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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0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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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중립 없다’ 교황 말씀 떠올리며 위로하고 기억하자
세월호 참사 5주기,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에게 듣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8월 16일 124위 순교자 시복에 앞서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고 있다. 당시 교황을 수행했던 정제천 신부가 교황을 뒤따르고 있다.



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5주기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세월호 침몰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에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교황을 수행했던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사진>를 8일 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발언과 만남, 그 의미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정 신부는 먼저 "세월호 유족들과 만난 교황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성사적이었다"고 평했다. 손 한 번 들고, 발 한 번 옮길 때마다 마음 씀씀이와 배려가 하느님의 손길을 보여주는 듯했다고 밝혔다.

교황과 세월호 유족들과의 만남은 14일 서울공항을 시작으로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직전 제의실, 16일 124위 시복식 직전 광화문 광장, 17일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이뤄진 이호진(프란치스코)씨 세례식 등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앞선 두 만남은 예정돼 있었지만, 뒤이은 두 만남은 교황의 배려였다.

방한 첫날, 교황과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은 특별했다. 환영단과 악수하며 온화한 미소로 눈인사를 건네던 교황은 정 신부가 제자들을 구하다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한 고 남윤철(아우구스티노) 교사의 부모를 소개하자 "잊지 않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로 공감을 표명했다.

이튿날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서도 이호진씨가 "교황님께 세례받고 싶다"고 요청하자 즉석에서 수락하고, 정 신부에게 세 차례나 "잊지 말아달라"고 확인하는 세심함을 보여주며 세례를 줬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교황님께서는 당신이 세월호 참사를 이해하는 두 가지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하나는 아르헨티나 사목 시절 발생한 디스코텍 화재 사건이었고, 또 하나는 열차 전복사고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교황님은 제도나 구조의 문제를 직접적 당사자 몇 명만 처벌하고 끝내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계셨지요."

정 신부는 특히 124위 시복식 당시 세월호 유족들과의 만남도 잊지 못했다. "400여 명의 세월호 유족이 노란 물결을 이뤄 기다리는 모습을 본 교황님은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차를 돌려 다시 유족들에게 다가가셨어요. 그런데 전 그게 외교 결례인 줄도 모르고 교황님, 잠깐 내려가셔서 위로를 해주십시오 하고 말씀을 드렸죠. 그 말에 교황님은 어떤 행동이 현명한지 한 번 생각해보자고 말씀하셨는데, 거듭 권유하니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내려가셔서 34일째 단식 중이던 김영오씨를 만나셨어요. 그분이 노란 봉투에 편지를 담아 드리니, 교황님께선 수행비서인 저를 주지 않고 당신 호주머니에 넣으셨습니다. 보통은 수행비서한테 줄 텐데, 당신 호주머니에 넣는 걸 보고 이분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17일 아침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이뤄진 세례식을 마친 뒤 교황은 세월호 실종자들이 부모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편지를 썼고, 이 편지는 19일 팽목항 천막성당에서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를 통해 유족들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정 신부는 또 세월호 유족과의 만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으로, "세례성사를 주신 교황님이 한참 동안 이호진씨와 이마를 맞대고 계시면서 그의 고통에 함께하시는 모습이었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차 안에서도 이제는 세월호 배지를 빼시는 게 좋겠다는 주변의 권유에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기억하고 연대하겠다는 의미로 계속 달고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과 연대한 결정적 장면은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는 기자회견 때의 말씀이었다.

"애도병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족들이 슬퍼하면 애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하지 못하게 하면 그 아픔이 평생을 간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정치인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다고 해서 교회까지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그래야만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