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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2.13 등록
[시사진단] 김정은의 시간, 트럼프의 시간(성기영, 이냐시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시간과 장소가 확정된 이후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다시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 정상은 새로운 관계 구축, 평화체제 수립,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했다. 그러나 회담 이후 6개월이 넘도록 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2018년 하반기 워싱턴 정가를 지배한 분위기는 북미 협상에 대한 냉소와 회의였다.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이고 실질적 진전을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구체적 진전은 포괄적 선언과 합의를 넘어 행동 계획이 도출될 때에만 담보될 수 있다. 실질적 진전은 행동 계획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시간표가 제시될 때 설득력이 있다.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과 미국의 실무 협상 대표들은 스웨덴과 평양에서 각각 2박 3일씩 협상을 이어가며 구체적이고 실질적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이 많다는 이야기는 협상이 매우 깊이 있는 수준까지 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체성 면에서는 일단 기대할 만한 수준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질적 이행을 담보할 시간표를 내놓는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정은과 트럼프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시간표를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김정은의 시간표를 보자. 북한은 지난해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핵 경제 병진 노선의 승리를 선언했다. 그리고 사회주의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당의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선포했다. 2019년 4월 경제건설 집중 노선 채택 1주년을 앞두고 구체적 성과를 선보여야 할 상황이다.
김정은에게 2020년은 더욱 중요하다. 2016년 5월, 36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 7차 당 대회에서 채택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마무리해야 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만이 살 길이라던 구호 대신 경제건설만이 살 길이라는 걸 인민들에게 보여주려면 제재 해제를 통한 외자 유치가 필수적이다.
트럼프의 시간표도 녹록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35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는 결국 민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중간선거 패배의 쓴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의 2016년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뮬러 특검의 조사도 개봉박두 단계에 이르렀다. 미ㆍ중 무역 전쟁의 3개월 휴전 종료시한을 앞두고 시진핑 주석과의 담판을 통해 승리를 선언하려던 계획의 성사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지지율은 여전히 40대 초중반을 오가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말, 재선 여부를 판가름하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들고 있는 시간표를 살펴보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을 도출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행동계획과 시간표에 합의하고 2020년 상반기 중으로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불가역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미 양국에 모두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 기회의 창을 활용하는 지도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