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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9.11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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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452) 폭염과 에어컨

세상에! 날씨가 더워도, 이렇게 더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2018년의 여름은 끔찍합니다. 수도원 방 온도가 기본이 35도를 웃돌고, 선풍기를 틀면 더운 바람이 불기에 가끔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은 기분마저 좋게 만들어 줍니다. 누군가, '여름이 여름다워야, 좋은 가을이 온다'고 말하지만, 이런 여름은 정말 사양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동창 신부님들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날 모임은 젊은 신자 부부가 하는 피자집에서 가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판에 뭔가를 구워 먹는 곳으로 갔을 터인데, 숯불이나 가스불을 쳐다보는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더워서…! 그날 모임에 나온 신부님들의 대화 주제도 '폭염이 언제 끝날 것인가'와 환경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갈 무렵, 식당 사장이 우리 식탁으로 인사를 왔습니다. 원래 잘생긴 얼굴인데, 그날은 꾀죄죄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왜 망가졌느냐 물었더니,

"신부님, 지금 저희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잠깐 사는 곳인데요, 내년 초에는 앞으로 살게 될 집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올봄에 지금 집에 에어컨을 달까 고민하다 그냥 안 달았더니 이렇게 폭염이 올 줄이야. 그래서 집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가게에서 자는 바람에…."

다들 이 폭염을 이기려고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나 봅니다. 이때 다른 신부님이 묻기를,

"그럼 아내랑 아기는?" "친정집에 가 있어요."

"와, 폭염이 가족마저 갈라놓고 있네!"

그러자 피자집 사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제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청년하고 이야기를 좀 했는데, 에어컨 이야기가 나왔어요. 자기 집에는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는데, 요즘은 밤새 그 에어컨을 틀어 놓는답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거실로 나와 각자 자리를 잡은 후 잠을 잔대요. 가족이 함께 잔 경우가 처음이래요. 아기에 기억은 모르겠고, 커서 부모님이랑 같이 잠을 자 본 적이 없었대요. 그런데 거실에서 부모님이랑 자다 보니 예전에 몰랐던 것을 볼 수 있었대요. '아, 우리 아빠가 저렇게 코를 고는구나. 우리 엄마 잠꼬대는 좀 심하게 하는구나. 우리 아빠는 잘 때 두 다리를 쫙 벌리고 자는구나. 우리 엄마는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는구나' 그러면서 아빠와 엄마가 어떻게 잠을 자는지를 처음 알게 되었대요.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면서 목이 메이더래요. 자신의 아빠는 지금까지 전혀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던 분이었는데, 또한 자신의 엄마는 살림살이에 대단한 애착을 대단한 분이었는데, 잘 때면 피곤에 쩔어 주무시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났대요. 폭염과 에어컨 때문에 처음으로 부모님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자신들을 키우려고 고생한 몸짓을 보면서, 그저 짠하더래요."

그 말을 듣는데, 거기 있던 동창 신부님들 모두가 다 '짠' 하는 얼굴이었습니다. 폭염으로 인해 에어컨과 전기세 걱정뿐인 요즘! 그런데 에어컨 때문에 오히려 가족을 더 사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날 나는 모임을 마치고 수도원에 돌아왔는데, 방 안 온도가 너무나 높아! '아, 오늘 밤 잠은 어떻게 자나!' 혼자 고민하다가! 문득 수도원에 유일하게 에어컨이 설치된 곳이 생각났습니다. '공동방!'

그래서 '이번 한 번만, 몰래 에어컨을 틀고 잠을 자야지.' 베개 하나만 들고 조심스레 공동방에 들어갔더니, 공동방 안에서는 이미 세 명의 형제가 곤히 자고 있었습니다. 나도 잠든 형제들 사이, 빈 공간을 찾아 누워 조용히 잠을 청해 보았습니다. 그날, 유난히 시원한 공동방 안에서 마음으로는 따스하게 잠을 잤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