(69)
  • 2014 영적 진보는, 언제나 그리스도와 더욱더 밀접하게 결합되는 것이 그 목표이다. 이 결합을 ‘신비적’이라고 하는 것은 ‘거룩한 신비들’, 곧 성사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과 더욱 깊이 결합하도록 부르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이 은혜를 드러나게 하시려고, 소수의 특정한 사람들에게만은 특은이나 이 신비 생활의 특별한 표징들을 주시기도 한다.
  • 2015 완덕의 길은 십자가를 거쳐 가는 길이다. 자아 포기와 영적 싸움 없이는 성덕도 있을 수 없다.(70) 영적 진보는 참행복의 평화와 기쁨 안에서 살도록 점차적으로 인도하는 고행과 극기를 내포한다.
  • 올라가는 이는 아무리 ‘산 너머 산’이라 해도 끝없이 새로운 고개를 하나씩 넘어갑니다. 올라가는 이는 이미 아는 것을 차지하려는 갈망을 버리지 않습니다.(71)
  • 2016 어머니이신 거룩한 교회의 자녀들은 당연히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은총을 바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예수님과 일치하는 가운데 실천한 선행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보상을 바란다.(72) 신자들은 같은 생활 규범을 지켜,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처럼 차리고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묵시 21,2)에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다시 모이는 사람들의 ‘복된 희망’을 나누어 가진다.
  • 간추림
  • 2017 성령의 은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의로움을 준다. 성령께서는 신앙과 세례를 통하여 우리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결합시키심으로써, 우리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신다.
  • 2018 회개와 마찬가지로 의화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은총의 자극을 받아 하느님께 향하고 죄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럼으로써 하늘의 용서와 의로움을 받는 것이다.
  • 2019 의화는 죄의 용서와 성화와 내적 인간의 쇄신도 내포한다.
  • 2020 의화는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통하여 우리에게 얻어 주신 은총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의롭게 된다. 의화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움에 일치시킨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의화는 하느님 자비의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 2021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소명에 우리가 응답하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움이다. 은총은 우리를 성삼위의 내적 생활 안으로 이끌어 준다.
  • 2022 은총의 활동 안에서 하느님께서 주도적으로 먼저 인간을 준비시키시어, 인간이 자유롭게 은총에 따르도록 마련하신다. 은총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심오한 갈망을 충족시킨다. 은총은 인간이 자유로이 은총에 협력하도록 초대하고, 그 자유를 완성시켜 준다.
  • 2023 성화 은총은 우리를 당신의 생명에 참여시키시려고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선물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 우리 영혼 안에 이 선물을 부어 주신다.
  • 2024 성화 은총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특은인 카리스마는 성화 은총을 위한 것이며, 교회의 공동선을 목적으로 한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조력 은총’으로도 보살피시는데, 이 은총들은 우리 안에 언제나 머물러 있는 ‘상존 은총’과는 구별된다.
  • 2025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쌓는 공로는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의 활동에 인간을 참여시키려는 자유로운 계획에 따르는 것일 뿐이다. 공로는 우선 하느님의 은총에 속하고, 그 다음으로 인간의 협력에 속한다. 인간의 공로 역시 하느님께 속한 것이다.
  • 2026 성령의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참된 공로를 세울 수 있게 한다.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세우는 공로의 원천이다.
  • 2027 회개의 기원이 되는 첫 은총을 받을 만한 공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령의 작용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데 유용한 모든 은총뿐 아니라, 필요한 물질적 재화까지도 얻게 해 주는 공로를 쌓을 수 있다.
  • 2028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을 받는다.(73) “그리스도인의 완덕에는 한계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완덕에 전혀 한계점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다.”(74)
  • 2029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
  • 제3절 어머니요 스승인 교회
  • 2030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자신의 소명을 수행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의 법”의(75) 가르침을 담고 있는 하느님 말씀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부터 “나그넷길”에서 그를 지탱해 주는 성사의 은총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성덕의 모범을 배우며,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 안에서 성덕의 본보기와 근원을 알아보고, 성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참된 증거에서 성덕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앞서 살다 간 성인들과 교회가 전례력(典禮曆)에 맞추어 기념하는 성인들의 영성 전통과 오랜 역사에서 성덕을 확인한다.
  • 2031 윤리 생활은 영적 예배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리고 성찬례에서 당신을 봉헌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친다.(76) 전례와 성사 거행을 통해, 기도와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은총과 결합하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비추고 키워 나간다.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가 그렇듯이, 윤리 생활도 미사성제에서 그 원천과 절정을 발견한다.
  • I. 윤리 생활과 교회의 교도권
  • 2032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1티모 3,15)인 교회는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는 그리스도의 이 장엄한 명령을 사도들에게서받았다.”(77) “교회는 윤리 원칙들을 사회 질서에 관한 것까지도 언제나 어디서나 선포하고, 인간의 기본권이나 영혼의 구원에 요구되는 한에서는 어떠한 인간사에 대하여서도 판단을 내릴 소임이 있다.”(78)
  • 2033 윤리 문제에 관한 교회 사목자들의 교도권은 일반적으로 신학자들과 영성가들의 도움을 받아 교리 교육과 설교를 통하여 행사된다. 이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나오고 또한 사랑으로 활력을 얻은 규율과 계명과 덕행의 독특한 총체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윤리의 ‘유산’이 사목자들의 세심한 감독을 받으면서 세세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이러한 교리 교육은 전통적으로, 신경(信經)과 주님의 기도와 더불어,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윤리 생활의 원칙을 밝혀 주는 십계명을 그 기초로 삼고 있다.
  • 2034 교황과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지닌 스승이다. 주교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백성에게 믿고 살아가야 할 신앙을 선포한다.”(79) 교황과, 그와 일치해 있는 주교들의 보편적이고 통상적인 교도권은 신자들에게 믿어야 할 진리, 실천해야 할 사랑, 그리고 희망해야 할 참행복을 가르친다.
  • 2035 그리스도의 권위에 참여하는 가장 높은 단계는 무류성(無謬性)의 은사로 보장된다. “무류성은 교회가 거룩하게 보전하고 충실히 설명하여야 할 하느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만큼 펼쳐진다.”(80) 또한 무류성은 윤리를 포함해서, 구원을 위한 신앙 진리들을 지키고 설명하며 보존하는 일에 필요한 모든 교리 조항에까지 미치는 것이다.(81)
  • 2036 교도권의 권위는 자연법의 특정한 규정들에도 미치는데, 왜냐하면 창조주께서 요구하시는 이 규정들의 준수는 구원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연법의 규정들을 환기시킴으로써, 교회의 교도권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제로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리며, 하느님 앞에서 어떠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예언자적 기능의 본질적인 한몫을 수행한다.(82)
  • 2037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의 법은 신자들에게 생명과 진리의 길을 가르쳐 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는, 판단력을 맑게 하고 상처 입은 인간의 이성을 은총으로 치유하는 구원에 유익한 하느님의 규정들에 대하여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83) 신자들은 교회의 합법적 권위가 채택한 헌장과 교령들을 지킬 의무가 있다. 비록 그런 결정들이 다만 교훈적인 것이더라도, 그 결정들은 사랑으로 순순히 따라야 한다.
  • 2038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윤리를 가르치고 적용하는 일에는, 사목자들의 헌신과 신학자들의 지식과, 모든 그리스도인과 선의를 지닌 사람들의 기여가 필요하다. 신앙과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각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체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비추시어, 그가 하느님의 성령에 따라 신적이며 인간적인 사실들을 평가할 수 있게 하신다.(84) 이처럼 성령께서는 유식한 사람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쓰실 수 있다.
  • 2039 교회 직무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형제적 봉사와 교회에 헌신하는 정신으로 수행되어야 한다.(85) 아울러 각자의 양심은 자기 자신의 행실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서 자기의 처지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각자의 양심은 최선을 다해서, 자연법이든 계시된 법이든 간에 윤리법에 명시되어 있는, 따라서 교회의 법과 윤리 문제에 관한 교도권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표현되어 있는 공동선을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의 양심이나 이성을 도덕률이나 교회의 교도권과 대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 2040 이리하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교회에 대해 참다운 효심이 깊어질 수 있다. 이 자녀다운 정신은 우리를 교회의 품안에 태어나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한, 세례 은총에서 피어난 정상적인 결과이다. 교회는 어머니다운 정성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이기며 특히 화해의 성사를 통해 작용하는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에게 베푼다. 자상한 어머니와 같이, 교회는 전례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과 성체라는 양식을 날마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베푼다.
  • II. 교회의 법규
  • 2041 교회의 법규는 전례 생활과 연결되고 또 전례 생활로 자라나는 윤리 생활과 그 맥을 같이한다. 교회의 목자들이 제정한 이 실정법의 의무들은 신자들에게 기도 정신과 윤리적 책임, 그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선을 제시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 2042 첫째 법규(“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미사에 참여하고, 육체노동을 삼가야 한다.”)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비롯하여, 주님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성인들의 신비를 공경하는 주요 전례 축일들을 거룩하게 지내도록 신자들에게 요구한다. 신자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함께 모여 거행하는 성찬례에 참여하여야 하고 이날의 성화를 방해할 수 있는 모든 일과 노동을 삼가고 쉬어야 한다.(86)
  • 둘째 법규(“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는, 회개와 용서라는 세례의 작용을 지속시키는 고해성사를 받음으로써 성체를 모실 준비를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87)
  • 셋째 법규(“적어도 한 번 부활 시기에 성체를 받아 모셔야 한다.”)는 그리스도교 전례의 기원이며 중심인 부활 축제들과 연결시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최소한의 규정이라도 준수하라는 것이다.(88)
  • 2043 넷째 법규(“교회가 정한 날에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는 전례 축일에 맞갖게 우리를 준비시키고 본능의 자제와 마음의 자유를 얻도록 돕는 참회와 고행의 시기를 가지라는 것이다.(89)
  • 다섯째 법규(“교회의 필요를 지원하여야 한다.”)는 신자들이 저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교회의 물질적 필요를 지원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90)
  • III. 윤리 생활과 선교의 증거
  • 2044 세례 받은 이들의 충실성은, 복음 선포와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 진리와 빛의 힘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하여, 구원의 메시지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통한 증거로써 그 진실성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생활의 증거와 초자연적 정신으로 실천한 선행은 사람들을 하느님과 신앙으로 이끄는 힘이 있다.”(91)
  • 2045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에,(92) 그들의 확고한 신념과 품행으로써 교회 건설에 이바지한다. 교회는 신자들의 거룩함으로 성장하고 확장되고 발전하여,(93) 마침내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에페 4,13).
  • 204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로써 하느님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94) 가 다가오기를 재촉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스승에게 충성을 다하면서, 공정과 인내와 사랑으로써 임무를 완수한다.
  • 간추림
  • 2047 윤리 생활은 영적 예배이다.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전례와 성사 거행에서 활력을 얻는다.
  • 2048 교회의 법규들은, 전례와 결합되고 전례로 양육되는 그리스도인의 윤리 생활에 관한 것이다.
  • 2049 윤리 문제에 대한 교회 사목자들의 교도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윤리 생활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는 십계명을 바탕으로 하여, 일반적으로 교리 교육과 설교를 통해 행사된다.
  • 2050 진정한 교사로서 교황과 주교들은 믿어야 할 신앙과 윤리 생활에 적용해야 할 신앙을 하느님 백성에게 전한다. 자연법과 이성의 영역에 속하는 윤리 문제에 대하여 그 타당성 여부를 판정하는 것도 그들의 권한이다.
  • 2051 사목자들이 행사하는 교도권의 무류성은, 윤리를 포함해서, 구원을 위한 신앙 진리들을 보존하고 설명하며 지켜 나가는 일에 필요한 교리 조항에까지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