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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사회 > 여론
2019.06.2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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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어머니(임두빈, 안드레아, 생활성가 가수)


사는 동안 행복했던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시련의 시간은 왠지 길게 느껴집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갑작스러운 주변인의 부고 소식은 조금은 나태했던 일상과 신앙에 잔잔한 겸손을 불러옵니다. 그때부터 잊고 있던 지인들의 안부와 가족의 건강에 마음이 쓰이고, 천년만년 사실 것 같은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다행히 저는 부모님 두 분 모두 살아 계십니다. 부모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알면서도 전화가 오면 바쁘다는 핑계로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고, 휴무 날엔 집에서 지친 몸을 마음껏 뒹굴 거리고 싶지만 무엇을 자꾸만 해달라고 하시는 어머니와 세상 전반에 관한 토론으로 자꾸만 말을 걸어오시는 아버지가 마냥 귀찮아 후회할 투정을 했던 기억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좋은 곳에 가면 "모시고 가야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목이 메어 울컥한 마음에 "잘해야지! 진짜 잘해야지! 살아 계시는 동안에 효도해야지!" 하면서도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어디 감히 저의 부족한 마음을 부모님의 마음에 견줄 수 있을까요?

저는 루카복음 15장의 말씀, 돌아온 탕자처럼 부모님께 근심만 안겨드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어머니는 성모님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4살 때 6ㆍ25를 겪으셨습니다. 전쟁통에 피란을 다니시고,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굶지 않기 위해 꽃다운 12살에 남의 집 더부살이로 들어가 부엌일과 그 집의 6남매를 업어 키우셨습니다. 챙기고 남은 누룽지를 먹으며, 눈물이 마를 날 없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시다가 구교우 집안의 아버지를 만나 입교하시고, 신앙의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다. 글을 배운 적 없는 어머니께서는 성경 말씀이 너무나 읽고 싶으셔서 늦은 나이에 눈물을 흘리시며 악착같이 홀로 글을 깨우치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화장실이 매우 좁았는데,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코앞 벽에 삐뚤빼뚤한 글씨와 알 수 없는 맞춤법으로 빼곡하게 써진 성경 말씀이 매일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이게 뭐냐"고 투덜거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뭉클한 마음이 듭니다. 글씨체와 맞춤법의 발전과 함께 신앙인으로 성장했던 저의 시간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먹여 주시고자 했던 어머니의 믿음과 사랑의 결과였습니다.

늘 가장 낮은 곳에서 보이지 않게 궂은 일을 도맡아 봉사하셨던 어머니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이제 저도 어머니의 거울이 되어 하느님의 착실한 도구가 되기를 바라며, 부모님께 효도하는 착한 아들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면 어떤 담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고 나의 하느님께서 힘이 되어주시면 못 넘을 담이 없사옵니다."(공동번역성서 시편 1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