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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복음/말씀 > 복음생각/생활
가톨릭평화신문 2018.11.28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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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42)과거를 업고 다니는 사람


두 수도승이 비가 온 후 진흙탕이 된 시골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길을 건너려는데 한 여인이 진흙탕 길을 건너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다. 그러자 한 수도승이 그 여인을 등에 업고 길 반대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며 걸었다. 다른 한 수도승이 참다못해 말을 했다. "어떻게 여자를? 우리 수행자들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잊었습니까?" 그러자 여인을 업었던 수도승이 말했다. "나는 이미 그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있었구려."

언젠가 적어두었던 이야기다.

과거에 대한 불편한 기억으로 현재를 힘들게 살 때가 있다. 가끔 머릿속 생각들을 찬찬히 훑다 보면 온통 지나간 일들에 대한 넋두리를 듣게 된다. "그 말은 하는 게 아닌데…." "정말 그 사람은 이해가 안 돼…." "다음에 만나면 꼭 이 말은 해야겠어."

과거를 업고 다니느라 현재가 무겁다. 생각이 머릿속 아우성을 좇다 보니 몸은 뿌리를 내리지 못해 결국 질병으로 아프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정도의 불안장애를 지니고 살아간다. 장소에 대한 공포부터 공기나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까지. 특정 동물이나 사람, 사건에 대한 강박이나 불안도 있다.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올 때도 있고 숨이 막히거나 진땀이 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과거의 아픈 흔적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한동안 콩국수를 먹지 않았다. 콩국수만 보면 습관적으로 거부했다. 그러다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왜 나는 콩국수를 싫어하지? 과거에 대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박봉에 큰 기대를 할 수 없었던 어머니는 보험회사도 다니고 이런저런 장사도 많이 하셨다. 한때 식당도 운영하셨다. 그때 어머니는 팔다 남은 콩국수를 자주 들고 오곤 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밤늦게 피곤함에 지친 상태로 들고 온 콩국수, 결코 맛있을 수가 없었다. 자주 먹게 되니 지겹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가족 모두 하나같이 콩국수를 먹지 않았다.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단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 나는 콩국수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콩국수에 대한 나의 감정이 문제였구나. 감정은 생각을 만들고 그 생각으로 행동한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생각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면 감정도 달라진다.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콩국수에 대한 기억을 다시 정리해보았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땀과 정성으로 만들어 팔았던 콩국수, 그 콩국수는 내게 필요한 따뜻한 옷과 음식이 되고 사랑이 되었으리라. 용기를 내어 콩국수를 먹어보았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아주 조금. 어머니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조금.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머니가 장사하기 전, 직접 맷돌을 돌리며 만들어 주었던 콩국수가 생각났다. 고소한 맛이 느껴지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언가 내가 대단한 것을 해낸 듯한 뿌듯함이 마음 가득히 차올랐다.

나는 그때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과거와 싸우지 말아야겠다고.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생각은 바꿀 수 있다. 과거를 내려놓지 않으면 현재가 불편한 법이다. 내가 가진 것은 단지 현재뿐인데 말이다.



성찰하기

7 혹시 불안장애가 있나요? 특정한 장소와 음식, 사람과 사건에 대해서.

8 과거에서 온 흔적을 찾아 기록해요. 그리고 주님 앞에서 기록한 것을 찬찬히 읽어요.

9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현재의 생각을 바꾸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청해요.

주님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에 계시니까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