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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특집기획
2020.12.02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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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하지 않아요!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으니까요”
[생명을 바라보는 7인의 시선] (4) 홀로 아이 키우는 윤민채(율리안나)씨
▲ 8살 아들 성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 윤민채씨.



"미혼모라고 하면 어둡고 침울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랑 다르게 불행할 것 같고, 지원으로 엮으려고 하죠. 인터뷰할 때 밝게 웃으면서 27살이고, 8살 아이와 살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면, 다시 부탁해요. 톤을 내려서 주저하는 말투로 해달라고요."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집을 여섯 번 옮겼다. 반지하 원룸에서 시작해 보증금 500만 원의 방 두 칸짜리 월세방을 거쳐 다음달에는 보증금 4000만 원의 전셋집으로 옮긴다. 그 사이, 미혼모 시설만 두 곳을 거쳤다. 안 해본 알바가 없어 알바천국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는 숨어서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에 아이와 함께 얼굴을 드러내 인터뷰에 응한다.

2018년 3월, 한부모성장연구소를 열고, 유튜브 채널 한부모성장 TV도 운영하고 있다. 미혼모의 긍정적인 사회생활과 자립을 돕고 있는 윤민채(율리안나, 27)씨를 만났다.



왜 가족을 숨겨야 하죠?

"아들의 첫 돌이 기억나네요. 혼자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6개월간 밤새우면서 부업해 모은 돈으로 돌잔치를 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도 많이 받았어요. 사회자가 돌잔치 시작 전에 성현이 아버님! 어디 계시죠?를 뷔페식당이 떠나가라 물었던 일이 기억나네요.(웃음)"

자신을 미혼모 인식 개선 활동가로 소개하는 윤씨는 쾌활하고 미소가 밝다. 어릴 때는 사람들의 눈을 못 마주칠 정도로 내성적이고, 배달 음식을 시키는 전화도 망설였다. 내향적인 그의 성격이 쾌활하고 활동적으로 바뀐 건 아들 성현이를 낳고 나서다.

"처음에는 성현이를 낳고 혼자 키우면서 내가 아이를 숨겨야 하나 고민한 적도 있는데, 내가 내 새끼를 키우는데 왜 숨겨야 하지?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야 하지? 하면서 스스로 편견을 깨려고 노력했어요. 왜 가족을 숨겨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야 하지? SNS에 아이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죠. 친구들이 댓글로 조카야? 하고 물으면 아니, 아들이라고 밝게 이야기했어요. 밝게 이야기하니까 축하 인사를 하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하지 않더라고요."

윤씨는 미혼모가 스스로 위축된 시선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말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옷을 잘 챙겨 입고, 예쁘게 꾸미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 윤민채씨가 살아가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감사일기. 틈틈이 감사할 거리를 기록한다.

▲ 윤민채씨가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한부모성장 TV.




굶는 날 많아도 "괜찮아, 좋아질 거야"


윤씨에게도 우울감과 함께 삶의 위기가 닥쳤던 시간이 있었다. 19살에 임신해 아이 아빠와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정부 지원금으로 급한 불은 껐다. 아이가 생후 5개월에 접어들면서 생활비가 바닥났고, 인천에 있는 미혼모 시설 모니카의 집에 아들과 짐을 풀었다. 2년 동안 머물면서 자립을 위한 준비를 했다. 봉사자와 수녀들이 아이를 돌봐주는 동안 자격증 3개(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코디네이터)를 취득했다.

아이가 3살이 되면서 시설에서 나와 월세를 얻어 자립했다. 취업을 위해 10곳이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월 60만 원의 수급비는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턱없이 부족했어요.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저녁밥까지 먹고 오게 했고, 저는 굶는 날이 많았어요."

윤씨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시설로 발길을 돌렸다. 모자원에 입소해 종합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미혼모들은 윤씨를 만나면,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구별 짓는다. 지난해에 미혼모 인식 개선 토크 콘서트에 출연해 마이크를 잡은 일이 있었다.

"긍정의 힘을 믿는 저로선 우울하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어떤 분이 제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당신은 모든 걸 이룬 너무 좋은 상태의 삶이 아니냐고요."

토크 콘서트가 이어진 다음 날, 윤씨는 미혼모로 겪어야 했던 힘든 일을 털어놨다.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가 힘든 미혼모를 되려 소외시킬 수 있는 역효과도 생각하게 됐다.

윤씨는 "생활비가 바닥났을 때는 월세도 밀리고, 빚 독촉도 와서 힘든 때가 있었다"면서 "먹을 게 없어 간장계란밥을 하면서도 괜찮아, 나는 극복할 힘이 있어, 더 좋아질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미혼모들이 수급자로 사는 삶을 끊고 자립하기란 쉽지 않다.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맡겨 놓고, 취업해 일해도 수급비 정도의 돈을 벌기 때문이다. 미혼모 시설 모니카의 집에서 수급자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직 윤씨가 유일하다.



미혼모가 미혼모라 불리지 않기를

윤씨는 남자친구가 아빠로서 한 가정을 꾸리지 않기로 한 날 슬프지 않았다. 그가 임신했던 기간은 남자친구에게 부모가 되자고 설득한 시간이었다. 아이 아빠는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이 아이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을 다해 설득한 결과였기에 후련했어요."

그는 엄마에게 임신 사실과 함께 출산 예정일을 알리면서, 당당히 혼자 키울 거라고 말했다. 워낙에 독립적으로 큰 윤씨를 부모는 말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부터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많아 붕어빵과 빼빼로를 팔아본 윤씨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악착같이 살았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한 길만 달렸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었다. 그를 성장시키고 지켜준 것은 독서와 감사일기였다.



재능있는 미혼모에게 기회를

처음 윤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건 그의 인스타그램을 본 잡지사에서 연락이 오면서다. 그리고 그는 지금보다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유명해지고 싶어요. 섭외가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거든요. 미혼모 중에는 강사 출신도 있고, 회계 자격증이 있는 분도 있고 다양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미혼모니까 일을 시켜줘야 합니다가 아니라 재능이 있는 미혼모들에게 사업적으로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습니다."

그는 지금 프리랜서로 마케팅 관련 원고 작성 및 관리일을 하고 있다. 유튜브 편집부터 인스타그램 마케팅까지 닥치는 대로 배웠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한부모성장연구소 카페 회원은 300명이 넘는다. 한부모 가정을 꾸리고 사는 이들이 모여 자립과 취업,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미혼모들이 자립할 수 있는 교육도 한다.

"성현이가 자라서 아이를 낳았을 때에는 한부모 가정이라든지, 미혼모, 장애인 가정이라는 구분이 없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언론은 한부모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왜 미혼모와 사별가족을 나누는지….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유부녀라고 소개하는 사람은 없잖아요.(웃음)"

그는 "하느님이란 존재를 믿고 살아왔기에 어떤 위기가 닥치면 하느님이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시려고 이런 위기가 생겼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태어난 이유, 제가 혼자 아이를 키우게 된 이유, 성현이가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씨는 미혼모들에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주눅 들고 위축된 시선을 거두라고 강조한다. 모든 차별과 편견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시작된다고.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