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ㆍ아일랜드ㆍ러시아의 종교 지도자와 외교관들이 한국에 모여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모색했다.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강주석 신부)와 가톨릭신문(사장 이기수 신부)이 공동 주최하고,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주관한 제2회 국제학술대회가 6일 경기 파주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열렸다.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에는 메리안 쿠시마노 러브(아메리카 가톨릭대) 교수와 필립 맥더나(전 아일랜드 외교관) 대사가 발제자로 나서 각각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의로운 평화 △아일랜드, 유럽, 그리고 동북아시아 평화건설에 관한 개인적인 시각을 주제로 발표했다. 윌리엄 스카일스테드(전 미국 주교회의 의장) 주교, 스테판 이그노프(러시아 정교회 모스크바교구) 신부, 나가사와 유코(도쿄대 한국학센터), 한국의 변진흥(동북아평화연구소) 박사는 종합토론자로 함께했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축사에서 "이 행사는 신앙인들이
평화를 만들어가는 능동적인 주체로서 신앙인들의 핵심적인 역할에 대해 고찰하기
위한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면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가 평화로 향하는 이정표가
돼 지금 가장 필요한 치유적 화해로 가는 과정의 초석을 다질 것"이라고 격려했다.
다음은 기조연설 및 발제문 요약.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마련한 제2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왼쪽에서 다섯번째)와 이기헌 주교를 비롯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기조 연설 - 동북아 평화와 교회의 역할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북한 교회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한국 교회 창립 200주년을 앞두고 북한선교부를 설치하면서부터다. 북한선교부는
임진각 벌판에서 매일 한 차례씩 묵주기도를 바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자는 염원이 담겼다.
한국전쟁에 대한 동족상잔의 처참한 기억은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은 북한 공산 정권의 교회 박해와 성직자들의 순교 때문에 크게 남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방 후 혼란한 시기에 겪은 남한 사회에서의 이념 충돌은 전쟁 이상의 상처를 남겼다.
한국 교회 안에서 용서와 화해, 평화 교육이 많이 이뤄져야 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가진 아픔이나 상처가 용서를 통해 먼저 치유돼야 한다. 마음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뤄질 때 정치적인 선언과 협정도 이뤄진다. 미움을 용서로 승화시키는 일은 어렵지만 기도를 통해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공산치하에서 모진 옥고를 치른 베네딕도회 사제와 수사들이 신앙 안에서 미움을 용서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사례가 있다.
해방 후 북한 지역에는 5만 5000명의 신자가 있었다. 1990년대 북한에는 신자 약 3000명이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유일한 대북 창구는 장충성당과 조선가톨릭교협회다. 장충성당이 건축되기 전 북한에서는 남쪽이나 외국 종교와의 종교 문제를 다룰 단체로 종교인협회를 만들었다. 북한 교회에서 복음화의 중심지가 되어야 할 곳은 장충성당이다. 장충성당을 존중하고 성장시켜야 할 책임이 평양교구를 관할하는 서울대교구와 한국 천주교회에 있다. 북한 신자들은 오랜 기간 종교박해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어, 침묵의 교회에 머물러 있던 신자이므로 신앙생활은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르다.
제1발제 -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정의로운 평화
메리안 쿠시마노 러브 교수(워싱턴DC 아메리카 가톨릭대)
오늘날
전 세계에서 평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는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을 받아들인 것에 기인한 것이다.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은
전 세계 전쟁 지역에서 효과를 내고 있으며, 전쟁을 예방하고 분쟁을 조정하며, 지속
가능한 평화를 건설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정의로운 평화의 원칙과 실천 관행은 분쟁의
최전선에 있는 가톨릭 및 기타 종교의 평화운동가들이 활용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정의로운 평화 구축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아이디어는 무엇이 있을까. △정의로운 명분(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공동선을 보호ㆍ방어ㆍ회복하는 것) △올바른 의도(긍정적 평화 구축을 목표로 하는 것) △참여 △회복 △올바른 관계△화해 △지속 가능성이다.
예수님은 전쟁 지역에서 태어나셨다. 제국주의적 침략, 군사적 지배, 인권 유린으로 고통받던 곳이었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들, 국적과 성별, 계층, 종교가 서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했다.
우리는 보통 마하트마 간디나 마더 데레사와 같은 용감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평화는 반드시 평화를 깨뜨린 자들의 참여로 이뤄져야 한다. 올바른 관계는 엘리트 계층뿐 아니라 소외당하고 억압받은 사람들을 포함한 모두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정함으로써 정립된다. 또 교회와 종교 행위자들은 불완전한 정부의 노력과 더 전체론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정의로운 평화의 실천 관행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힐 수 있다. 교회와 종교 행위자들은 교회, 평화연구소, 교구의 정의평화위원회를 활용해 사람들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대개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관계 재건을 위한 참여와 회복이 이뤄지고, 이어 화해를 위한 노력이 뒤따른다. 한국과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이뤄진 평화 구축 노력에는 지속 가능성이 결여돼 있었다. 한 정권에서 추진한 프로젝트가 다른 지도자가 선출되면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은 종교기관들이 정의로운 평화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분야다.
제2발제 - 아일랜드, 유럽 그리고 동북아시아 평화 건설에 관한 개인적인
시각
필립 맥더나(전 아일랜드 대사)
전 세계적으로 필요로 하는
평화를 향한 전환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오늘날 다자간 외교의 토대가 되는
UN 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은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 인류의 통합, 법치주의,
대화와 비폭력, 개발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시장과 군국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의
삶의 기반이 될 수 없다. 남북 화해의 특수성이 인류를 위한 보편적인 계획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 남북 평화를 위한 10가지 제안을 한다.
1.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계속해서 평화를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2. 우리는 화해를 핵심적인 정치적 가치로 지지할 수 있다. 3. 남북한 평화 프로세스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을 계속해서 시도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4. 한반도에서 북한에 새로운 상황을 권고하고, 열린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5. 느슨한 형태의 남북 간 논의를 위한 포럼을 출범시켜 새로운 평화의 문화가 탄생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해 장기적으로 대화가 이뤄지도록 한다. 6. 올바른 정치적 맥락을 조성하기 위해 군사적 자산과 병력 배치를 제한하는 조치, 투명성 조치를 포함해 군사적 분야의 신뢰와 안보 구축 조치를 촉구해야 한다. 7. 실질적이고 점진적이며 차이를 존중하고, 경제적 개발 수준의 격차를 줄이는 경제적 신뢰 구축 조치들이 필요하다. 8. 경제적 협력의 맥락에서 서로 다른 경제 및 사회체제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은 그 자체로 신뢰 구축을 위한 조치다. 9. 남북을 가로지르는 경제 및 사회체제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자본주의에 관한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다. 10. 충분한 정보를 기반으로 안보 및 협력에 관한 평가를 촉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