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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가톨릭신문 2019.01.29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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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1922~2009) 선종 10주기 여전히 그립습니다! (중) 내가 만난 추기경

누군가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면 그 기억은 개인에게는 추억이 되고 개인을 넘어서면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기억의 끈은 다시 오랜 인연으로 이어져 삶 자체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상한 아버지, 소박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기억하는 구요비 주교(서울대교구 해외선교담당 교구장 대리)와 인재근(엘리사벳)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이들의 기억 속에서 인간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을 만났다.


■ 서울대교구 구요비 주교

"실수도 말없이 품어주며 믿어주신 분"

구요비 주교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을 생각하며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우리들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번뇌와 슬픔이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이다. 구 주교가 이야기하는 김 추기경은 그저 고위성직자로서 남기 바란 사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희로애락, 특히 삶의 애환과 고통, 번민을 늘 당신의 문제로 안고 살아갔던 시대의 예언자였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사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의 최고 어른이셨던 그분의 얼굴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깊은 신앙심 그리고 영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고 평화를 얻게 되지요."

구 주교는 1970년 10월 견진성사를 받기 위해 찾은 본당에서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 이후 암울했던 1980~1990년대, 우리 시대에 가장 가난한 이웃 중 하나인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며 김 추기경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구 주교가 기억하는 김 추기경은 자녀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소박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가톨릭노동청년회 회원들과 설날에 세배하러 가면, 김 추기경은 장관들이나 국회의원 등 유명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들을 가장 반기며 기뻐했다. 뿐만 아니라 노동가를 함께 부르며 손을 흔들고, "더 크게!"를 외치며 그들과 어울렸다. 또 편지에 답장해 주는 것은 물론, 어려움을 청하면 거절하지 않고 시간을 내줬다. 한번은 노동 청년들이 몰래 모여 신자 노동자로서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하는데, 불쑥 그 집을 방문해 격려하기도 했다.

"추기경님이 방문해 문을 두드리자 청년들이 누구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수환이다 하세요. 수환이가 누구냐고 다시 물으니까 그제야 나 김수환이야라고 말해 청년들이 다들 놀란 적이 있습니다."

구 주교는 김 추기경을 철저하게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라고 말한다. 김 추기경의 이런 모습은 훗날 그가 사제 생활을 하는 데 큰 귀감이 됐다. 특히 프라도회의 정신 중 하나인 사제는 먹히는 존재라는 가르침, 불어로 옴므 망제(homme mange)라는 말에 큰 영향을 받았다.


아울러 구 주교는 사제의 실수나 과오에 대해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구 주교는 "제 의도와 다르게 일이 잘못 진행된 경우에도 추기경님께서는 꾸중 하나 안 하시고 넘어가 주셨다"며 "제 실수임에도 아무 말씀 없이 믿어 주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살아 있었다면 그가 2017년 6월 주교로 임명 됐을 때 어떤 말씀을 건넸을까. 구 주교는 "참 잘됐다고 칭찬해 주시면서도 염려하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신학교 영성 지도 신부로 임명받고 인사드리러 갔을 때 추기경님이 제게 참 잘됐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생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알려주고, 좋은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도우라고 당부하셨지요. 제가 주교로 임명 됐을 때도 같은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추기경님께서 저를 너무 순진하다고 평가한 것을 보면 놀라시지 않으셨을까….(웃음) 그래도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김 추기경님께서 저의 부족함을 계속 채워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더불어 구 주교는 "추기경님의 모습을 닮아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일치의 도구이자 평화의 사도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국회의원

"해고 노동자 안쓰러하던 모습 선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하느님 곁으로 떠난 지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헌신한 이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친 고(故) 김근태(즈카르야) 전 의원의 아내이자 오랜 기간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인재근(엘리사벳)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김수환 추기경을 자상한 아버지로 기억한다.

그가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난 건 1978년, 해고된 동일방직 노동자들이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단식을 할 때였다. 해고된 노동자들과 행동을 같이 하며 뒷바라지 하는 역할을 했던 인 의원은 당시 김 추기경이 그들을 방문해 안타까워하시며 위로해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추기경님이 해고당한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찾아오셔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쓰러워 하셨어요. 위로해 주시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주시는 모습이 자상한 아버지 같았습니다."

이후 그는 1988년 5월 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시상식에서 다시 김 추기경을 만났다. 그는 김근태 고문사건을 국제사회에 알리며 김 전 의원과 함께 1987년 11월 20일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다. 하지만 정부가 그의 출국을 거부하면서 투옥 중인 김 전 의원과 그는 해외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국 이듬해 김 추기경은 가톨릭회관을 시상식 장소로 내주고 직접 참석해 축하도 해줬다.

또 민주화 투쟁을 하며 김 추기경에 도움을 받은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감옥에 갇힌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이을호씨가 고문 등으로 인해 정신적 쇼크를 받고 감옥에서 생활하기 어려워졌다. 그러자 인 의원은 이씨의 가족들과 김 추기경을 만나러 가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니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후 김 추기경은 이씨를 돕기 위해 애를 썼고, 이씨는 우여곡절 끝에 석방됐다.

그는 "김 추기경님은 감옥에 갇힌 사람, 해고된 노동자, 구속된 학생 등 인권을 탄압 받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항상 관심 가져 주셨다"며 "기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목소리를 내주신 모습을 보며 큰 위안이 됐다"고 밝혔다.

더불어 견진성사 때 김 추기경을 만난 일화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전했다.

"김 추기경님이 견진을 축하해 주시면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내가 우리 김근태 형제에게 기대가 많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양심수 석방을 외치며 싸웠던 것을 잘 아시거든요. 계속 잊지 않고 관심 가져 주신다는 생각에 든든했습니다. 제 견진성사에서 남편 얘기를 하시니 이 말씀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웃음)"

"추기경님을 참 좋아한다"는 그는 매일 새벽 방송 미사를 보며 가족들 사진과 함께 김 추기경이 기도하고 있는 사진을 바라보면서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서 해고 노동자들에게 자상하게 다가와 준 김 추기경의 첫 모습을 잊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정활동을 하려고 다짐한다.

"추기경님이 생전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하신 것들을 기억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앞으로 의원 활동을 하면서도 김 추기경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추기경님을 닮은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