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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가톨릭평화신문 2018.08.1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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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77)예수님에 대한 음모와 최후의 만찬 준비(루카 22,1-13)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을까
▲ 무교절이 오자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 도성 안 다락방에 파스카 만찬을 준비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 시가지 시온산에 있는 최후 만찬 기념 성당.



루카복음은 22장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탄생과 유년기(1,5─2,52), 공생활 준비(3,1─4,13), 갈릴래아 활동기(4,14─9,50), 예루살렘 상경기(9,51─19,27), 예루살렘 활동(19,28─21,38),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22,1─24,53)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2장부터는 예수님 지상 생애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됩니다.





음모와 유다의 배반(22,1-6)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국면을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백성이 두려워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다"(22,1-2)라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란 표현은 두 축제가 동일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과월절이라고도 합니다. 파스카 축제는 유다인 달력으로 해마다 첫째 달인 니산달(태양력으로는 3~4월) 14~15일에 지냈습니다. 유다인들은 14일 오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스카 양을 잡았고, 이날 밤(유다인들은 해가 지는 저녁부터 하루를 시작하기에 날짜로는 15일이 됩니다) 이 양을 누룩없는 빵,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옛 이집트 탈출을 기념했습니다. 반면 무교절은 원래 봄철에 농부들이 보리를 추수하면서 일주일 동안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축제인데, 해마다 니산달 15일부터 21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렇다 보니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나중에는 두 축제가 동일시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시어 성전을 정화하신 후부터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지만 온 백성이 날마다 예수님께 모여들고 있어서 묘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19,47-48 참조) 그러던 차에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다가 스승을 배반한 것입니다. "사탄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이스카리옷이라고도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길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22,3-4)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루카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루카는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고 쓰지 않고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사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지내셨을 때 예수님을 줄곧 유혹했던 그 유혹자입니다. 그때 사탄은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하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갔는데(루카 4,1-13), 이제 유다를 통해 그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22장 4절 "예수님을 넘길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에서 넘길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9,44; 18,32)의 넘겨질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수난과 죽음 예고에서 넘겨질이라고 수동태가 쓰인 것은 그 일이 하느님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이제 유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석사제들은 유다를 통해 예수님을 제거할 방도를 얻게 된 것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합니다. 유다는 거기에 동의하고는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노립니다.(22,5-6) 예수님을 넘기기로 한 사례로 유다가 받은 돈은 은화 서른 닢이었습니다.(마태 26,15) 은화 서른 닢은 남의 종이 자기 소에게 받혀 죽었을 때에 지불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탈출 21,32 참조) 이유야 어찌 됐든 유다는 결과적으로 은화 서른 닢에 스승을 팔아넘기는 배반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 준비(22,7-13)

드디어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파스카 음식을 차리라고 지시하시고, 그들은 어디에 차리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성 안으로 들어가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나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이 자리를 깔아놓은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인데 거기에 차리도록 하라고 이르십니다.(22,7-12) 예수님의 설명은 사전에 그 집 주인과 약속을 해놓으신 것처럼 대단히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였고 그래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간단한 설명이지만 여기서 당시의 상황을 한 번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파스카 만찬이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으뜸으로 삼으신 베드로와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두 사람에게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셨겠지요.

당시 예루살렘 도성은 주민들과 축제에 참여하러 온 순례객들로 혼잡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이 3만 명이었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온 순례객이 8만 5000명에서 12만 5000명이었다고 추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교절이 시작되는 날 밤에 먹어야 하는 양을 구해 잡아야 했고 그 밖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쓴 나물 등도 함께 구해야 하니 예루살렘이 얼마나 붐볐겠습니까? 그 와중에 제자들은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를 따라가서 보니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파스카 음식을 차리면서 두 제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생각해봅시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예수님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사탄은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에게서 물러갔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다가 사탄이 들어올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21,36)고 말씀하셨지만, 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깨어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장애물을 치워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