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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가톨릭평화신문 2018.08.1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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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28)가진 것에 감사하기


오랜만에 L이 찾아왔다. 남편의 실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여느 어머니가 그러하듯 자녀 교육에 욕심이 많아 보내는 학원도 많다. 그런데 점점 학원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고민이 많아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청소년 방과 후 학교를 소개해 줬다. 정부에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고 학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런데 L은 매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아이를 그런 곳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곳이라니? 순간 당혹스러웠다. 더 놀라운 건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숨기고, 어떻게 해서라도 학원을 계속 보내겠다는 것이다. 아이들까지 빈곤 속에 몰아넣는 것은 너무 비참하다면서 급기야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이들에게 대단한 것은 못 해줘요. 하지만 남들만큼은 해야죠." 그의 이 말이 슬프면서도 공허하게 들려왔다.

L이 돌아간 후, 그의 자식들이 가정 형편을 모르고 예전처럼 돈을 쓰고 고가의 학원에 다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왜 L은 자녀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할 수 없는 걸까? 물론 자신이 겪는 암울한 현실에 자식들까지 밀어 넣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불현듯 뉴욕 맨해튼에 있을 때 만났던 K가 생각이 났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갈 준비를 하던 차에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전처럼 여유 있게 돈을 쓸 수 없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유학을 앞둔 K에게 계속 학비를 보내는 걸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K는 "그래도 일단 떠나겠다"고 했고, 가족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K를 응원했다고 한다.

K는 빈민 지역에 작은 방을 얻어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K를 찾아갔다. 비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니 K가 땀을 흘리며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K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반기며 "쥐들이 자꾸 기어 나와서 청소하고 있었던 중"이라고 했다. 떨어진 옷을 재활용해 가방으로 사용하기도 했고 장학금을 타려고 틈만 나면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우리 집이 전처럼 풍족한 상태에서 저를 유학 보냈다면 이렇게까지 공부를 잘하지 못했을 거예요. 가난이 저를 성장시켜줬다고 생각해요."

사실 L의 자녀들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담대하게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남들보다 물질적 안정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가정이라고 배우지만 않았다면. 자녀의 필요를 모두 돈으로 대체하지 않았다면. 사랑을 돈으로 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어쩌면 L이 두려워하는 것이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자식들의 고통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혹시 남들만큼 해주지 못하면 어머니가 지녀야 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려운 것은 아닐까. 물질적인 결핍으로 자녀들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어머니만의 불안감은 아니었을까. 남들만 아니었다면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L이 자녀들과 눈을 맞추며 "당당하게 가족만 보고 살아가"라고 말하면 좋겠다. 내게 없는 것에 절망하기보다 가진 것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면 참 좋겠다.



성찰하기



1. 비교는 천사도 불행하게 한다는 말이 있어요.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2. 내게 없는 것에 절망하기보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요.

3.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하지 마세요.

4. 행복도 연습입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연습을 해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