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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9.04.17 등록
[시사진단] 청춘과 노년의 아름다운 동행(유혜숙, 안나, 대구가톨릭대 인성교육원 교수)
최근 방영된 드라마 눈이 부시게는 일자리 없는 청춘과 설 자리 없는 노년이 함께 공존할 가능성을 풀어냈다. 그저 흔한 시간여행 드라마가 아니라, 치매, 곧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행복했던 젊은 날에 대한 기억으로 풀어낸 이 드라마는 고단한 청춘과 서러운 노년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어우러지게 했다.
아나운서가 되길 바랐지만 실제로는 변변한 일자리 하나 없이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는 25세 김혜자(한지민 분)와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아들마저 다리를 잃어 동네 낡은 미용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왔던 70대 할머니 김혜자(김혜자 분)가 시간을 되돌려주는 신비한 힘을 가진 시계, 실제로는 치매, 곧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통해 마법처럼 하나가 된 것이다. 25세 젊은 영혼과 70대 늙은 육신이 하나가 되면서 젊음과 늙음의 공존이 가능하게 되고, 그 둘의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된다.
오늘날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갈등은 노인네, 꼰대라는 말을 넘어 노인을 가리키는 여러 말에 한자 벌레 충(蟲)을 합해, 노인충, 틀딱충, 연금충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헌 「사랑의 기쁨」에서 "무질서한 산업 발전과 도시화를 뒤따라, 과거와 현재에, 노인들이 부당하게 소외"(192항)되는 현실에 주목하면서, "교회는 나이 든 이들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는 물론이며, 성마른 사고방식을 따를 수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인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살아 있는 일원이라고 느끼게 하려면 감사와 존중과 환대의 집단의식을 일깨워야 합니다. 노인들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로서 우리보다 앞서 우리가 가는 길과 우리가 사는 집에서 존엄한 삶을 위하여 날마다 노력해 온 이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이와 노인이 새롭게 서로를 끌어안는 넘치는 기쁨으로 버리는 문화에 맞서 도전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191항)라고 가르친다.
청년과 노인이 공존하는 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청년과 노인이 동행할 수 있을까?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처럼 시간을 되돌려주는 시계가 필요한 것일까? 70대 노인 김혜자는 죽음을 앞둔 듯한 마지막 장면에서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빠였고, 형이었고, 아들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라고 나직이 읊조린다.
어쩌면 후회만 가득한 과거를 대변하는 노인과 불안하기만 한 미래를 대변하는 청년 대신 노인의 과거에 대한 청년의 존중과 청년의 미래에 대한 노인의 존중이 이루어지는 오늘의 시간 안에서 청년과 노인은 서로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나란히 길을 걸어가듯,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 안에서 청년과 노인이 동행하는 부활의 날이 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